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적인 내적치유
성경적 상담...
하늘강가
2014. 9. 24. 19:27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성경은 인간 존재의 기원(起源)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귀한 존재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 안에서 중심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被造物)을 통치할 수도 있는 권한까지 부여받았다.
따라서 인간의 존재가치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 안에서 아름다운 사회를 구성하며 하나님의 대리자(代理者)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주어진 환경과 여건 속에서 모든 생물들을 통치해야 될 존재라는 사실 속에서만 그 가치를 찾을 수가 있다.
인간은 단순히 통치자로서의 사명만 받은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통치자로서의 축복까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사명을 소유한 자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2) 타락한 존재로서의 인간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고 죄를 범했기 때문에 본래 주어진 축복과 사명과 권리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죄인이란 이름이 주어졌으며, 사명감을 잃은 무능하고 연약하며 병들어서 {죽음을 향하여 가는 육체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창6:3)
육체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바사르( )는 단순하게 살(flesh)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육체(바사르: )를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상징으로 사용한 것은 그 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나의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11:19-20)
새로운 영어 번역에서 육체(바사르: )를 flesh 대신에 mortal(육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 이라고 신학으로 번역한 것이다. 인간은 육체( : 사르크스)를 소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혼( : 프슈케)과 영( : 프뉴마)까지 소유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영혼으로 표현된 단어는 혼( : 프슈케)을 의미하며, 목숨 또는 인간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가지 문제점은 하나님의 신(영: )이 {함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함께 하다}는 말은 동반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함께 하다}는 히브리어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딘( ): 심판하다(judge), 변론하다(plead), 통치하다(rule), 다투다(contend)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동반자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인간이 그 어떠한 죄를 범하여도 하나님께서 참견하거나 간섭하지 않으시고 방치해 두시겠다는 뜻이다. 성령께서 동반자가 되지 않으신다는 사실과 인간을 통치하지 않으시겠다는 사실이 영적으로 병들거나 혼적으로 병들고 육체적으로 병들게 하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심리적인 병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병들고 말았다. 정신적인 병이나 심리적인 병이란 혼적(psyche)인 질병을 의미한다. 혼( )은 마음이나 정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인간이성(人間理性)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혼적(魂的)인 인간}이란, {이지적 인간}을 뜻한다. 그런데 이지적(理智的)인 인간은 자신의 지식 때문에 영적인 일을 수용할 수 없다. 결국 자신의 지성 때문에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2:14)
인간에게 혼적( )인 질병과 육체적인 질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질병도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영적인 병}이란,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살아가는 짐승과 같은 삶에서 비롯된다. 죄악을 범하는 가운데서 영적인 병이나 혼적인 병을 앓게 되고 육체적인 질병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
그러므로 인간의 문제는 죄(罪)에 대한 문제라고도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죄란 창조주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신의 의지(意志)대로 육체적인 쾌락을 찾아서 하나님의 뜻과 정면으로 배치(背馳)되는 행동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고 죄를 범했기 때문에 본래 주어진 축복과 사명과 권리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죄인이란 이름이 주어졌으며, 사명감을 잃은 무능하고 연약하며 병들어서 {죽음을 향하여 가는 육체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창6:3)
육체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바사르( )는 단순하게 살(flesh)을 의미하였다. 그런데 육체(바사르: )를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상징으로 사용한 것은 그 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나의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11:19-20)
새로운 영어 번역에서 육체(바사르: )를 flesh 대신에 mortal(육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 이라고 신학으로 번역한 것이다. 인간은 육체( : 사르크스)를 소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혼( : 프슈케)과 영( : 프뉴마)까지 소유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영혼으로 표현된 단어는 혼( : 프슈케)을 의미하며, 목숨 또는 인간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가지 문제점은 하나님의 신(영: )이 {함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함께 하다}는 말은 동반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함께 하다}는 히브리어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딘( ): 심판하다(judge), 변론하다(plead), 통치하다(rule), 다투다(contend)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동반자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인간이 그 어떠한 죄를 범하여도 하나님께서 참견하거나 간섭하지 않으시고 방치해 두시겠다는 뜻이다. 성령께서 동반자가 되지 않으신다는 사실과 인간을 통치하지 않으시겠다는 사실이 영적으로 병들거나 혼적으로 병들고 육체적으로 병들게 하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심리적인 병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병들고 말았다. 정신적인 병이나 심리적인 병이란 혼적(psyche)인 질병을 의미한다. 혼( )은 마음이나 정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인간이성(人間理性)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혼적(魂的)인 인간}이란, {이지적 인간}을 뜻한다. 그런데 이지적(理智的)인 인간은 자신의 지식 때문에 영적인 일을 수용할 수 없다. 결국 자신의 지성 때문에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2:14)
인간에게 혼적( )인 질병과 육체적인 질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질병도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영적인 병}이란,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살아가는 짐승과 같은 삶에서 비롯된다. 죄악을 범하는 가운데서 영적인 병이나 혼적인 병을 앓게 되고 육체적인 질병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8)
그러므로 인간의 문제는 죄(罪)에 대한 문제라고도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죄란 창조주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신의 의지(意志)대로 육체적인 쾌락을 찾아서 하나님의 뜻과 정면으로 배치(背馳)되는 행동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3)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회라는 단위 안에서 삶을 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가장 작은 사회로 가정이 있으며 나아가서 국가까지도 인간이 삶을 영위해야 되는 사회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른 존재와의 인간관계 속에서 사는 존재이다.
인간관계란, 자신이 가장 유일한 존재란 사실과 함께 다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서로 적응시키는 삶을 의미한다. 각자 자신의 생활만을 고집한다면 사회는 붕괴되고 사회적인 행복은 깨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고부갈등(姑婦葛藤)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을 정도이다. 그 원인은 자신이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지 않는데서 오는 것이다. 며느리들이 남편을 독점하려고 할 때나 시어머니가 아들을 독점하려고 할 때에 고부갈등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가정은 행복을 추구하는 작은 단위의 사회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사회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다. 그런데 아내가 행복을 얻기 위해서 남편의 마음에 불행을 심어준다면 그 가정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과 함께 살면서도 혼자서만 행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시어머니로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를 잘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게슈탈트 치료방법(method of Gestalt Treatment)을 통해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회라는 단위 안에서 삶을 누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가장 작은 사회로 가정이 있으며 나아가서 국가까지도 인간이 삶을 영위해야 되는 사회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른 존재와의 인간관계 속에서 사는 존재이다.
인간관계란, 자신이 가장 유일한 존재란 사실과 함께 다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서로 적응시키는 삶을 의미한다. 각자 자신의 생활만을 고집한다면 사회는 붕괴되고 사회적인 행복은 깨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고부갈등(姑婦葛藤)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을 정도이다. 그 원인은 자신이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지 않는데서 오는 것이다. 며느리들이 남편을 독점하려고 할 때나 시어머니가 아들을 독점하려고 할 때에 고부갈등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가정은 행복을 추구하는 작은 단위의 사회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사회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다. 그런데 아내가 행복을 얻기 위해서 남편의 마음에 불행을 심어준다면 그 가정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과 함께 살면서도 혼자서만 행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시어머니로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를 잘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게슈탈트 치료방법(method of Gestalt Treatment)을 통해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일 것이다.
독일어 게슈탈트(Gestalt)란 그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뜻은 {조직되어 있는 전체}라고 할 수 있다. 개체로서의 자신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자신을 보는 견해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전체로서의 자신을 보지는 못하고 하나의 조각으로서의 자신만을 인식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보다는 언제든지 자기 입장만을 중요시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 변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고부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편이나 아들로서 행복해질 수 있도록 시어머니나 며느리가 서로 배려해줄 때에 그 가정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한 사람과 더불어 살 때에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할 때에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추구할 때에 자신도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관계를 잘 갖는 사람은 언제든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자신 안에서 성격의 이중성을 느낄 때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못 갖는 이유를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성격의 양면성 때문에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경우에 여러 사람들 앞에서는 거만을 떨다가도 혼자가 될 때에는 한탄하거나 슬퍼하며 자신을 질책하고 혹사하게 되는 것이다.
성격의 양면성에도 나름대로의 원인이 있는데 어릴 적부터 갖게 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성장한 후에 생긴 경우도 있다. 가정환경 문제나 교육적인 문제로 인한 경우는 어린 때부터 비롯된 경우가 많은 반면, 성적인 문제나 대인관계에서 생긴 문제, 그리고 사업의 실패 때문에 생긴 문제들은 성장한 후에 생긴 경우이다. 따라서 자신의 양면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나 회개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전체로서의 자신을 보지는 못하고 하나의 조각으로서의 자신만을 인식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보다는 언제든지 자기 입장만을 중요시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 변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고부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편이나 아들로서 행복해질 수 있도록 시어머니나 며느리가 서로 배려해줄 때에 그 가정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한 사람과 더불어 살 때에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할 때에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추구할 때에 자신도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관계를 잘 갖는 사람은 언제든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자신 안에서 성격의 이중성을 느낄 때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못 갖는 이유를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성격의 양면성 때문에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경우에 여러 사람들 앞에서는 거만을 떨다가도 혼자가 될 때에는 한탄하거나 슬퍼하며 자신을 질책하고 혹사하게 되는 것이다.
성격의 양면성에도 나름대로의 원인이 있는데 어릴 적부터 갖게 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성장한 후에 생긴 경우도 있다. 가정환경 문제나 교육적인 문제로 인한 경우는 어린 때부터 비롯된 경우가 많은 반면, 성적인 문제나 대인관계에서 생긴 문제, 그리고 사업의 실패 때문에 생긴 문제들은 성장한 후에 생긴 경우이다. 따라서 자신의 양면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나 회개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구속 받은 존재로서의 인간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범죄 하면서부터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존재로서 이미 사형언도를 받은 처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을 범죄자로 그냥 처형하실 수만은 없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속(救贖)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두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의 제물로 제공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생명의 구주로 믿는 사람을 구속하기로 결정하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구속이란 본래대로 회복하는 것으로 죄로부터의 구원을 포함한다.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 3자에게 의존해야 되는 존재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문제에 봉착하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불행에 빠져들게 된다. 불행에 빠져들면 인간은 비로소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병원이나 점쟁이 등, 여러 가지로 그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불행에 빠진 인간으로 하여금 정상적인 삶으로 행복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목회이며, 치료자의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며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목회 상담이다. 다시 말하면 영적이거나 혼적(심리적 또는 정신적)인 병은 물론, 육체적인 질병의 치료에 있어서도 먼저 해결해야 되는 것이 바로 죄 문제이다.
목회상담은 인간치료를 목적으로 죄 문제를 해결해주는 상담이다. 상담을 통해서 죄 문제를 해결할 때에 영적인 병과 혼적인 병이 치료될 뿐만 아니라 육체적 질병도 치료되는 것이다. 목회상담은 그러한 면에서 어떠한 상담치료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다.
인간은 단순하게 혼적인 존재만도 아니고 물질적인 존재는 더욱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생기를 공급받고 살아있는 영적 존재로 하나님의 뜻을 맡아서 이루어야 할 책임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그처럼 귀한 신분으로부터 죄인이란 신분으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병들고 고통에 시달리는 연약한 존재가 된 것이다.
상담 치료란, 물론 목회상담을 통한 치료를 뜻한다. 치료 과정에서 신앙이 돈독한 의사와 함께 치료를 병행할 수만 있다면 놀라울 정도의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임상목회학적으로도 상담 치료학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범죄 하면서부터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존재로서 이미 사형언도를 받은 처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을 범죄자로 그냥 처형하실 수만은 없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속(救贖)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두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의 제물로 제공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생명의 구주로 믿는 사람을 구속하기로 결정하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구속이란 본래대로 회복하는 것으로 죄로부터의 구원을 포함한다.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 3자에게 의존해야 되는 존재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문제에 봉착하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불행에 빠져들게 된다. 불행에 빠져들면 인간은 비로소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병원이나 점쟁이 등, 여러 가지로 그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불행에 빠진 인간으로 하여금 정상적인 삶으로 행복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목회이며, 치료자의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며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목회 상담이다. 다시 말하면 영적이거나 혼적(심리적 또는 정신적)인 병은 물론, 육체적인 질병의 치료에 있어서도 먼저 해결해야 되는 것이 바로 죄 문제이다.
목회상담은 인간치료를 목적으로 죄 문제를 해결해주는 상담이다. 상담을 통해서 죄 문제를 해결할 때에 영적인 병과 혼적인 병이 치료될 뿐만 아니라 육체적 질병도 치료되는 것이다. 목회상담은 그러한 면에서 어떠한 상담치료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다.
인간은 단순하게 혼적인 존재만도 아니고 물질적인 존재는 더욱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생기를 공급받고 살아있는 영적 존재로 하나님의 뜻을 맡아서 이루어야 할 책임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 그처럼 귀한 신분으로부터 죄인이란 신분으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병들고 고통에 시달리는 연약한 존재가 된 것이다.
상담 치료란, 물론 목회상담을 통한 치료를 뜻한다. 치료 과정에서 신앙이 돈독한 의사와 함께 치료를 병행할 수만 있다면 놀라울 정도의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임상목회학적으로도 상담 치료학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I 인간은 원죄를 해결해야 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죄 문제는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영적인 문제에 한해서는 그 어떠한 상담으로도 손댈 수 없는 분야이며, 오직 목회상담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
원죄(原罪)란 인류의 시조 아담의 범죄 때문에 인류에게 지워진 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범하지 않고도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죄는 원죄(原罪)와 자범죄(自犯罪)로 구분된다. 그런데 자범죄는 물론 원죄까지 해결해야 되기 때문에 밝고 건강한 삶을 살려면 죄를 해결해야 되는 것이다.
자범죄(自犯罪)는 죄의 열매가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스스로 책임져야만 된다. 그러나 원죄는 아무도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이 문제이다. 인간은 원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병들고 연약하며 고통 속에서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다.
그러므로 상담을 한다는 것은 죄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떠한 존재도 세상에는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것이다. 상담으로 {죄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거의 죄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 문제까지도 십자가 위에서 책임지고 죄인을 대신해서 처형당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상담치료학}의 근본 원리이며,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으로 죄 문제는 해결된다.
죄 문제가 영적으로 해결되면 혼적인 질병까지 빠르게 치료될 수 있다. 따라서 육체적인 치료도 가능해진다. 상담치료학은 바로 인간이 근본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내담자의 심령에 심어주는 것이다.
그 치료의 과정에서 의사와 함께 치료를 연합할 수만 있다면 놀라울 정도의 치료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임상 목회학은 목회자가 연구하고 시도해야 되는 학문분야이다. {상담치료학}은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목회자에게 주신 능력을 단순하게 활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임상목회학적으로도 {목회상담 치료학}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상담 치료학}은 전인(全人) 치료이기 때문에 상담자가 갖추어야 할 선행조건이 바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다. 과학적인 인간이나 윤회론적 인간으로의 이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이해가 있어야만 올바르게 상담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1
2. 상담 치료학(相談治療學)
{상담치료학}(Counselling Therapy)이란 상담을 매개체로 해서 치료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상담치료학은 심리학적 상담이나 정신의학적 상담으로 질병만을 치료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상담의 방법으로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인간에게는 영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영적 문제를 중요시하면서 영적으로 치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상담치료학}이다.
