하늘강가 2013. 10. 30. 20:48

개요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를 하느님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연대모임'으로 창설되었다. WCC는 교회도 아니고, 교회에 대해 명령이나 지시를 내리는 조직도 아니다. WCC는 교회의 일치와 갱신을 위해 봉사하고, 교회들이 서로 만나 대화하며 기도하고 관용과 상호 이해의 정신으로 협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색인 : 에큐메니즘)

WCC는 제1차 세계대전 후에 2개의 단체를 생겨나게 한 에큐메니컬 운동에 기원을 두고 있다. 생활과 실천 운동은 교회의 실제 활동에 초점을 맞추었고, 신앙과 직제 운동은 교회의 신앙과 조직, 교회들이 재통합될 경우 그에 관련된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얼마 안 가 이 2개의 운동은 단일 조직을 결성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1937년 에든버러에서 열린 신앙 및 직제 협의회와 옥스퍼드에서 열린 생활과 실천 협의회는 두 조직을 합쳐 단일 협의회를 결성하자는 안을 받아들였다. 교회 지도자들이 새 협의회를 만들기 위해 1938년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에서 회합을 가졌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1948년이 되어서야 WCC 제1차 총회가 열릴 수 있었다. 1961년에는 국제선교협의회가 WCC에 가입했다.

WCC의 회원으로는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과 동방 정교회가 포함되지만 로마 가톨릭 교회는 아직 가입하지 않고 있으며, 남침례회도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은 개신교 교단 가운데 하나이다. WCC의 의사결정기구는 세계 각국의 여러 지역에서 대략 6년마다 모이는 총회이다. 총회는 중앙위원들을 지명하고, 이 가운데서 26명으로 구성된 실행위원회를 구성한다. 실행위원회는 전문 위원들과 6명의 공동 의장이 다음 총회가 열릴 때까지 업무를 수행한다. 제네바에 있는 본부에는 총무 밑에 많은 실무진이 있다. WCC의 활동은 3개 주요분과인 교회 관계 분과, 에큐메니컬 연구와 촉진 분과, 난민들에 대한 교회 상호간의 지원과 봉사 분과로 나누어져 있다. 이 분과들 밑에는 신앙과 직제 위원회, 교회 안에서의 평신도의 생활과 실천 및 교회와 사회에서의 남녀의 협동에 관한 위원회 같은 수많은 소모임과 위원회가 있다. WCC 산하 단체들은 여러 혁명적인 운동에 관여해왔는데, 이는 일부 소속 교회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WCC와 한국 교회

WCC는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의 동향을 접속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에큐메니컬 운동과 진보적 사회선교활동을 지원하는 후원자로서, 또한 최근에는 북한 선교의 중재자 역할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기독교대한감리회·한국기독교장로회 등 3개 교단이 가입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WCC 창립총회 때부터 교회의 지도자들을 파견하여 관계를 맺어왔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WCC는 북한의 남침을 규탄하고, 자유롭고 통일된 독립 한국의 실현을 촉구하는 한편, 전쟁 난민 구호사업에도 적극 참여했다. WCC가 세계 교회 일치운동의 주체로 부각되고 에큐메니즘 신학이 한국에 본격 도입되자, 1950년대에 에큐메니컬 운동의 성격을 의심하고 이를 배격하고자 하는 복음주의협회(NAE)가 대두되었다. 이로써 한국 교회 전체는 WCC의 에큐메니즘 노선을 찬성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이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복음주의협회를 중심으로 격렬히 대립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세계적 조류가 평화공존으로 기울자 반에큐메니컬 세력은 한국에서도 쇠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