영적으로 치료한다는 말은 {성령을 절대로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치료하는 것이다}. 상담치료(相談治療)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만 치료가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소유할 때에 사랑 그 자체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해진다.
상담의 과정이나 방법에 있어서 의학적 상담과 비슷한 점들이 있을 수 있지만, 상담치료의 목적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먼저 심령의 치료가 이루어져야 된다.
목회상담의 특징은 죄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심령 속에서부터 회개를 이끌어내야만 한다. 그래서 상담자(Counsellor) 자신의 지혜나 지식을 의지하기보다는 절대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해야 되는 것이 상담치료인 것이다.
{상담치료}는 목사나 상담자의 능력을 꼭 필요로 하지만, 결코 자신의 어떠한 능력보다도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에만 의존해야 되는 것이며, 성령의 도우심에 맡겨야 되는 것이다.
의사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도 있지만, 전적으로 성령께서 그 치료를 감당하시도록 {맡기는 삶}에 초점이 맞추어지도록 해야만 된다. 그래서 상담치료(Counselling Therapy)란 목회학적 측면과 영적 측면에서 환자(Client)를 인격적으로 상대해야 된다.
내담자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한다는 것은 어떠한 편견이나 전제조건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시는 관점이나 견해를 가지고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상담이 실패하는 원인들이 내담자의 죄나 잘못을 염두에 두고 상담하기 때문에 자신의 편견에 기울어져서 상담을 그릇 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담치료학}은 {삶} 자체를 치료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전인적인 치료로서 {죄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상담치료학은 하나님의 치료하시는 과정들을 인간에게 적용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내담자에게 꼭 필요한 것을 상담자가 알려주고 인도하는 역할만 하면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직접 의사의 심정으로 내담자를 대할 때에 그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치료할 수가 있는 것이다.
상담의 방법으로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인간에게는 영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영적 문제를 중요시하면서 영적으로 치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상담치료학}이다.
영적으로 치료한다는 말은 {성령을 절대로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치료하는 것이다}. 상담치료(相談治療)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만 치료가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소유할 때에 사랑 그 자체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해진다.
상담의 과정이나 방법에 있어서 의학적 상담과 비슷한 점들이 있을 수 있지만, 상담치료의 목적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먼저 심령의 치료가 이루어져야 된다.
목회상담의 특징은 죄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심령 속에서부터 회개를 이끌어내야만 한다. 그래서 상담자(Counsellor) 자신의 지혜나 지식을 의지하기보다는 절대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해야 되는 것이 상담치료인 것이다.
{상담치료}는 목사나 상담자의 능력을 꼭 필요로 하지만, 결코 자신의 어떠한 능력보다도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에만 의존해야 되는 것이며, 성령의 도우심에 맡겨야 되는 것이다.
의사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도 있지만, 전적으로 성령께서 그 치료를 감당하시도록 {맡기는 삶}에 초점이 맞추어지도록 해야만 된다. 그래서 상담치료(Counselling Therapy)란 목회학적 측면과 영적 측면에서 환자(Client)를 인격적으로 상대해야 된다.
내담자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한다는 것은 어떠한 편견이나 전제조건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시는 관점이나 견해를 가지고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상담이 실패하는 원인들이 내담자의 죄나 잘못을 염두에 두고 상담하기 때문에 자신의 편견에 기울어져서 상담을 그릇 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담치료학}은 {삶} 자체를 치료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전인적인 치료로서 {죄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상담치료학은 하나님의 치료하시는 과정들을 인간에게 적용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내담자에게 꼭 필요한 것을 상담자가 알려주고 인도하는 역할만 하면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직접 의사의 심정으로 내담자를 대할 때에 그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치료할 수가 있는 것이다.
B. 상담학의 발자취
정신병 학자이면서 성직자인 올리버(John R. Oliver)가 1932년에 {목회적인 정신치료와 정신건강}(Pastoral Psychiatry and Mental Health)이란 책을 펴내면서부터 박차를 더욱 가하였고 미국의 여러 정신병원에서 선교하던 보이슨(Anton. T. Boisen)이 {인간정신의 탐구}(The Exploration of the Inner World)를 1936년에 출판하므로 써 새로운 기원을 수립하게 되었다.
그 후에 롤러 메이(Rollo May)가 {카운슬링의 기술}(The Art of Counselling)을 1939년에 출간하므로 상담학의 체계와 모형을 이루었으며, 칼 로저스(Carl R. Rogers)가 {카운슬링과 정신요법}(Counselling and Psychotherapy: 카운슬링의 이론과 실제-한승호 역)을 1942년에 출간하여 카운슬링을 통해서 치료를 할 수 있다는데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힐트너(S. Hiltner)의 {목회 상담학}(Pastoral Counselling)이 1949년에, 1951년에 와이즈(Caroll A. Wise : 1962. 이환신 역)가 역시 {목회상담학}을 저술하였다. 그보다 앞서 와이즈는 {질병과 건강에 있어서의 종교}(Religious in Illness and Health)를 1942년에, {종교와 건강}(Religious and Health)을 1943년에 각각 저술하였다.
근래에는 임상 목회학의 발달과 더불어 상담학은 물론 상담치료학도 매우 발전하였다. 그러나 지성의 발달과 더불어 정신적인 치료방법이나 심리적인 치료방법을 너무 많이 도입하는 경향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적 상담은 어디까지나 성경에 따라는 상담이어야 하고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상담이 되도록 해야 되는 것이다.
그 후에 롤러 메이(Rollo May)가 {카운슬링의 기술}(The Art of Counselling)을 1939년에 출간하므로 상담학의 체계와 모형을 이루었으며, 칼 로저스(Carl R. Rogers)가 {카운슬링과 정신요법}(Counselling and Psychotherapy: 카운슬링의 이론과 실제-한승호 역)을 1942년에 출간하여 카운슬링을 통해서 치료를 할 수 있다는데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힐트너(S. Hiltner)의 {목회 상담학}(Pastoral Counselling)이 1949년에, 1951년에 와이즈(Caroll A. Wise : 1962. 이환신 역)가 역시 {목회상담학}을 저술하였다. 그보다 앞서 와이즈는 {질병과 건강에 있어서의 종교}(Religious in Illness and Health)를 1942년에, {종교와 건강}(Religious and Health)을 1943년에 각각 저술하였다.
근래에는 임상 목회학의 발달과 더불어 상담학은 물론 상담치료학도 매우 발전하였다. 그러나 지성의 발달과 더불어 정신적인 치료방법이나 심리적인 치료방법을 너무 많이 도입하는 경향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적 상담은 어디까지나 성경에 따라는 상담이어야 하고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상담이 되도록 해야 되는 것이다.
상담의 원리
{상담의 원리}는 한 마디로 {대화의 원리}라고도 할 수 있다. 대화는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 대화는 평상시의 인간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요소들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을 이룰 수 있는 {대화의 묘약}을 어떤 방법으로 진행시키느냐에 따라서 상담은 성공적일 수도 있고 또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에 대화에는 어느 정도 {대화의 기술}까지 필요한 것이다.
사람은 만남을 통해 관계를 맺게 되며, 그 만남의 요소가 바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다.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자신과 다른 사람,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합시킬 수 있는 방법도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면서 닫혀진 마음을 열고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단순한 대화보다는 마음을 개방하면서 문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닥친 고독과 탄식, 그리고 갈등과 죄책감, 불안 등… 모든 문제점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실한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어떠한 치료보다 목회상담의 우월성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울 수 있는 길이 성경에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을 통해서만 문제해결의 열쇠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닫혀있는 사람의 마음 문을 열 수만 있다면 그 어떠한 문제도 해결하기에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상담의 목적은 마음 문을 열도록 하는 것이다. 상담은 대화로 이루어지며, 또한 상대적이다. 유치원생에게는 어린이의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 문을 열기 위해서는 병든 내담자의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어야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열린 마음은 자신의 잘못을 쉽게 사과한다. 자신의 잘못인 줄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합리화하려는 심리상태가 바로 불안한 심리상태이다. 그러나 열린 마음은 자신의 약점도 공개해야 할 경우에 아무 거리낌없이 공개한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스도를 만나서 대화를 나눈 다음 마음이 열렸을 때에 사람들 앞에서 자기 과거의 약점을 스스럼없이 공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요4:39).
마음이 열리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된다. 심지어는 계명이 자신의 삶을 속박할 때에도 오히려 그것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열린 마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시119:32)
하나님께서만 열린 마음을 주시기 때문에(왕상4:29) 상담자는 성령께 의존하고 자신의 권위의식을 철저하게 배제시켜야만 된다. 성령은 상담자(보혜사: -파라클레토스)이시다. 상담자가 되시는 성령께서는 인간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알고 계신 분이다.
따라서 성령께 의존한다는 말은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상담한다는 뜻이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하심에 따르기 위해서는 겸손한 자세로 성경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깨달아야 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철저하게 배제시켜야만 된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고요하게 기도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상담자(Counseller) 혼자서만 가려는 의욕을 제거해야 바른 상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 자체가 모든 문제점을 성령께 맡기는 과정이 된다.
상담자(카운슬러)의 겸손은 성령께서 상담하시도록 그 자리를 성령께 양보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이 없어지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면 상담하기보다 먼저 기도로 자신을 낮출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만남을 통해 관계를 맺게 되며, 그 만남의 요소가 바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다.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자신과 다른 사람,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합시킬 수 있는 방법도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면서 닫혀진 마음을 열고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단순한 대화보다는 마음을 개방하면서 문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닥친 고독과 탄식, 그리고 갈등과 죄책감, 불안 등… 모든 문제점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실한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어떠한 치료보다 목회상담의 우월성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울 수 있는 길이 성경에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을 통해서만 문제해결의 열쇠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닫혀있는 사람의 마음 문을 열 수만 있다면 그 어떠한 문제도 해결하기에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상담의 목적은 마음 문을 열도록 하는 것이다. 상담은 대화로 이루어지며, 또한 상대적이다. 유치원생에게는 어린이의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 문을 열기 위해서는 병든 내담자의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어야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열린 마음은 자신의 잘못을 쉽게 사과한다. 자신의 잘못인 줄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합리화하려는 심리상태가 바로 불안한 심리상태이다. 그러나 열린 마음은 자신의 약점도 공개해야 할 경우에 아무 거리낌없이 공개한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스도를 만나서 대화를 나눈 다음 마음이 열렸을 때에 사람들 앞에서 자기 과거의 약점을 스스럼없이 공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요4:39).
마음이 열리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된다. 심지어는 계명이 자신의 삶을 속박할 때에도 오히려 그것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열린 마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시119:32)
하나님께서만 열린 마음을 주시기 때문에(왕상4:29) 상담자는 성령께 의존하고 자신의 권위의식을 철저하게 배제시켜야만 된다. 성령은 상담자(보혜사: -파라클레토스)이시다. 상담자가 되시는 성령께서는 인간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알고 계신 분이다.
따라서 성령께 의존한다는 말은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상담한다는 뜻이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하심에 따르기 위해서는 겸손한 자세로 성경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깨달아야 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철저하게 배제시켜야만 된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고요하게 기도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상담자(Counseller) 혼자서만 가려는 의욕을 제거해야 바른 상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 자체가 모든 문제점을 성령께 맡기는 과정이 된다.
상담자(카운슬러)의 겸손은 성령께서 상담하시도록 그 자리를 성령께 양보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이 없어지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면 상담하기보다 먼저 기도로 자신을 낮출 필요가 있는 것이다.
E. 상담의 방법
1. 지시적 방법 (Directive method)
이것은 상담자 중심(Counselor centered)으로 상담을 이끌어 가는 방법이다. 한국 교인들은 자신의 말보다 목회자의 말을 듣고 싶어하기 때문에 신앙상담은 물론, 개인적인 문제의 상담까지도 목회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상담의 목적은 내담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므로 상담을 통해서 내담자가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지시적인 상담에는 많은 문제점이 포함되어 있다.
상담의 목적은 내담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므로 상담을 통해서 내담자가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지시적인 상담에는 많은 문제점이 포함되어 있다.
1) 명령(Order)
명령은 일방적인 분부로 명령을 받은 대상자에게 어느 정도의 여유도 주지 않게 될 염려가 있다. 상대편 입장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상처를 입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명령하는 사람의 감정이 내담자의 감정에 깊이 개입되어 내담자가 마음에 부담을 느끼게 됨으로 상담은 비효과적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명령은 때에 따라서 듣는 사람에게 중압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명령은 일방적인 분부로 명령을 받은 대상자에게 어느 정도의 여유도 주지 않게 될 염려가 있다. 상대편 입장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상처를 입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명령하는 사람의 감정이 내담자의 감정에 깊이 개입되어 내담자가 마음에 부담을 느끼게 됨으로 상담은 비효과적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명령은 때에 따라서 듣는 사람에게 중압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훈계(Exhortation)
훈계는 타이르는 것이다. 훈계도 훈계로만 끝나지 않을 때가 많다. 훈계에는 대개 서약이나 약속이 강조되기 때문에 명령을 받을 때처럼 내담자에게 부담감을 안겨준다. 서약은 은근하게 강조하면서 책임을 지우려는 것 때문에 대화를 끊어놓게 된다.
훈계는 타이르는 것이다. 훈계도 훈계로만 끝나지 않을 때가 많다. 훈계에는 대개 서약이나 약속이 강조되기 때문에 명령을 받을 때처럼 내담자에게 부담감을 안겨준다. 서약은 은근하게 강조하면서 책임을 지우려는 것 때문에 대화를 끊어놓게 된다.
3) 충고(Advice)
충고는 훈계나 명령보다는 그래도 부담감이 적다. 상담에 있어서 설득이란 상담자가 의도하는 대로 이끌고 가려는 방법이다. 그러나 충분히 내담자를 이해하려는 입장을 가져야만 상담은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충고는 훈계나 명령보다는 그래도 부담감이 적다. 상담에 있어서 설득이란 상담자가 의도하는 대로 이끌고 가려는 방법이다. 그러나 충분히 내담자를 이해하려는 입장을 가져야만 상담은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4) 격려(Encouragement)
격려는 내담자의 용기를 북돋아주고 의지를 길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효과를 얻을 수가 있다. 위로와 격려는 내담자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때문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주게 된다. 따라서 근본적인 치료를 기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격려는 내담자의 용기를 북돋아주고 의지를 길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효과를 얻을 수가 있다. 위로와 격려는 내담자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때문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주게 된다. 따라서 근본적인 치료를 기대할 수도 있는 것이다.
5) 정화법(Catharsis)
자신의 내부에 쌓인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놓는 방법으로 죄를 회개하는 것이나 고해성사 등은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모든 비밀을 털어놓으면 잠재적인 죄책감을 벗을 수 있는 것이다.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큰 것을 보고 이발사는 그것을 말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다가 산에 가서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침으로서 갈등을 해결한다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 바로 정화(淨化)의 원리이다.
그러나 비밀을 털어놓아야 문제는 해결되지만, 회개를 강요할 경우 환자에게 더 큰 부담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내부에 쌓인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놓는 방법으로 죄를 회개하는 것이나 고해성사 등은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모든 비밀을 털어놓으면 잠재적인 죄책감을 벗을 수 있는 것이다.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큰 것을 보고 이발사는 그것을 말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다가 산에 가서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침으로서 갈등을 해결한다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 바로 정화(淨化)의 원리이다.
그러나 비밀을 털어놓아야 문제는 해결되지만, 회개를 강요할 경우 환자에게 더 큰 부담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6) 과학적, 논리적 설명
비교적 이지적(理智的)인 사람에게서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으로서 잘하면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지만, 일방통행이 되기 쉽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비교적 이지적(理智的)인 사람에게서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으로서 잘하면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지만, 일방통행이 되기 쉽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2. 비 지시적 방법(非指示的 方法)
비 지시적 방법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그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 찾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러나 그 좋은 이론에도 불구하고 비 지시적 상담 방법에는 문제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아를 상실한 자가 어떻게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가? 라는 점이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발견할 때까지는 내담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마음을 열도록 한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상담 방법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마음을 열지 않고서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1) 개인의 자율성과 통합성을 중요시한다.
상담에서의 초점이 개인의 자율성(independence)을 원만하게 발휘하고 뜻과 이상과 행동이 일치되는 통합성(integration)이 작용되어 지(知), 정(情), 의(意)가 조화된 인격적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지(知), 정(情), 의(意) 이 세 가지 인격적 요소가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자율성이란 스스로의 능력에 의해서 사고(思考)와 관찰(觀察), 판단(判斷), 결단(決斷), 행동(行動)으로 창조(創造)하는 능력을 뜻한다. 또한 자기 행동에 대해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건설적으로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상담자의 의사를 강조하는 대신 내담자가 미숙해도 내담자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율적인 것이 되도록 하는데 역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발견할 때까지는 내담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마음을 열도록 한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상담 방법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마음을 열지 않고서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1) 개인의 자율성과 통합성을 중요시한다.
상담에서의 초점이 개인의 자율성(independence)을 원만하게 발휘하고 뜻과 이상과 행동이 일치되는 통합성(integration)이 작용되어 지(知), 정(情), 의(意)가 조화된 인격적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지(知), 정(情), 의(意) 이 세 가지 인격적 요소가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자율성이란 스스로의 능력에 의해서 사고(思考)와 관찰(觀察), 판단(判斷), 결단(決斷), 행동(行動)으로 창조(創造)하는 능력을 뜻한다. 또한 자기 행동에 대해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건설적으로 해석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상담자의 의사를 강조하는 대신 내담자가 미숙해도 내담자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율적인 것이 되도록 하는데 역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
2) 정서적(감정)인 면에 중점을 둔다.
질병의 원인이 대개 감정에 상처를 입을 때에 생기는 것이다. 감정은 인격적 능력의 핵심이다. 감정을 억제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의 발산을 인격적으로 하도록 돕는 것이 상담의 목적이다.
오늘날 신경성 질환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은 {감정의 질환}이라고 해야만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을 풍부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상담은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담자의 감정이 건전해질 수 있도록 카운슬러로서는 주의를 해야 된다. .
3) 개인의 현재의 상황(situation)에 중점을 둔다.
현재 내담자의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를 살핀다는 것은 과거나 미래를 연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만 과거나 미래를 전연 무시해서는 안 된다. 현재는 어디까지나 과거의 발자취와 미래의 목표 사이에 서있는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를 중요시하되 과거와 미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질병의 원인이 대개 감정에 상처를 입을 때에 생기는 것이다. 감정은 인격적 능력의 핵심이다. 감정을 억제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의 발산을 인격적으로 하도록 돕는 것이 상담의 목적이다.
오늘날 신경성 질환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은 {감정의 질환}이라고 해야만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을 풍부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상담은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담자의 감정이 건전해질 수 있도록 카운슬러로서는 주의를 해야 된다. .
3) 개인의 현재의 상황(situation)에 중점을 둔다.
현재 내담자의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를 살핀다는 것은 과거나 미래를 연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만 과거나 미래를 전연 무시해서는 안 된다. 현재는 어디까지나 과거의 발자취와 미래의 목표 사이에 서있는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를 중요시하되 과거와 미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4) 내담자로 하여금 말을 많이 하게 한다.
비지시적 상담은 내담자 중심(Client centered)이 되도록 여러 가지로 배려한다. 그 중에서도 내담자가 말을 하도록 함으로서 그의 숨겨진 감정을 털어놓게 만들고 그의 말에 공감해줌으로 신뢰감을 조성해야 하며 세 가지 언어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이미 토해버린 언어
둘째, 아직 말하지 않은 감추어져 있는 언어
셋째, 내담자 자신도 알지 못하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영적인 언어
이러한 세 가지 언어를 들을 수 있을 때에 내담자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내담자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상담은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 지시적 상담방법에서 문제점은 자아(Ego)를 상실한 정신이상자나 귀신들린 자가 어떻게 스스로 깨달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는 것이 문제로 남는다.
3. 절충적 방법(折衷的 方法)
비지시적 상담은 내담자 중심(Client centered)이 되도록 여러 가지로 배려한다. 그 중에서도 내담자가 말을 하도록 함으로서 그의 숨겨진 감정을 털어놓게 만들고 그의 말에 공감해줌으로 신뢰감을 조성해야 하며 세 가지 언어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이미 토해버린 언어
둘째, 아직 말하지 않은 감추어져 있는 언어
셋째, 내담자 자신도 알지 못하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영적인 언어
이러한 세 가지 언어를 들을 수 있을 때에 내담자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내담자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상담은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 지시적 상담방법에서 문제점은 자아(Ego)를 상실한 정신이상자나 귀신들린 자가 어떻게 스스로 깨달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는 것이 문제로 남는다.
3. 절충적 방법(折衷的 方法)
절충적 상담(Eclectic counselling)은 지시적 상담과 비지시적 상담 방법의 장점들을 택해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개인의 인격적, 자율적 능력이 연약하기 때문에 내담자 스스로의 힘으로는 상황판단이나 통찰력이 생기지 않을 때에 어느 정도 상담자의 견해를 내담자에게 심어주면서 내담자로 하여금 스스로 방향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약간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상담 방법이다.
절충적 상담방법은 내담자의 인격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일방통행 식의 명령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교적 좋은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그러나 절충적 상담방법을 사용할 경우에 결과를 얻을 때까지는 끈질긴 인내심이 필요하다.
절충적 상담방법은 내담자의 인격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일방통행 식의 명령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교적 좋은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그러나 절충적 상담방법을 사용할 경우에 결과를 얻을 때까지는 끈질긴 인내심이 필요하다.
4. 권면적 방법(勸勉的 方法)
권면적 상담방법(Nouthetic Confrontation)은 아담스(J. Adams)가 주창한 방법으로 자아를 상실한 사람에게 상담자가 주도하여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뜻하며, 목회상담에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내담자들이 원하는 상담도 역시 목회자의 일방적인 처방을 기대하는 것이 과거의 실례이다.
권면하다(누데테오: )라는 헬라어의 누스( : 마음; mind, 이해력: reason, understanding)와 티데미( : 두다, 놓다, 고정하다)의 합성어이다. 그런데 영어로 번역하기에는 적합한 단어가 없다. 대개 admonish(훈계하다, 타이르다), exhort(권하다, 간곡히 타이르다) advise(충고하다) 등으로 번역되고 있지만 영어와 헬라어의 뉘앙스(함의: 含意)가 전연 다를 수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잘못되면 상담자 자신의 뜻을 주입하려는 경향 때문에 권면이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목회자들은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내담자의 질병을 악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권면은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범위 내에서만 효과적이다.
권면하다(누데테오: )라는 헬라어의 누스( : 마음; mind, 이해력: reason, understanding)와 티데미( : 두다, 놓다, 고정하다)의 합성어이다. 그런데 영어로 번역하기에는 적합한 단어가 없다. 대개 admonish(훈계하다, 타이르다), exhort(권하다, 간곡히 타이르다) advise(충고하다) 등으로 번역되고 있지만 영어와 헬라어의 뉘앙스(함의: 含意)가 전연 다를 수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잘못되면 상담자 자신의 뜻을 주입하려는 경향 때문에 권면이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목회자들은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내담자의 질병을 악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권면은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범위 내에서만 효과적이다.
F. 상담학과 다른 학문과의 관계
상담학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심리학이란 빼놓을 수 없는 학문 분야이다. 그런데 목회상담을 위해서 필요한 기초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는 심리학을 꼭 배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심리학을 배우지는 않아도 심리학적 원리에 대해서는 꼭 이해해야 마음의 움직이는 상태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의학적인 지식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의학적인 상식이 전문적 수준이 아니라고 하여도 의학적 원리만 이해할 수 있다면 내담자에게(Client)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성경의 상담방법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익혀야 한다. 그러므로 본서에서는 모든 분야에 걸쳐서 실제상황을 연구(Case Study)하고 그 실제적인 치료효과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많은 예를 참조하도록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려움에 처한 자들과 병자들에게 도움을 주셨던 원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며, 보혜사 성령(파라클레토스: )께서 상담자가 되신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진리와 성령의 역사(役事)를 통해서 어려움에 직면한 오늘의 영적 환자들에게 영적인 상담으로 치료할 수 있는 상담자가 되도록 구속사(救贖史)적인 측면에서 성경을 연구하면서 이를 적용할 수 있도록 시도해야 되는 것이다.
또 의학적인 지식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의학적인 상식이 전문적 수준이 아니라고 하여도 의학적 원리만 이해할 수 있다면 내담자에게(Client)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성경의 상담방법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익혀야 한다. 그러므로 본서에서는 모든 분야에 걸쳐서 실제상황을 연구(Case Study)하고 그 실제적인 치료효과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많은 예를 참조하도록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려움에 처한 자들과 병자들에게 도움을 주셨던 원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며, 보혜사 성령(파라클레토스: )께서 상담자가 되신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진리와 성령의 역사(役事)를 통해서 어려움에 직면한 오늘의 영적 환자들에게 영적인 상담으로 치료할 수 있는 상담자가 되도록 구속사(救贖史)적인 측면에서 성경을 연구하면서 이를 적용할 수 있도록 시도해야 되는 것이다.
IV. 상담치료와 심리학과의 관계
A. 마음이란 어떠한 것인가?
성경에는 마음에 대해서 많이 언급하고 있다. 현대 철학자들은 마음의 능력과 그 존재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신경 생리학자들은 마음과 뇌와의 관계를 탐구해왔다. 뿐만 아니라 새 세대의 컴퓨터 전문가들은 마음과 컴퓨터의 [하이테크] 자료의 산출 체제와의 유사성을 연구하고 있다.
마음이란 헬라어는 프슈케( )이다. 프슈케( )라는 헬라어 단어를 영어로는 psyche라고 기록하며 싸이키라고 발음한다. 또한 마음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을 사이콜로지(Psychology)라고 사전에서 정의한다. 그러나 마음이 어디에 존재하며 어떠한 영향력을 가졌는지를 정확하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신의학은 싸이키아트리(psychiatry)라고 일컫는다. 그러므로 정신의학과 심리학이 모두 헬라어에서 혼이라고 표현되는 프슈케( )에서 유래하였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나 정신이 헬라어의 프슈케( )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뜻하기 때문에 상담학은 이 두 가지 학문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마음은 세 가지로 분류한다. 이 세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키며, 갈등을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심리학의 관심사이다.
1) 이드(Id)
이드(Id)는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충동을 의미한다. 그것은 기본적인 신체의 욕구이다. 배고픔, 갈증, 성욕, 심지어는 도박 등, 육체적 욕구를 정신적으로 표현하게 만든다. 이드는 전혀 길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가르침을 받을만한 능력도 없으며, 가치 체계도 없다. 또 과거의 어떠한 경험에서 유익을 찾아 낼만한 힘도 없다.
이드(Id)는 육체 안에서 일어나는 갈망과 욕구만을 표현한다. 그런 욕구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통제력이 결여되어 있을 때에 그 충동은 비정상적인 것이 된다.
마음이란 헬라어는 프슈케( )이다. 프슈케( )라는 헬라어 단어를 영어로는 psyche라고 기록하며 싸이키라고 발음한다. 또한 마음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을 사이콜로지(Psychology)라고 사전에서 정의한다. 그러나 마음이 어디에 존재하며 어떠한 영향력을 가졌는지를 정확하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신의학은 싸이키아트리(psychiatry)라고 일컫는다. 그러므로 정신의학과 심리학이 모두 헬라어에서 혼이라고 표현되는 프슈케( )에서 유래하였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나 정신이 헬라어의 프슈케( )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뜻하기 때문에 상담학은 이 두 가지 학문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마음은 세 가지로 분류한다. 이 세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키며, 갈등을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심리학의 관심사이다.
1) 이드(Id)
이드(Id)는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충동을 의미한다. 그것은 기본적인 신체의 욕구이다. 배고픔, 갈증, 성욕, 심지어는 도박 등, 육체적 욕구를 정신적으로 표현하게 만든다. 이드는 전혀 길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가르침을 받을만한 능력도 없으며, 가치 체계도 없다. 또 과거의 어떠한 경험에서 유익을 찾아 낼만한 힘도 없다.
이드(Id)는 육체 안에서 일어나는 갈망과 욕구만을 표현한다. 그런 욕구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통제력이 결여되어 있을 때에 그 충동은 비정상적인 것이 된다.
2) 초자아(Superego: 슈퍼에고)
초자아(Superego: 슈퍼에고)란 인격구조에 있어 이드 저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자아(에고: Ego)를 초월한 존재로서 인간의 에고 위에 놓인 일련의 규범을 따르려는 외적 압력이다. 위에 있으므로 {초월}적이며 또 에고(ego)보다도 더 크고 강력하다. 사람들은 그것을 {양심}이라고 일컫는다. 슈퍼에고는 윤리적이면서 도덕적인 계율에 따르려는 경향일 뿐만 아니라 신앙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초자아(Superego: 슈퍼에고)란 인격구조에 있어 이드 저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자아(에고: Ego)를 초월한 존재로서 인간의 에고 위에 놓인 일련의 규범을 따르려는 외적 압력이다. 위에 있으므로 {초월}적이며 또 에고(ego)보다도 더 크고 강력하다. 사람들은 그것을 {양심}이라고 일컫는다. 슈퍼에고는 윤리적이면서 도덕적인 계율에 따르려는 경향일 뿐만 아니라 신앙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3) 자아(Ego: 에고)
자아(Ego: 에고)는 이드와 슈퍼 에고 사이에 있으면서, 그 둘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육체의 내부와 외부에서 일어나는 욕구를 조정해준다.
따라서 가치체계는 내면화되어 이드와 슈퍼 에고 사이에 있는 긴장을 해소하고 내면화된 에고의 가치체계에 의해 정상적인 삶이 가능해진다. 인격의 이러한 구성 분자들이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에 갈등이 야기된다.
이드로부터 보내는 배고프다는 느낌은 에고에게 스테이크를 먹자는 신호를 보내고, 에고는 또 이에 순응함으로써 이드의 욕구가 가라앉는다. 그러나 그의 종교적 훈련이 고기를 먹는 것은 죄가 된다는 신호를 보냈는데도 고기를 먹었다면 에고는 죄책감 때문에 자신 안에서 상당한 응징을 받게 된다.
만일 이드가 {초콜릿을 먹고 싶다}라고 말하는데 슈퍼에고가 {안돼 너는 너무 뚱뚱해}라고 말하면 갈등에 빠진다. 에고는 이드 편을 들어야 할지, 아니면 슈퍼에고 편을 들어야 할 지,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건전한 자아는 식이요법(食餌療法)에 맞는 캔디를 사서 먹음으로 갈등을 해소하게 된다.
만일 이드(Id)와 슈퍼에고(Superego) 사이의 요구로 말미암아 에고의 갈등이 너무 심각해지면 그러한 걱정이 낙심, 강박감, 강압적 행위, 공포증, 사회 부적응증, 또는 정신병으로 전환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에서 다시 논할 것이다.
자아(Ego: 에고)는 이드와 슈퍼 에고 사이에 있으면서, 그 둘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육체의 내부와 외부에서 일어나는 욕구를 조정해준다.
따라서 가치체계는 내면화되어 이드와 슈퍼 에고 사이에 있는 긴장을 해소하고 내면화된 에고의 가치체계에 의해 정상적인 삶이 가능해진다. 인격의 이러한 구성 분자들이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에 갈등이 야기된다.
이드로부터 보내는 배고프다는 느낌은 에고에게 스테이크를 먹자는 신호를 보내고, 에고는 또 이에 순응함으로써 이드의 욕구가 가라앉는다. 그러나 그의 종교적 훈련이 고기를 먹는 것은 죄가 된다는 신호를 보냈는데도 고기를 먹었다면 에고는 죄책감 때문에 자신 안에서 상당한 응징을 받게 된다.
만일 이드가 {초콜릿을 먹고 싶다}라고 말하는데 슈퍼에고가 {안돼 너는 너무 뚱뚱해}라고 말하면 갈등에 빠진다. 에고는 이드 편을 들어야 할지, 아니면 슈퍼에고 편을 들어야 할 지,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건전한 자아는 식이요법(食餌療法)에 맞는 캔디를 사서 먹음으로 갈등을 해소하게 된다.
만일 이드(Id)와 슈퍼에고(Superego) 사이의 요구로 말미암아 에고의 갈등이 너무 심각해지면 그러한 걱정이 낙심, 강박감, 강압적 행위, 공포증, 사회 부적응증, 또는 정신병으로 전환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에서 다시 논할 것이다.
B. 정신분석학
정신분석학이란, 프로이드(Sigmund Freud)가 발표한 신경증의 치료법과 심리학적인 이론체계를 의미한다.
히스테리는 의식의 영향을 받지 않고 무의식 속에 억압된 채 잠재되었던 마음의 갈등이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육체적인 증세로 변형되어서 일어나는 정신적 에너지로 생기는 병이라고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말하였다. 다시 말하면 마음속 깊이 억눌린 채 자신이 의식하지도 못하는 상처받은 잠재의식이 병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스테리를 고치려면 무의식 속에 눌려있던 감정을 정상적 통로를 통해서 방출(放出: catharsis)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자기의 학설이 처음부터 가설(假說)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입증하기가 불가능하여서 감히 {정신분석학}이라고 학(學) 자를 붙이지 못했던 것이다.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히스테리 증상에 있어 그 원인을 성적(性的)인 충동이라고 주장하여 1905년 {성(性)의 이론에 관한 3개의 논문}이라는 저술을 발표하였다. 그의 학설이 범성론적(汎性論的)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으며, 그래서 유력한 협조자였던 아둘러와 칼 융(Karl Jung) 같은 우수한 학자들이 떠나고 말았다.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성을 중심으로 무의식에 대해서 연구하는 심층심리학에 기울었고, 아둘러는 권력의지(權力意志)를 인간행동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여 자아의 문제에 주목하였고, 융은 분석적 심리학을 수립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을 연구하는 심층심리학으로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역동적인 특징 : 정신분석은 모든 정신 현상을 협력하다가도 반발하는 갈등과 결합하거나 타협하는 {힘의 상호작용}이라고 보았다. 이 힘을 자기보존의 본능인 {자아본능}과 {성본능}의 두 가지로 나누었으며, 성본능의 에너지를 리비도(libido)라고 불렀으나 1926년경부터 삶의 본능, 즉 에로스( )와 죽음의 본능인 다나토스( )의 둘로 나누었다.
삶의 본능은 영원한 결합을 찾는 자기보존 본능과 성 본능을 포함시켰고 죽음의 본능은 삶을 파괴하려는 본능을 의미한다. 특히 성 본능의 에너지 리비도(libido)에 관한 연구를 발전시켜, 생후 18개월까지의 구순(口脣)시기, 8개월에서 4세까지의 항문(肛門)시기, 3-7세의 남근기(男根期)로 발달되어 가며 남근기의 마지막 시기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가 억압 받으면 리비도의 쾌감추구는 일시적으로 중단되고 잠복기로 접어든다. 잠복된 리비도는 사춘기가 되면 다시 소생하여 성인형태로 이성에 대한 성욕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란, {남성이 아버지를 미워하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의미하며, 그리이스 신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프로이드가 정신분석학에서 사용한 단어이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의 아들인데 숙명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서 테베의 왕이 되었다. 이오카스테가 어머니인 줄 모르고 결혼한 그들은 그 사실을 알자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기의 눈을 빼었다.
프로이드는 이러한 경향은 남근기(男根期: 3-7세)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잠재기에는 억압된다고 한다.
유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서야 비로소 성인의 정상적인 생애(性愛)가 발전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콤플렉스의 극복에 실패한 사람이 신경증 환자가 되며, 이러한 콤플렉스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프로이드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1929년 말리노프스키의 문화인류학상의 발견으로 일부 종족에서만 그러한 현상이 발견되며, 보편적이거나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별히 신 프로이드 학파의 학자들은 사회적인 원인과 가족 내의 대인관계로부터 생기는 현상이라고 주장하여 프로이드의 이론을 반박했다.
한편 여자아이가 부친에 대하여 성적 애착을 가지며 모친에 대하여 증오심을 갖는 성향(性向)을 엘렉트라 콤플렉스(Elektra Complex)라고 한다.
2. 경제적인 특성 : 정신은 에너지의 막혀있는 상태, 울체(鬱滯)를 저지하고 정신이 받은 흥분의 총량을 가급적 낮추려고 한다. 정신은 쾌감을 추구하고 불쾌를 피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쾌감원칙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장에 따라 쾌감만을 추구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원칙과 타협하여 쾌감추구를 지연시키기도 하고 일시적인 불쾌감을 참는 것을 깨닫게 된다.
3. 국소론적(局所論的)인 특징 : 정신분석에서는 정신 또는 마음을 이드(id)나 에스(es), 자아(ego), 초자아(super ego)로 나눈다.
이드(id)는 무의식에 속하는 본능적인 충동을 의미한다. 기본적인 신체의 욕구로 배고픔, 갈증, 성욕, 심지어는 도박 등, 육체적 욕구를 정신적으로 표현하게 만든다. 이드는 전혀 길들여질 수 없는 육체적인 욕구이다.
자아(ego)는 이드가 바깥세계로 방출하려는 에너지의 통로를 지배한다. 자아는 의식 자체가 아니므로 자아의 대부분은 의식밖에 있으며, 필요할 때만 의식의 세계로 불러들이는데 프로이드는 이것을 전의식(前意識)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자아에는 무의식적인 측면도 있다.
초자아(super ego)는 자아의 이상(理想)으로 양심이나 도덕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자아는 초자아의 기준에 따라 자아를 맞추어 행동하려고 한다. 자아와 초자아의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죄악감이나 열등의식이 생긴다.
그러므로 자아는 초자아의 기준에 이드의 행동을 묶어두려고 한다. 그러므로 초자아에게 얽매인 이드를 해방시키면 질병은 치료된다는 것이다.
프로이드의 이론체계는 위에서 말한 세 가지가 복잡하게 얽힌 채 형성되었다. 이드의 충동을 제멋대로 방출시키면 초자아의 꾸중을 듣게 되고, 세상에서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염려하기 때문에 자아는 항상 이드의 충동적인 욕구와 초자아의 꾸중과 세상에서 받게 될 비판 사이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이 갈등을 조절하지 않으면 안되므로 불안에 빠지는 것이다.
이처럼 불안에 빠질 우려가 있는 경우에 자아는 이드에 대해 방어태세를 취하게 된다. 방어는 이드가 명하는 긴박한 충동의 발동을 간섭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억압하며 또 이드의 충동을 위험성이 없는 방향으로 돌리게 한다. 이러한 방어의 수단을 방어기제(防禦機制: defense mechanism)라고 일컫는다. 자아가 자기 임무에 실패하면 노이로제에 걸리게 되며, 이 노이로제는 현실신경증과 정신신경증으로 나누인다.
현실신경증은 외계, 즉 바깥세상이 이드의 충동성 방출에 대하여 반발하는데서 생기며, 신경쇠약, 질병염려, 불안신경증 등으로 나타나고,
정신신경증은 초자아가 너무 엄격하기 때문에 이드가 일으키는 충동이 제대로 방출되지 않은데서 오는 히스테리와 공포증과 강박신경증 등이 생기는 것이다.
히스테리는 의식의 영향을 받지 않고 무의식 속에 억압된 채 잠재되었던 마음의 갈등이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육체적인 증세로 변형되어서 일어나는 정신적 에너지로 생기는 병이라고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말하였다. 다시 말하면 마음속 깊이 억눌린 채 자신이 의식하지도 못하는 상처받은 잠재의식이 병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스테리를 고치려면 무의식 속에 눌려있던 감정을 정상적 통로를 통해서 방출(放出: catharsis)시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자기의 학설이 처음부터 가설(假說)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입증하기가 불가능하여서 감히 {정신분석학}이라고 학(學) 자를 붙이지 못했던 것이다.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히스테리 증상에 있어 그 원인을 성적(性的)인 충동이라고 주장하여 1905년 {성(性)의 이론에 관한 3개의 논문}이라는 저술을 발표하였다. 그의 학설이 범성론적(汎性論的)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으며, 그래서 유력한 협조자였던 아둘러와 칼 융(Karl Jung) 같은 우수한 학자들이 떠나고 말았다.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성을 중심으로 무의식에 대해서 연구하는 심층심리학에 기울었고, 아둘러는 권력의지(權力意志)를 인간행동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여 자아의 문제에 주목하였고, 융은 분석적 심리학을 수립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을 연구하는 심층심리학으로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역동적인 특징 : 정신분석은 모든 정신 현상을 협력하다가도 반발하는 갈등과 결합하거나 타협하는 {힘의 상호작용}이라고 보았다. 이 힘을 자기보존의 본능인 {자아본능}과 {성본능}의 두 가지로 나누었으며, 성본능의 에너지를 리비도(libido)라고 불렀으나 1926년경부터 삶의 본능, 즉 에로스( )와 죽음의 본능인 다나토스( )의 둘로 나누었다.
삶의 본능은 영원한 결합을 찾는 자기보존 본능과 성 본능을 포함시켰고 죽음의 본능은 삶을 파괴하려는 본능을 의미한다. 특히 성 본능의 에너지 리비도(libido)에 관한 연구를 발전시켜, 생후 18개월까지의 구순(口脣)시기, 8개월에서 4세까지의 항문(肛門)시기, 3-7세의 남근기(男根期)로 발달되어 가며 남근기의 마지막 시기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가 억압 받으면 리비도의 쾌감추구는 일시적으로 중단되고 잠복기로 접어든다. 잠복된 리비도는 사춘기가 되면 다시 소생하여 성인형태로 이성에 대한 성욕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란, {남성이 아버지를 미워하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의미하며, 그리이스 신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프로이드가 정신분석학에서 사용한 단어이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의 아들인데 숙명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서 테베의 왕이 되었다. 이오카스테가 어머니인 줄 모르고 결혼한 그들은 그 사실을 알자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기의 눈을 빼었다.
프로이드는 이러한 경향은 남근기(男根期: 3-7세)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잠재기에는 억압된다고 한다.
유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서야 비로소 성인의 정상적인 생애(性愛)가 발전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콤플렉스의 극복에 실패한 사람이 신경증 환자가 되며, 이러한 콤플렉스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프로이드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1929년 말리노프스키의 문화인류학상의 발견으로 일부 종족에서만 그러한 현상이 발견되며, 보편적이거나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별히 신 프로이드 학파의 학자들은 사회적인 원인과 가족 내의 대인관계로부터 생기는 현상이라고 주장하여 프로이드의 이론을 반박했다.
한편 여자아이가 부친에 대하여 성적 애착을 가지며 모친에 대하여 증오심을 갖는 성향(性向)을 엘렉트라 콤플렉스(Elektra Complex)라고 한다.
2. 경제적인 특성 : 정신은 에너지의 막혀있는 상태, 울체(鬱滯)를 저지하고 정신이 받은 흥분의 총량을 가급적 낮추려고 한다. 정신은 쾌감을 추구하고 불쾌를 피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쾌감원칙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장에 따라 쾌감만을 추구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원칙과 타협하여 쾌감추구를 지연시키기도 하고 일시적인 불쾌감을 참는 것을 깨닫게 된다.
3. 국소론적(局所論的)인 특징 : 정신분석에서는 정신 또는 마음을 이드(id)나 에스(es), 자아(ego), 초자아(super ego)로 나눈다.
이드(id)는 무의식에 속하는 본능적인 충동을 의미한다. 기본적인 신체의 욕구로 배고픔, 갈증, 성욕, 심지어는 도박 등, 육체적 욕구를 정신적으로 표현하게 만든다. 이드는 전혀 길들여질 수 없는 육체적인 욕구이다.
자아(ego)는 이드가 바깥세계로 방출하려는 에너지의 통로를 지배한다. 자아는 의식 자체가 아니므로 자아의 대부분은 의식밖에 있으며, 필요할 때만 의식의 세계로 불러들이는데 프로이드는 이것을 전의식(前意識)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자아에는 무의식적인 측면도 있다.
초자아(super ego)는 자아의 이상(理想)으로 양심이나 도덕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자아는 초자아의 기준에 따라 자아를 맞추어 행동하려고 한다. 자아와 초자아의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죄악감이나 열등의식이 생긴다.
그러므로 자아는 초자아의 기준에 이드의 행동을 묶어두려고 한다. 그러므로 초자아에게 얽매인 이드를 해방시키면 질병은 치료된다는 것이다.
프로이드의 이론체계는 위에서 말한 세 가지가 복잡하게 얽힌 채 형성되었다. 이드의 충동을 제멋대로 방출시키면 초자아의 꾸중을 듣게 되고, 세상에서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염려하기 때문에 자아는 항상 이드의 충동적인 욕구와 초자아의 꾸중과 세상에서 받게 될 비판 사이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이 갈등을 조절하지 않으면 안되므로 불안에 빠지는 것이다.
이처럼 불안에 빠질 우려가 있는 경우에 자아는 이드에 대해 방어태세를 취하게 된다. 방어는 이드가 명하는 긴박한 충동의 발동을 간섭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억압하며 또 이드의 충동을 위험성이 없는 방향으로 돌리게 한다. 이러한 방어의 수단을 방어기제(防禦機制: defense mechanism)라고 일컫는다. 자아가 자기 임무에 실패하면 노이로제에 걸리게 되며, 이 노이로제는 현실신경증과 정신신경증으로 나누인다.
현실신경증은 외계, 즉 바깥세상이 이드의 충동성 방출에 대하여 반발하는데서 생기며, 신경쇠약, 질병염려, 불안신경증 등으로 나타나고,
정신신경증은 초자아가 너무 엄격하기 때문에 이드가 일으키는 충동이 제대로 방출되지 않은데서 오는 히스테리와 공포증과 강박신경증 등이 생기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비판
근래에 들어서야 프로이드(Sigmund Freud)에게 많은 비판이 퍼부어졌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행동을 너무 기계적 방식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 비평에는 확실한 근거가 있으며, 프로이드 자신도 {강하고 건전한 에고를 통한 인간관계의 가치}에 대해서 그의 생애 말엽에야 깨닫게 되었다.
프로이드가 주장하던 많은 학설들이 요즈음 무너지고 있는데 그것은 프로이드의 인간관이 불완전하며, 사람을 전체적 인격으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프로이드의 {지나친 단순화}(Freud's Oversimplified)라고 현대 심리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오늘날의 많은 학자들은 인격의 형성에 있어 중요한 열쇠는 심리학적이거나 생물학적 단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과의 관계}라고 지적한다.
과거의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을 사전의 정의에 맞추려는 행동주의에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기계적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 심리학자들은 인지론(認知論 : Cognitive science)이란 새로운 영역에 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프로이드의 학설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비록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했지만, 사회의 변화에 따르는 인간관계와 생활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마음은 놀라울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볼 수도 없으며, 느낄 수도, 무게를 달거나 해부하여 갈라 보일 수도 없기 때문에 심리학을 일컬어 가설적 구성개념(假設的構成槪念)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심리학에 대해서 이론을 전개하고 있지만 정확한 이론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임시로 설치해놓은 가설(假設: 건축할 때 임시 설치하는 물건)처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전개된 이론은 믿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정신분석을 중심으로 하는 심리학적인 상담은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면 마음이란 어떠한 것인가?
마음은 어느 정도 지능이나 인격과 연관성을 갖는다. 성경에서 마음은 그리스도를 닮거나 악한 마음이 된다. 마음은 만들어지고 조작될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에게 천재성을 주거나 베토벤에게 창의성, 그리고 히틀러에게는 야만적인 잔인성을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마음은 각 사람의 생활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법에 따라서 영향을 끼친다. 마음은 타인이나 우리 자신에 의해 조절될 수도 있으며, 왜곡된 생각에 의해서 뒤틀릴 수도 있고,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바르게 지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란 너무나 다양한 의미들을 가졌기 때문에 한 가지만의 정의로 사람을 만족시켜 줄 수는 없다. 그러나 굳이 정의한다면, 사고(思考), 학습(學習), 문제해결(問題解決), 의지(意志), 인식(認識), 집중(集中), 기억(記憶), 주의(主義), 사상(思想)과 감정(感情)의 경험(經驗) 등을 포함한 인간의 정신활동의 총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프로이드(Sigmund Freud)의 정신분석학으로 말미암아 심리학도 기계적인 판단에 흐르는 경향을 갖게 되었으며, 그래서 오늘날 심리학적 상담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근래에 들어서야 프로이드(Sigmund Freud)에게 많은 비판이 퍼부어졌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행동을 너무 기계적 방식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 비평에는 확실한 근거가 있으며, 프로이드 자신도 {강하고 건전한 에고를 통한 인간관계의 가치}에 대해서 그의 생애 말엽에야 깨닫게 되었다.
프로이드가 주장하던 많은 학설들이 요즈음 무너지고 있는데 그것은 프로이드의 인간관이 불완전하며, 사람을 전체적 인격으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프로이드의 {지나친 단순화}(Freud's Oversimplified)라고 현대 심리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오늘날의 많은 학자들은 인격의 형성에 있어 중요한 열쇠는 심리학적이거나 생물학적 단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과의 관계}라고 지적한다.
과거의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을 사전의 정의에 맞추려는 행동주의에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기계적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 심리학자들은 인지론(認知論 : Cognitive science)이란 새로운 영역에 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프로이드의 학설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비록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했지만, 사회의 변화에 따르는 인간관계와 생활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마음은 놀라울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볼 수도 없으며, 느낄 수도, 무게를 달거나 해부하여 갈라 보일 수도 없기 때문에 심리학을 일컬어 가설적 구성개념(假設的構成槪念)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심리학에 대해서 이론을 전개하고 있지만 정확한 이론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임시로 설치해놓은 가설(假設: 건축할 때 임시 설치하는 물건)처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전개된 이론은 믿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정신분석을 중심으로 하는 심리학적인 상담은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면 마음이란 어떠한 것인가?
마음은 어느 정도 지능이나 인격과 연관성을 갖는다. 성경에서 마음은 그리스도를 닮거나 악한 마음이 된다. 마음은 만들어지고 조작될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에게 천재성을 주거나 베토벤에게 창의성, 그리고 히틀러에게는 야만적인 잔인성을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마음은 각 사람의 생활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법에 따라서 영향을 끼친다. 마음은 타인이나 우리 자신에 의해 조절될 수도 있으며, 왜곡된 생각에 의해서 뒤틀릴 수도 있고,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바르게 지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란 너무나 다양한 의미들을 가졌기 때문에 한 가지만의 정의로 사람을 만족시켜 줄 수는 없다. 그러나 굳이 정의한다면, 사고(思考), 학습(學習), 문제해결(問題解決), 의지(意志), 인식(認識), 집중(集中), 기억(記憶), 주의(主義), 사상(思想)과 감정(感情)의 경험(經驗) 등을 포함한 인간의 정신활동의 총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프로이드(Sigmund Freud)의 정신분석학으로 말미암아 심리학도 기계적인 판단에 흐르는 경향을 갖게 되었으며, 그래서 오늘날 심리학적 상담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C. 성경에서 말하는 마음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떤 영어의 단어도 성경에 표현된 마음(mind)의 뜻과는 그 뜻이 일치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킹 제임스 번역 성경에는 여섯 개의 다른 히브리 단어들이 마음(mind)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이 단어들은 영어로 번역될 때에 혼(soul)이나 마음(mind), 그리고 태도(attitude)로 번역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구약의 일부에서는 기억을 뜻한다(사46:8-9). 네페쉬( )를 영혼으로 번역하면서도 RSV에서는 마음으로 번역하고 있다.
신약에서는 감정적인 안전성(emotional stability)에 관계된 예들을 보여준다(막5:15, 눅8:35→정신). 또 야고보 서에서는 두 마음을 품은 자( : double minded)라고 표현하며,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마음이 생각(thinking)을 의미하기도 한다.
성경의 저자들은 심리학을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었고, 마음에 대한 개념도 역시 하나의 수동적 반사나 명상이라기보다는 거의 행동 쪽에 더욱 가깝게 설명하고 있다. 근심스러운 마음은 위축된 행동을 낳고 어리석은 마음은 어리석은 말을 하게 만든다. 죄를 품은 마음은 하나님과의 적대행위를 범하게 된다.
부패한 마음을 가진 자는 다툼을 일으키는 등, 우리의 마음은 조절될 수 있으며 행동을 위해 준비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갈5:17은 {인간적인 육체의 욕망}과 {성령의 의도(意圖)} 사이의 긴장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성령의 의도대로 순종하는 자에게는 육체의 욕망을 이겨낼 수 있다고 가르쳐준다.
{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5:16-17)
이것은 성경을 통해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진리이다. 인간의 마음은 모든 만물보다 부패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한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반영하고 있지만,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반영한다.
그것이 바로 육체적인 욕망을 뜻한다. 성령의 의도와 인도하심에 순종하게 될 때에 육체의 욕망을 잠재울 수 있으며 그것이 건강의 비결이 되기도 한다. 성령께서는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의 무능함을 능력으로 바꾸어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7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8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9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렘17:7-9)
노만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이 로버트 슐러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자기 존중의 신학과 가능성의 신학을 그는 강조하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것들은 하나님이 없어도 자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상으로 바뀌어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결정한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상이 하나님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의 무능함과 연약성을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깨달아야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절실하게 요구하게 되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목회상담학}은 {상처 입은 자아를 치료하여 건전한 삶이 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상담자는 바른 길로 인도하는 자가 된다. 상담 치료학이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본래의 형상을 회복시켜주는 하나의 과정을 공부하는 것이므로 성령께서 전적으로 책임져 주시도록 맡겨야 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찾아가도록 가르쳐주는 가장 귀한 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한 치유와 구원의 역사}를 가장 기쁜 소식으로 병든 심령들에게 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담 치료학(Counselling Therapy)}은 성경을 중심으로 해서 치료할 뿐만 아니라 성령을 의지해서 상담하고 치료하는 학문적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킹 제임스 번역 성경에는 여섯 개의 다른 히브리 단어들이 마음(mind)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이 단어들은 영어로 번역될 때에 혼(soul)이나 마음(mind), 그리고 태도(attitude)로 번역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구약의 일부에서는 기억을 뜻한다(사46:8-9). 네페쉬( )를 영혼으로 번역하면서도 RSV에서는 마음으로 번역하고 있다.
신약에서는 감정적인 안전성(emotional stability)에 관계된 예들을 보여준다(막5:15, 눅8:35→정신). 또 야고보 서에서는 두 마음을 품은 자( : double minded)라고 표현하며,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마음이 생각(thinking)을 의미하기도 한다.
성경의 저자들은 심리학을 훈련받지 않은 사람이었고, 마음에 대한 개념도 역시 하나의 수동적 반사나 명상이라기보다는 거의 행동 쪽에 더욱 가깝게 설명하고 있다. 근심스러운 마음은 위축된 행동을 낳고 어리석은 마음은 어리석은 말을 하게 만든다. 죄를 품은 마음은 하나님과의 적대행위를 범하게 된다.
부패한 마음을 가진 자는 다툼을 일으키는 등, 우리의 마음은 조절될 수 있으며 행동을 위해 준비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갈5:17은 {인간적인 육체의 욕망}과 {성령의 의도(意圖)} 사이의 긴장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성령의 의도대로 순종하는 자에게는 육체의 욕망을 이겨낼 수 있다고 가르쳐준다.
{16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5:16-17)
이것은 성경을 통해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진리이다. 인간의 마음은 모든 만물보다 부패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한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반영하고 있지만,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반영한다.
그것이 바로 육체적인 욕망을 뜻한다. 성령의 의도와 인도하심에 순종하게 될 때에 육체의 욕망을 잠재울 수 있으며 그것이 건강의 비결이 되기도 한다. 성령께서는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의 무능함을 능력으로 바꾸어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7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8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9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렘17:7-9)
노만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이 로버트 슐러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자기 존중의 신학과 가능성의 신학을 그는 강조하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것들은 하나님이 없어도 자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상으로 바뀌어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결정한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상이 하나님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인간의 무능함과 연약성을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깨달아야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절실하게 요구하게 되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목회상담학}은 {상처 입은 자아를 치료하여 건전한 삶이 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상담자는 바른 길로 인도하는 자가 된다. 상담 치료학이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에게 본래의 형상을 회복시켜주는 하나의 과정을 공부하는 것이므로 성령께서 전적으로 책임져 주시도록 맡겨야 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찾아가도록 가르쳐주는 가장 귀한 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한 치유와 구원의 역사}를 가장 기쁜 소식으로 병든 심령들에게 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담 치료학(Counselling Therapy)}은 성경을 중심으로 해서 치료할 뿐만 아니라 성령을 의지해서 상담하고 치료하는 학문적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D. 삶에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가 ?
1. 인간의 병은 어디에서 오는가 ?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삶이란 악전고투(惡戰苦鬪)의 연속이다. 오늘날까지 인간이 누리는 행복(幸福)이란 오로지 순간적으로만 맛볼 수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똑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영속적으로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된 것은 인간의 커다란 실책 때문이었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잘못된 욕망 때문에 행복 대신 불행을 얻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 자신에게 닥치는 불행이나 고난을 참고 견디기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쾌락을 얻고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비결을 얻기 위해서 수많은 돈과 시간을 소비하면서도 간단한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외면해버리기가 일쑤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생활을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여러 각도로 조사해보면 악전고투의 생활에서 오는 정신적인 혹사(酷使)가 그들이 앓고 있는 모든 질병의 원인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질병의 원인이 대개 {불안}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 불안의 원인들은 단순한 두려움만이 아니라, 미움과 분노, 시기 등, 자신 안에서 영적인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불안과 두려운 마음은 본래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도록 하려는 사탄의 계략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딤후1:7)
리브만(Joshua Liebman)이란 유태인이 {마음의 평화}란 책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그 자신은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고 책을 발행한지 3년 후인 41세에 사망하고 말았다.
리브만의 사망 원인은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수많은 질문으로 시달림을 받다가 그 자신이 마음의 평화를 상실한 채 사망했던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이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은 50대의 사람들이 직장에서 은퇴한 뒤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갖게 되는 불안감이다.
{시험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학생들의 불안감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누가 해결해야 하는가?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환자(Client)들은 그들의 질병에서 가장 큰 원인이 되는 불행 때문에 의사를 찾아오지는 않는다. 환자가 의사를 굳게 믿을 수 있을 때까지는 결코 자기 불행을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은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의 질병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지 못하는 숨겨져 있는 질병이다. 따라서 닫혀져 있는 자신의 마음 문을 개방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는 것이 치료의 첫 단계이다.
따라서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게 되어야 비로소 껍질을 벗고 자신의 실상(實狀)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이 일단 육체의 증상(症狀)으로 나타나게 될 때에는 그것을 혼자서 참고 견디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환자는 불행 때문에 의사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증상 때문에 의사에게 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목회상담(牧會相談)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목회상담자(Counsellor)는 영적 의사의 위치에서 내담자(Client)가 가진 불행의 원인을 제거시키고 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에게 말하지 않는 불행도 목회자에게는 털어놓기 때문에 상담을 통해서 치료의 효과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는 현재의 생활방식이 최선의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까지와 다른 생활 방식을 갖는 것이 유일한 치료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고 새로운 생활방식을 배워야만 된다.
자신에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낡은 생활의 감정(生活感情)을 떨쳐버림으로 감정적 동요(感情的動搖)를 없애며, 건전한 감정을 길러내는 것이 치료의 좋은 방법이다. 삶에 지친 가운데서 오는 감정적인 동요가 대개 사람들의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감정이 육체에 끼치는 영향은 의식(意識)과 의지(意志)의 범위밖에 있다는 사실이다.
잠재적(潛在的)인 생각을 의식적으로 고쳐야 감정을 치료할 수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감정적 동요 때문에 병이 생긴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자신은 절대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요사스러운 마귀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붙어 다닌다는 사실이다.
감정의 동요가 육체적 질병으로 변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그것은 감정이 순간 순간의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에 의해서 병이 생기게 되면 개인적으로 파국이 온다. 감정에 의한 질병(Emotionally induced illness)을 대개의 의사들은 신경성 질병이라고 흔히 말하며, 때로는 기능질환이라고도 한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영속적으로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된 것은 인간의 커다란 실책 때문이었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잘못된 욕망 때문에 행복 대신 불행을 얻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 자신에게 닥치는 불행이나 고난을 참고 견디기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쾌락을 얻고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비결을 얻기 위해서 수많은 돈과 시간을 소비하면서도 간단한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외면해버리기가 일쑤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생활을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여러 각도로 조사해보면 악전고투의 생활에서 오는 정신적인 혹사(酷使)가 그들이 앓고 있는 모든 질병의 원인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질병의 원인이 대개 {불안}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 불안의 원인들은 단순한 두려움만이 아니라, 미움과 분노, 시기 등, 자신 안에서 영적인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불안과 두려운 마음은 본래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도록 하려는 사탄의 계략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딤후1:7)
리브만(Joshua Liebman)이란 유태인이 {마음의 평화}란 책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그 자신은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고 책을 발행한지 3년 후인 41세에 사망하고 말았다.
리브만의 사망 원인은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수많은 질문으로 시달림을 받다가 그 자신이 마음의 평화를 상실한 채 사망했던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이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은 50대의 사람들이 직장에서 은퇴한 뒤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갖게 되는 불안감이다.
{시험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학생들의 불안감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누가 해결해야 하는가?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환자(Client)들은 그들의 질병에서 가장 큰 원인이 되는 불행 때문에 의사를 찾아오지는 않는다. 환자가 의사를 굳게 믿을 수 있을 때까지는 결코 자기 불행을 한 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은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의 질병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지 못하는 숨겨져 있는 질병이다. 따라서 닫혀져 있는 자신의 마음 문을 개방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는 것이 치료의 첫 단계이다.
따라서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게 되어야 비로소 껍질을 벗고 자신의 실상(實狀)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이 일단 육체의 증상(症狀)으로 나타나게 될 때에는 그것을 혼자서 참고 견디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환자는 불행 때문에 의사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증상 때문에 의사에게 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목회상담(牧會相談)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목회상담자(Counsellor)는 영적 의사의 위치에서 내담자(Client)가 가진 불행의 원인을 제거시키고 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에게 말하지 않는 불행도 목회자에게는 털어놓기 때문에 상담을 통해서 치료의 효과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서는 현재의 생활방식이 최선의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까지와 다른 생활 방식을 갖는 것이 유일한 치료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고 새로운 생활방식을 배워야만 된다.
자신에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낡은 생활의 감정(生活感情)을 떨쳐버림으로 감정적 동요(感情的動搖)를 없애며, 건전한 감정을 길러내는 것이 치료의 좋은 방법이다. 삶에 지친 가운데서 오는 감정적인 동요가 대개 사람들의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감정이 육체에 끼치는 영향은 의식(意識)과 의지(意志)의 범위밖에 있다는 사실이다.
잠재적(潛在的)인 생각을 의식적으로 고쳐야 감정을 치료할 수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감정적 동요 때문에 병이 생긴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자신은 절대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요사스러운 마귀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붙어 다닌다는 사실이다.
감정의 동요가 육체적 질병으로 변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그것은 감정이 순간 순간의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에 의해서 병이 생기게 되면 개인적으로 파국이 온다. 감정에 의한 질병(Emotionally induced illness)을 대개의 의사들은 신경성 질병이라고 흔히 말하며, 때로는 기능질환이라고도 한다.
2. 왜 감정에 의해서 병이 생기는가?
현대 의학의 문제점이란, 감정에 의해서 생기는 병을 제대로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원인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환자들에게 치료의 방법을 가르쳐 주어도 환자들이 그대로 시행하지 않으며,
둘째: 의사 자신이 환자들을 그러한 삶으로 인도할 수 있을 만큼 성숙되어 있지 않고
셋째는 감정의 움직임을 정확한 자료로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의 욕구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환자가 즐겁게 납득할 수 있는 진단을 줄 수가 있다. 그런데도 의사가 환자에게 {당신의 병은 감정에 의한 것입니다} 또는 {신경성입니다}라고 말하면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빼앗길 염려가 있기 때문에 환자를 다른 병원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도 어려운 용어로 이야기하며 환자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는 것이 오늘날 의사들의 실태이다.
▶ 이 병이 어떻게 작용하여 환자의 증상을 가져오는가?
▶ 어떤 감정이 병의 원인으로 되어 있는가?
▶ 환자는 지금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감정 대신에 어떻게 해야만 더 훌륭한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위의 사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유일하게도 {필요에 응하는 심리요법으로 치료하는 방법}이었다. 필요에 응한 심리요법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현재는 겨우 1% 정도만 그러한 혜택을 입는 반면 대용요법(代用療法)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대용요법(代用療法)은 수 천년 동안 인정되어 온 치료법이다. 원시적 무당은 병자에게 {너는 악마에게 홀렸다}고 암시를 준다. 암시적인 요법은 의사나 심령술사들도 많이 사용하지만 완치를 볼 수는 없다. 대용요법이란 언제든지 일시적인 미봉책일 뿐이다. 대용요법의 약점은 다른 질병으로 잘못 진단 내릴 때 기능질환을 악화시키며, 만성적으로 교착(膠着)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까딱 잘못해서 의사가 부주의라도 할 경우에는 환자가 일종의 병이 아닌 공포증을 일으키는데 이처럼 의사의 부주의로 인해서 생기는 질병을 아이아트로제닉 병(Iatrogenic Disease)이라고 한다. 그런데 감정 때문에 생기는 질병은 정신적 증상이 아니라 육체적 증상을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감정의 상처 때문에 생겼으면서도 증상은 육체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치료가 어렵다.
그런데 생각을 많이 하는 지성적(知性的)인 사람들에게 이러한 병이 잘 나타난다. 너무나 바빠서 생각할 틈도 없다는 사람들은 대개 이러한 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
그러면 감정이란 어떠한 것일까?
1884년에 윌리암 제임스는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다.
{감정이란 육체에 있어서의 감각적인 변화에 의해서 나타나는 일종의 정신상태이다}
순간 순간적으로 변하는 감정에 의해서 근육이나 혈관, 또는 내장이나 내분비선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며, 이러한 변화 또는 변화에 따르는 지각될 수 있는 정신상태를 통틀어서 감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변화가 없는 감정이란 있을 수가 없다. 감정에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육체의 여러 가지 부분에서 지나친 자극이 될만한 변화를 주는 감정으로 신경계통을 통해서 어느 기관이나 근육에 일어난다. 이런 감정들이 일어날 때에 불유쾌한 느낌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것을 {불유쾌한 감정}이라고 하였다. 노여움, 슬픔, 걱정, 공포, 당황, 실의, 불안 등의 감정이 바로 불유쾌한 감정들이다.
불유쾌한 감정에서는 아드레날린(Adrenaline)이라는 부신피질 호르몬이 발생하여 몸에 이상을 초래하게 된다. 사람의 몸에는 면역성이 있어서 어떠한 질병에도 견디어낼 수 있다. 그런데도 아드레날린으로 인해 면역성이 약화(弱化)되기 때문에 사람은 하찮은 질병에도 견디지 못하고 병을 앓게 된다.
아드레날린이 발산되기 시작하면 사람의 몸에 흐르는 자기(磁氣: Magnetism)가 정상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거꾸로 역류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몸 안에서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작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건강이 나빠진다는 뜻이다.
아드레날린은 불유쾌한 감정에서 나오기 때문에 분노하거나 미워할 때 자신의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분노를 통해서 얻은 소중한 경험을 소개하겠다.
어떠한 청년을 구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청년이 배신을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화를 내게 되었고 그를 쫓아냈는데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에 강의가 있어서 전철을 타게 되었는데 기계가 전철 티켓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몇 번을 시험해도 티켓을 거부하는 바람에 역무원의 도움으로 강의하러 갔다. 내릴 때에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돌아올 때에 문득, 내가 분노하였기 때문에 자기(磁氣: Magnetism)가 거꾸로 흐른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것을 깨달은 내 마음은 기쁨이 생겼다. 그 다음 전철 티켓을 집어넣으니까 비로소 티켓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미워하는 것은 자신을 죽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심령까지 죽이게 만든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동양의학에서도 여러 가지 감정 중에서 특히 분노를 나타내는 감정을 제일 해로운 것으로 언급한다. 사람이 분노하게 되면 맥박이 빨라지며 혈압이 올라가거나 경련성 질환 및 소화기 장애까지도 유발하게 된다.
더욱이 분노의 감정을 품고 잠자리에 들면 혈관이 수축하여 혈액순환에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고 숙면을 취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소위 가슴앓이나 홧병(火病)으로 알려진 신경성 질환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습관적으로 분노하는 사람은 결국 체질이 산성화되어서 각종 성인병을 유발시킬 수 있는 나쁜 체질로 변하는 것이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간을 손상시키게 된다고 지적한다. 또 슬퍼하고 감상에 젖는 사람은 폐결핵의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정서적인 안정을 얻는 것이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둘째, 육체에 나타나는 자극이 세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은 알맞은 자극으로 {유쾌한 감정}이라고 불렀다. 유쾌한 감정이 생기면 기분 좋은 느낌을 갖게 되며, 이러한 감정은 희망, 기쁨, 용기, 냉철, 애정, 일치의 감정이 된다.
즐거운 감정에서는 엔돌핀(Endorphin)이라는 진통제의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 나와서 모든 통증을 제거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며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게 된다. 즐거운 감정을 소유하는 것이야말로 건강의 비결이다.
그런데 일시적으로 즐거운 감정을 갖는 것도 생활에서 커다란 도움이 되지만, 즐거운 감정이 항상 솟아나도록 해야만 된다. 항상 즐거움이 솟아나는 삶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즐거운 감정을 일으키며, 감사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즐거운 감정을 소유하고 삶의 방법을 고쳐나가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다. 영적으로 치료하는 것은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즐거운 마음을 갖게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유쾌한 감정 때문에 자신의 몸에서 에너지의 활력이 줄거나 질병을 앓게 되는 것이다. 불유쾌한 감정들 중에서도 분노의 외면적인 중요한 표현들을 보면 대개 다음과 같다.
·안색이 빨개진다. ·눈가죽이 늘어난다.
·눈이 충혈 된다. ·입술이 뻣뻣해진다.
·턱을 끈다. ·주먹을 불끈 쥔다.
·팔이 떨린다. ·목소리가 떨린다.
그러나 내부적 표현, 즉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더욱 심원하고 현저하다. 보통 때보다 혈액은 빠르게 응결한다. 노했을 때는 싸움을 하기가 쉽고, 그러므로 상처를 받게 되고 또 피를 흘리게 된다.
짐승들은 싸우며 피를 흘릴 때 피가 빠르게 응고한다. 따라서 혈액이 속히 응결하기 때문에 혈투를 하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다. 이것은 생물학적인 반응이다. 아드레날린이 나와 피가 응고되지만 때에 따라서는 아드레날린이 도움을 준다.
노하면 위 입구의 근육이 굳게 수축되어 노하고 있는 동안은 그 어떠한 것도 위(胃)를 통과할 수가 없고, 소화기 계통은 전부 경련을 일으키며 심한 복통을 일으키기 쉽다. 그러나 감정이 안정되면 언제 그랬느냐? 는 듯이 멀쩡해지는 것이다.
맥박은 몹시 올라가 노여움이 진정될 때까지 계속된다. 혈압도 높아지며 때로는 뇌의 혈관이 터져서 졸도까지 하게 된다. 또 심장의 관상동맥이 굳게 수축되어 협심증을 일으키기도 하고 때로는 치명적인 동맥경화(動脈硬化)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정서적인 안정은 건강에 있어서 필수적일 뿐 아니라 건전한 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심령의 평화를 특히 강조하고 있다.
3. 감정으로 인한 병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
첫째: 환자들에게 치료의 방법을 가르쳐 주어도 환자들이 그대로 시행하지 않으며,
둘째: 의사 자신이 환자들을 그러한 삶으로 인도할 수 있을 만큼 성숙되어 있지 않고
셋째는 감정의 움직임을 정확한 자료로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의 욕구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환자가 즐겁게 납득할 수 있는 진단을 줄 수가 있다. 그런데도 의사가 환자에게 {당신의 병은 감정에 의한 것입니다} 또는 {신경성입니다}라고 말하면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빼앗길 염려가 있기 때문에 환자를 다른 병원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도 어려운 용어로 이야기하며 환자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는 것이 오늘날 의사들의 실태이다.
▶ 이 병이 어떻게 작용하여 환자의 증상을 가져오는가?
▶ 어떤 감정이 병의 원인으로 되어 있는가?
▶ 환자는 지금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감정 대신에 어떻게 해야만 더 훌륭한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위의 사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유일하게도 {필요에 응하는 심리요법으로 치료하는 방법}이었다. 필요에 응한 심리요법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현재는 겨우 1% 정도만 그러한 혜택을 입는 반면 대용요법(代用療法)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대용요법(代用療法)은 수 천년 동안 인정되어 온 치료법이다. 원시적 무당은 병자에게 {너는 악마에게 홀렸다}고 암시를 준다. 암시적인 요법은 의사나 심령술사들도 많이 사용하지만 완치를 볼 수는 없다. 대용요법이란 언제든지 일시적인 미봉책일 뿐이다. 대용요법의 약점은 다른 질병으로 잘못 진단 내릴 때 기능질환을 악화시키며, 만성적으로 교착(膠着)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까딱 잘못해서 의사가 부주의라도 할 경우에는 환자가 일종의 병이 아닌 공포증을 일으키는데 이처럼 의사의 부주의로 인해서 생기는 질병을 아이아트로제닉 병(Iatrogenic Disease)이라고 한다. 그런데 감정 때문에 생기는 질병은 정신적 증상이 아니라 육체적 증상을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감정의 상처 때문에 생겼으면서도 증상은 육체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치료가 어렵다.
그런데 생각을 많이 하는 지성적(知性的)인 사람들에게 이러한 병이 잘 나타난다. 너무나 바빠서 생각할 틈도 없다는 사람들은 대개 이러한 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
그러면 감정이란 어떠한 것일까?
1884년에 윌리암 제임스는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렸다.
{감정이란 육체에 있어서의 감각적인 변화에 의해서 나타나는 일종의 정신상태이다}
순간 순간적으로 변하는 감정에 의해서 근육이나 혈관, 또는 내장이나 내분비선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며, 이러한 변화 또는 변화에 따르는 지각될 수 있는 정신상태를 통틀어서 감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육체적인 변화가 없는 감정이란 있을 수가 없다. 감정에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육체의 여러 가지 부분에서 지나친 자극이 될만한 변화를 주는 감정으로 신경계통을 통해서 어느 기관이나 근육에 일어난다. 이런 감정들이 일어날 때에 불유쾌한 느낌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것을 {불유쾌한 감정}이라고 하였다. 노여움, 슬픔, 걱정, 공포, 당황, 실의, 불안 등의 감정이 바로 불유쾌한 감정들이다.
불유쾌한 감정에서는 아드레날린(Adrenaline)이라는 부신피질 호르몬이 발생하여 몸에 이상을 초래하게 된다. 사람의 몸에는 면역성이 있어서 어떠한 질병에도 견디어낼 수 있다. 그런데도 아드레날린으로 인해 면역성이 약화(弱化)되기 때문에 사람은 하찮은 질병에도 견디지 못하고 병을 앓게 된다.
아드레날린이 발산되기 시작하면 사람의 몸에 흐르는 자기(磁氣: Magnetism)가 정상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거꾸로 역류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몸 안에서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작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건강이 나빠진다는 뜻이다.
아드레날린은 불유쾌한 감정에서 나오기 때문에 분노하거나 미워할 때 자신의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분노를 통해서 얻은 소중한 경험을 소개하겠다.
어떠한 청년을 구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청년이 배신을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화를 내게 되었고 그를 쫓아냈는데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에 강의가 있어서 전철을 타게 되었는데 기계가 전철 티켓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몇 번을 시험해도 티켓을 거부하는 바람에 역무원의 도움으로 강의하러 갔다. 내릴 때에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돌아올 때에 문득, 내가 분노하였기 때문에 자기(磁氣: Magnetism)가 거꾸로 흐른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것을 깨달은 내 마음은 기쁨이 생겼다. 그 다음 전철 티켓을 집어넣으니까 비로소 티켓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미워하는 것은 자신을 죽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심령까지 죽이게 만든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동양의학에서도 여러 가지 감정 중에서 특히 분노를 나타내는 감정을 제일 해로운 것으로 언급한다. 사람이 분노하게 되면 맥박이 빨라지며 혈압이 올라가거나 경련성 질환 및 소화기 장애까지도 유발하게 된다.
더욱이 분노의 감정을 품고 잠자리에 들면 혈관이 수축하여 혈액순환에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고 숙면을 취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소위 가슴앓이나 홧병(火病)으로 알려진 신경성 질환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습관적으로 분노하는 사람은 결국 체질이 산성화되어서 각종 성인병을 유발시킬 수 있는 나쁜 체질로 변하는 것이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간을 손상시키게 된다고 지적한다. 또 슬퍼하고 감상에 젖는 사람은 폐결핵의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정서적인 안정을 얻는 것이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둘째, 육체에 나타나는 자극이 세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은 알맞은 자극으로 {유쾌한 감정}이라고 불렀다. 유쾌한 감정이 생기면 기분 좋은 느낌을 갖게 되며, 이러한 감정은 희망, 기쁨, 용기, 냉철, 애정, 일치의 감정이 된다.
즐거운 감정에서는 엔돌핀(Endorphin)이라는 진통제의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 나와서 모든 통증을 제거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며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게 된다. 즐거운 감정을 소유하는 것이야말로 건강의 비결이다.
그런데 일시적으로 즐거운 감정을 갖는 것도 생활에서 커다란 도움이 되지만, 즐거운 감정이 항상 솟아나도록 해야만 된다. 항상 즐거움이 솟아나는 삶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즐거운 감정을 일으키며, 감사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즐거운 감정을 소유하고 삶의 방법을 고쳐나가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다. 영적으로 치료하는 것은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즐거운 마음을 갖게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유쾌한 감정 때문에 자신의 몸에서 에너지의 활력이 줄거나 질병을 앓게 되는 것이다. 불유쾌한 감정들 중에서도 분노의 외면적인 중요한 표현들을 보면 대개 다음과 같다.
·안색이 빨개진다. ·눈가죽이 늘어난다.
·눈이 충혈 된다. ·입술이 뻣뻣해진다.
·턱을 끈다. ·주먹을 불끈 쥔다.
·팔이 떨린다. ·목소리가 떨린다.
그러나 내부적 표현, 즉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더욱 심원하고 현저하다. 보통 때보다 혈액은 빠르게 응결한다. 노했을 때는 싸움을 하기가 쉽고, 그러므로 상처를 받게 되고 또 피를 흘리게 된다.
짐승들은 싸우며 피를 흘릴 때 피가 빠르게 응고한다. 따라서 혈액이 속히 응결하기 때문에 혈투를 하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다. 이것은 생물학적인 반응이다. 아드레날린이 나와 피가 응고되지만 때에 따라서는 아드레날린이 도움을 준다.
노하면 위 입구의 근육이 굳게 수축되어 노하고 있는 동안은 그 어떠한 것도 위(胃)를 통과할 수가 없고, 소화기 계통은 전부 경련을 일으키며 심한 복통을 일으키기 쉽다. 그러나 감정이 안정되면 언제 그랬느냐? 는 듯이 멀쩡해지는 것이다.
맥박은 몹시 올라가 노여움이 진정될 때까지 계속된다. 혈압도 높아지며 때로는 뇌의 혈관이 터져서 졸도까지 하게 된다. 또 심장의 관상동맥이 굳게 수축되어 협심증을 일으키기도 하고 때로는 치명적인 동맥경화(動脈硬化)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정서적인 안정은 건강에 있어서 필수적일 뿐 아니라 건전한 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심령의 평화를 특히 강조하고 있다.
3. 감정으로 인한 병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
감정은 단 한번만 상처를 입게 되어도 어떠한 증상을 가져오기도 하며, 그러한 증상은 단일 증상이던가, 여러 가지의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개의 기능장해는 아주 사소하면서도 불유쾌한 감정이 되풀이되는 것이 원인으로 되어 있다. 특히 이러한 증상은 소심한 여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감정으로 인한 질병은 육체의 두 가지 조직을 통해 나타난다. 어떤 것은 신경계통을 통해서 나타나고 또 어떤 것은 내분비선을 통해서 나타난다. 감정으로 인해서 생기는 질병은 {신경계통}이나 {내분비선} 둘 중의 한 가지 통로로 나타나는데도 신경성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로 감정에서 오는 질병이다.
감정에 의한 병은 의지(意志)의 지배력이 미치지 못하는 자율신경계(自律神經系)라고 불리는 부분에 나타난다. 불유쾌한 감정은 대개 골근육(骨筋肉) 및 내장근육의 양쪽의 수축으로 일어난다. 만약 이 근육들의 긴장에 의한 감정이 오래 계속되거나 단조하게 되풀이될 때는 관계된 근육이 아프기 시작하는 것이다.
목덜미에 통증을 느끼고 식도 상단부의 근육이 뻣뻣해지면서 목구멍에 종기가 난 것처럼 느끼며, 또한 식도 하단부의 근육이 경직되면서 심장경련으로 느끼게 된다.
유쾌한 감정을 통해서 왕성한 식욕을 느끼는 반면, 불유쾌한 감정을 통해서 위의 근육이 뻣뻣해지면 마치 돌덩이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위의 근육이 수축할 때에 느끼는 통증은 궤양증세와 비슷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위의 아픔이 아닌 근육의 아픔이라는 사실이다.
맹장염으로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맹장을 수술한 뒤에도 가끔씩 맹장부위가 아픈 경험을 갖는데 이것도 역시 감정에 의해서 맹장부위의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 있으며 허옇게 핏기를 잃은 상태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대개의 의사들이 환자들을 진찰하면서 감정에 의한 신체적인 증상을 잘못 진단하는 경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긴장감 때문에 육체적으로 고통을 호소할 경우 근육이 수축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람들에게 {어디 아픈 데가 있을 것입니다. 어디가 아픈지 말해보라}고 말하면 그 순간까지 건강하게 지내던 사람도 이상하게 아픔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어딘가 항상 아프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아프다기보다는 감정의 변화로 말미암아서 고통을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처럼 감정에 의해서 신체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을 {정신신체 질환}(精神身體疾患)이나 기능질환(機能疾患)이라고도 부른다. 그것은 감정의 악화 때문에 생긴 병이면서도 육체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정신 신경증(精神神經症)이라고 불리는 정신질환을 비롯해서 노이로제 및 불면증(不眠症), 불안신경증(不安神經症) 등 많은 정신장애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질병들은 실제의 병이든지 감정에 의한 가상(假想)적인 병이든지 모두 생활의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얼마든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는데도 스스로 불행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다른 사람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배우고 그 방법대로 실천하면 어느 사이에 행복한 삶으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자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심령으로부터 기쁨을 누리도록 잘 이끌어주어야 된다.
감정으로 인한 질병은 육체의 두 가지 조직을 통해 나타난다. 어떤 것은 신경계통을 통해서 나타나고 또 어떤 것은 내분비선을 통해서 나타난다. 감정으로 인해서 생기는 질병은 {신경계통}이나 {내분비선} 둘 중의 한 가지 통로로 나타나는데도 신경성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로 감정에서 오는 질병이다.
감정에 의한 병은 의지(意志)의 지배력이 미치지 못하는 자율신경계(自律神經系)라고 불리는 부분에 나타난다. 불유쾌한 감정은 대개 골근육(骨筋肉) 및 내장근육의 양쪽의 수축으로 일어난다. 만약 이 근육들의 긴장에 의한 감정이 오래 계속되거나 단조하게 되풀이될 때는 관계된 근육이 아프기 시작하는 것이다.
목덜미에 통증을 느끼고 식도 상단부의 근육이 뻣뻣해지면서 목구멍에 종기가 난 것처럼 느끼며, 또한 식도 하단부의 근육이 경직되면서 심장경련으로 느끼게 된다.
유쾌한 감정을 통해서 왕성한 식욕을 느끼는 반면, 불유쾌한 감정을 통해서 위의 근육이 뻣뻣해지면 마치 돌덩이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위의 근육이 수축할 때에 느끼는 통증은 궤양증세와 비슷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위의 아픔이 아닌 근육의 아픔이라는 사실이다.
맹장염으로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맹장을 수술한 뒤에도 가끔씩 맹장부위가 아픈 경험을 갖는데 이것도 역시 감정에 의해서 맹장부위의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 있으며 허옇게 핏기를 잃은 상태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대개의 의사들이 환자들을 진찰하면서 감정에 의한 신체적인 증상을 잘못 진단하는 경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긴장감 때문에 육체적으로 고통을 호소할 경우 근육이 수축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람들에게 {어디 아픈 데가 있을 것입니다. 어디가 아픈지 말해보라}고 말하면 그 순간까지 건강하게 지내던 사람도 이상하게 아픔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어딘가 항상 아프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아프다기보다는 감정의 변화로 말미암아서 고통을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처럼 감정에 의해서 신체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을 {정신신체 질환}(精神身體疾患)이나 기능질환(機能疾患)이라고도 부른다. 그것은 감정의 악화 때문에 생긴 병이면서도 육체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정신 신경증(精神神經症)이라고 불리는 정신질환을 비롯해서 노이로제 및 불면증(不眠症), 불안신경증(不安神經症) 등 많은 정신장애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질병들은 실제의 병이든지 감정에 의한 가상(假想)적인 병이든지 모두 생활의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얼마든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는데도 스스로 불행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다른 사람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배우고 그 방법대로 실천하면 어느 사이에 행복한 삶으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자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심령으로부터 기쁨을 누리도록 잘 이끌어주어야 된다.
4. 어떻게 해야 감정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까닭은 고민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따르는 문제의 해결방법을 배우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 안정되었다는 것은 인격의 성숙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의 교육기관은 가정과 학교와 교회이다. 그런데 이들의 교육적 구실이 본질적으로 부실한 실정이다.
인간적으로 완성된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추게 된다.
(1) 책임감과 독립심
(2) 남에게서 받는 것보다 주려는 마음씨
(3) 자기본위의 사고방식에서 협력적 진취적인 기상을 갖는 점
(4) 성(性)에 대한 사회적인 제약을 잘 분별하며 질서를 지킴
(5) 적대적 감정보다 온순, 친절, 선의가 강하다는 것을 아는 점
(6) 사실과 공상을 구별하는 능력
(7) 운명적 환경의 변화에 탄력성과 적응성을 가지는 점
사람이란 누구나 많은 미완성의 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환경의 피해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인간적인 완성의 길이나 감정적 안정을 위한 노력이 교육상으로 무시되어 왔던 것이다.
감정적으로 동요되기 쉽다는 말은 배운 것이 틀렸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바른 방법을 적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교육이 지향했던 것은 대학에 합격해야 한다는 것과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이론들을 배우기는 했지만, 교육의 목표가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아닌 모든 사람을 경쟁자로만 생각하고, 이처럼 잘못된 교육목표 때문에 감정의 안정은 생각조차 못했으며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완전한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얼마든지 완전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적인 완성을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적으로 완성된다는 것은 위대한 체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인간적으로 완성된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추게 된다.
(1) 책임감과 독립심
(2) 남에게서 받는 것보다 주려는 마음씨
(3) 자기본위의 사고방식에서 협력적 진취적인 기상을 갖는 점
(4) 성(性)에 대한 사회적인 제약을 잘 분별하며 질서를 지킴
(5) 적대적 감정보다 온순, 친절, 선의가 강하다는 것을 아는 점
(6) 사실과 공상을 구별하는 능력
(7) 운명적 환경의 변화에 탄력성과 적응성을 가지는 점
사람이란 누구나 많은 미완성의 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환경의 피해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인간적인 완성의 길이나 감정적 안정을 위한 노력이 교육상으로 무시되어 왔던 것이다.
감정적으로 동요되기 쉽다는 말은 배운 것이 틀렸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바른 방법을 적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교육이 지향했던 것은 대학에 합격해야 한다는 것과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이론들을 배우기는 했지만, 교육의 목표가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아닌 모든 사람을 경쟁자로만 생각하고, 이처럼 잘못된 교육목표 때문에 감정의 안정은 생각조차 못했으며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완전한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얼마든지 완전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적인 완성을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적으로 완성된다는 것은 위대한 체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1) 사고 방식을 스스로 조절하도록 노력해야 된다.
걱정이나 초조감, 공포, 불안, 의기저상(意氣沮喪) 등에 빠지게 될 때에는 그러한 감정을 스스로 억제시켜야 할뿐만 아니라 냉철함과 용기와 결단, 인내, 쾌활 등의 건전한 감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 인간적으로 건전한 감정을 유지하기 어렵지만, 신앙의 힘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
다시 말하면 비록 다른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한 마음의 상태가 될 때에도 자신의 감정이나 사고방식을 스스로 조절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마음과 생각을 평화롭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잠4:23)
걱정이나 초조감, 공포, 불안, 의기저상(意氣沮喪) 등에 빠지게 될 때에는 그러한 감정을 스스로 억제시켜야 할뿐만 아니라 냉철함과 용기와 결단, 인내, 쾌활 등의 건전한 감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 인간적으로 건전한 감정을 유지하기 어렵지만, 신앙의 힘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
다시 말하면 비록 다른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한 마음의 상태가 될 때에도 자신의 감정이나 사고방식을 스스로 조절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마음과 생각을 평화롭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잠4:23)
2) 항상 즐거운 감정이 되도록 노력해야 된다.
즐거운 감정이 언제나 지속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인간적 쾌락이나 오락을 즐기지만 그것만으로는 즐거운 감정을 지속할 수 없는 것이다. 참된 즐거움은 그 심령 깊숙한 곳에서부터 샘솟듯 솟아 나오는 것이어야만 한다.
바른 믿음을 갖게 되면 샘솟듯 솟아나는 기쁨을 체험할 수가 있다. 예수께서 주시는 생수 즉 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새 술이 취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기쁨이 충만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만 즐겁게 된다.
그러나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그 즐거운 감정을 지속시킬 수가 없다. 가령 명상이나 참선(參禪)으로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고 해도 그것이 일시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노력으로 얻는 평화로서는 참 행복을 누릴 수 없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평화, 샘솟듯 솟아나는 마음의 평정을 얻어야 된다.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은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주님의 평화를 주신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동반자가 되실 때에만 평화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 성호를 사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찌로다} (대상16:10)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7:38)
즐거운 감정이 언제나 지속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인간적 쾌락이나 오락을 즐기지만 그것만으로는 즐거운 감정을 지속할 수 없는 것이다. 참된 즐거움은 그 심령 깊숙한 곳에서부터 샘솟듯 솟아 나오는 것이어야만 한다.
바른 믿음을 갖게 되면 샘솟듯 솟아나는 기쁨을 체험할 수가 있다. 예수께서 주시는 생수 즉 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새 술이 취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기쁨이 충만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만 즐겁게 된다.
그러나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그 즐거운 감정을 지속시킬 수가 없다. 가령 명상이나 참선(參禪)으로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고 해도 그것이 일시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노력으로 얻는 평화로서는 참 행복을 누릴 수 없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평화, 샘솟듯 솟아나는 마음의 평정을 얻어야 된다.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은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주님의 평화를 주신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동반자가 되실 때에만 평화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 성호를 사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찌로다} (대상16:10)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7:38)
3) 행복감을 잃지 않는 삶
행복감은 쾌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심령의 속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쾌락이나 환난과 비애가 행복감을 더해주거나 또 빼앗지도 못한다. 모두가 일시적인 즐거움이며, 일시적인 슬픔이며 일시적인 괴로움일 뿐이다.
그러므로 행복감을 계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령께서 함께 해주실 때에만 행복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행복은 사랑하고 기뻐하며 평화로운 상태에서 느끼는 것이다. 성령이 동반자가 되시면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게 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1:1-2)
{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6-27)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전7:4)
행복감은 쾌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심령의 속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쾌락이나 환난과 비애가 행복감을 더해주거나 또 빼앗지도 못한다. 모두가 일시적인 즐거움이며, 일시적인 슬픔이며 일시적인 괴로움일 뿐이다.
그러므로 행복감을 계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령께서 함께 해주실 때에만 행복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행복은 사랑하고 기뻐하며 평화로운 상태에서 느끼는 것이다. 성령이 동반자가 되시면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게 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1:1-2)
{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6-27)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전7:4)
4) 평화가 통치하는 생각과 마음
평화로운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며 축복이다. 평화는 감사에서 오며 즐거운 감정을 가질 때에 참된 평화가 지속된다. 평화는 열심과 부지런함 가운데서만 얻을 수 있다. 너무 한가한 사람은 잡스러운 생각 때문에 영적으로 평화를 누릴 수 없는 것이다.
{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4-7)
삶의 방법을 개선하는 문제는 생활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앙 문제와 가족문제, 직장과 사업문제, 자녀문제, 입학시험 문제 등,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본인에게는 실제상황으로 느껴진다는데 그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특히 그러한 문제들이 육체의 질병으로 느껴지는 것들은 더 심각한 것이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치료를 해야 된다는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자신이 정신병자로 취급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서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신 신경과 치료를 기피하려는 경향을 나타낸다. 그러나 정신과의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정신병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정신적 피로감을 풀어주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러한 치료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목회상담}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좋은 위치에서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이 모든 문제해결의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 생활을 풍부히 하려면 우선 생활을 단순화시켜야 된다. 쓸데없는 근심과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항상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감정으로 인한 병이 보통 생기지 않는 것이다.
항상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면 생활은 행복이 풍부해지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면서 자신의 일에 만족할 줄 알게 된다면 사소한 근심 걱정을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또 좋은 화제를 갖는 것 역시 더욱 건강해지는 비결이며, 패배를 승리로 바꾸는 길이 된다.
따라서 어떠한 일에서든지 우유부단해서는 안 되며 단호하게 처신하고 결단할 수 있어야 된다. 단호한 의지력은 쓸데없는 유혹을 물리치는데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를 올바르게 처리해야만 된다. 또한 항상 새로운 출발이 되도록 계획을 짜야 하며, 분노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된다.
그런데 문제의 비결을 안다고 하여도 그것을 어떠한 방법으로 실천하느냐? 는 문제가 남게 된다. 삶의 복판에서 가장자리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제들이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갖게 하며, 스트레스의 원인(stressor)들이 인간의 주위로부터 압박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기쁨을 잃거나 감정을 상하게 되는 것이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4:26-27)
평화로운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며 축복이다. 평화는 감사에서 오며 즐거운 감정을 가질 때에 참된 평화가 지속된다. 평화는 열심과 부지런함 가운데서만 얻을 수 있다. 너무 한가한 사람은 잡스러운 생각 때문에 영적으로 평화를 누릴 수 없는 것이다.
{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4-7)
삶의 방법을 개선하는 문제는 생활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앙 문제와 가족문제, 직장과 사업문제, 자녀문제, 입학시험 문제 등,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본인에게는 실제상황으로 느껴진다는데 그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특히 그러한 문제들이 육체의 질병으로 느껴지는 것들은 더 심각한 것이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치료를 해야 된다는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자신이 정신병자로 취급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서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신 신경과 치료를 기피하려는 경향을 나타낸다. 그러나 정신과의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정신병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정신적 피로감을 풀어주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러한 치료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목회상담}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좋은 위치에서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이 모든 문제해결의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 생활을 풍부히 하려면 우선 생활을 단순화시켜야 된다. 쓸데없는 근심과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문제가 된다. 따라서 항상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감정으로 인한 병이 보통 생기지 않는 것이다.
항상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면 생활은 행복이 풍부해지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면서 자신의 일에 만족할 줄 알게 된다면 사소한 근심 걱정을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또 좋은 화제를 갖는 것 역시 더욱 건강해지는 비결이며, 패배를 승리로 바꾸는 길이 된다.
따라서 어떠한 일에서든지 우유부단해서는 안 되며 단호하게 처신하고 결단할 수 있어야 된다. 단호한 의지력은 쓸데없는 유혹을 물리치는데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를 올바르게 처리해야만 된다. 또한 항상 새로운 출발이 되도록 계획을 짜야 하며, 분노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된다.
그런데 문제의 비결을 안다고 하여도 그것을 어떠한 방법으로 실천하느냐? 는 문제가 남게 된다. 삶의 복판에서 가장자리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제들이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갖게 하며, 스트레스의 원인(stressor)들이 인간의 주위로부터 압박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기쁨을 잃거나 감정을 상하게 되는 것이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4:26-27)
5. 문제 발생의 예방
상담치료의 원리에 있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예방적 수단(preventive measures)을 취하는 것이 커다란 비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감정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감정도 세균처럼 전염되기 때문에 정신 건강은 물론 신체적으로도 건강을 해쳐서 구체적인 병 증세를 가져오기 때문에 감정의 원활한 관리가 절대 필요하다. 우리의 감정은 모두 대뇌의 지배를 받고 있다.
비애와 죄책감, 근심, 야심, 미움, 불안, 분노, 불안정감, 공포, 좌절, 무기력, 망설임과 억압된 증오, 눈치, 허전함, 자기본위, 격분 등등, 감정은 대뇌에 자리잡고 있는 감정중추와 연결되고 있는데 그런 감정이 지나쳐서 조화를 잃어버리고 적응하지 못할 경우에 신체상에 다음과 같은 질환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1) 감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증상들
때에 따라서는 감정도 세균처럼 전염되기 때문에 정신 건강은 물론 신체적으로도 건강을 해쳐서 구체적인 병 증세를 가져오기 때문에 감정의 원활한 관리가 절대 필요하다. 우리의 감정은 모두 대뇌의 지배를 받고 있다.
비애와 죄책감, 근심, 야심, 미움, 불안, 분노, 불안정감, 공포, 좌절, 무기력, 망설임과 억압된 증오, 눈치, 허전함, 자기본위, 격분 등등, 감정은 대뇌에 자리잡고 있는 감정중추와 연결되고 있는데 그런 감정이 지나쳐서 조화를 잃어버리고 적응하지 못할 경우에 신체상에 다음과 같은 질환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1) 감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증상들
(1) 비만증
건전한 사랑을 주고받지 못할 때에 먹는 것을 통해서 애정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너무 많이 먹는 것이 비만증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비만증 환자의 대부분은 아무런 불만도 없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 자신은 아무래도 해결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고 있는 것이다.
건전한 사랑을 주고받지 못할 때에 먹는 것을 통해서 애정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너무 많이 먹는 것이 비만증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비만증 환자의 대부분은 아무런 불만도 없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 자신은 아무래도 해결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고 있는 것이다.
(2) 두통
두부(頭部)에 가는 근육과 혈관의 신축성에 영향을 주면 두통이 일어나며 비슷한 증세로 후두통(後頭痛), 측두통(側頭痛), 두부 압박감, 견비통(肩臂痛), 현기증, 긴장성 두통 등이 있다.
두부(頭部)에 가는 근육과 혈관의 신축성에 영향을 주면 두통이 일어나며 비슷한 증세로 후두통(後頭痛), 측두통(側頭痛), 두부 압박감, 견비통(肩臂痛), 현기증, 긴장성 두통 등이 있다.
(3) 편두통(偏頭痛)
혈관의 신축성에 주기적인 변화를 일으켜서 편두통(偏頭痛)을 겪게 된다.
혈관의 신축성에 주기적인 변화를 일으켜서 편두통(偏頭痛)을 겪게 된다.
(4) 혈압의 질병
심장박동 수, 율동 및 혈압에까지 영향을 주어 가슴이 뛰거나 고혈압, 실신 등, 심장질환을 가져오기도 한다. 혈압은 혈관이 막혀서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것으로 현대의 질병들 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5) 위장의 질환
감정의 불안정은 위와 장의 운동 및 분비기능에 영향을 미쳐 위산과다(신트림), 체(滯)하거나 쓰리고 아픔, 위궤양(胃潰瘍) 및 설사와 변비 등이 따를 수 있다.
심장박동 수, 율동 및 혈압에까지 영향을 주어 가슴이 뛰거나 고혈압, 실신 등, 심장질환을 가져오기도 한다. 혈압은 혈관이 막혀서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것으로 현대의 질병들 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5) 위장의 질환
감정의 불안정은 위와 장의 운동 및 분비기능에 영향을 미쳐 위산과다(신트림), 체(滯)하거나 쓰리고 아픔, 위궤양(胃潰瘍) 및 설사와 변비 등이 따를 수 있다.
(6) 피로감
육체적 노동과 마찬가지로 감정적인 부담에 의해서도 피로가 생겨 우울증, 긴장, 초조, 의욕상실 등의 징후를 유발케 된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시키면 피로감도 없어진다.
육체적 노동과 마찬가지로 감정적인 부담에 의해서도 피로가 생겨 우울증, 긴장, 초조, 의욕상실 등의 징후를 유발케 된다. 그러므로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시키면 피로감도 없어진다.
(7) 피부병
피부(皮膚)는 감정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얼굴 색이 변하거나 두드러기, 습진, 가려움증, 여드름 및 발한과다(發汗過多) 등으로 피부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다.
피부(皮膚)는 감정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얼굴 색이 변하거나 두드러기, 습진, 가려움증, 여드름 및 발한과다(發汗過多) 등으로 피부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다.
2)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들
인간이 지니고 있는 풍부한 정서(情緖)는 마음을 살찌게 하는 요소가 된다. 풍부한 정서란 안정된 감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감정이 격앙되는 순간에 그것은 무서운 독이 포함된 세균이 되어 정신건강에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격앙된 감정은 정신건강을 해치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된다. 그런데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 오히려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1) 애정결핍
애정이란,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안전감의 욕구와 기본적 신뢰감(basic trust)과 관계되는 것으로서 대단히 강하게 작용하는 욕구이다. 애정은 부모와 자녀와 친구사이, 또 부부사이에 갖는 좋은 감정이다.
그러므로 애정이 결핍될 때에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치료의 방법으로서는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도록 해주어야 된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풍부한 정서(情緖)는 마음을 살찌게 하는 요소가 된다. 풍부한 정서란 안정된 감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감정이 격앙되는 순간에 그것은 무서운 독이 포함된 세균이 되어 정신건강에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격앙된 감정은 정신건강을 해치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된다. 그런데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 오히려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1) 애정결핍
애정이란,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안전감의 욕구와 기본적 신뢰감(basic trust)과 관계되는 것으로서 대단히 강하게 작용하는 욕구이다. 애정은 부모와 자녀와 친구사이, 또 부부사이에 갖는 좋은 감정이다.
그러므로 애정이 결핍될 때에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치료의 방법으로서는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도록 해주어야 된다.
(2) 자존심의 상실
좌절감에 부딪치거나 또 소외된 상태에서 자포자기할 정도로 굴욕적인 쓴잔을 마신 경우에 많이 생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통해 구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도록 해주어야 된다.
좌절감에 부딪치거나 또 소외된 상태에서 자포자기할 정도로 굴욕적인 쓴잔을 마신 경우에 많이 생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통해 구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도록 해주어야 된다.
(3) 사회적 관계에서의 실패
사람은 사회적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고립되지 않고 서로 어우러져 살아야 정상적인 삶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적응하지 못하여 사회적 관계에서 실패하고 고립될 때에 정신건강에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된다.
사회생활에 서로 도움을 주거나 도움 받는 것이 효과적이다. 사회적인 생활에 익숙해지면, 밝은 생활을 회복할 수가 있다. 상담자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교회생활을 통해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도록 상담해주는 것이 치료의 방법이다.
(4) 성공하지 못한데서 오는 실패감
사회적 관계에서 실패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이런 경우 다른 사람의 시선과 의식을 피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그런데 실패가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어주고 실패가 오히려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사실을 심어주어야 한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고립되지 않고 서로 어우러져 살아야 정상적인 삶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적응하지 못하여 사회적 관계에서 실패하고 고립될 때에 정신건강에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된다.
사회생활에 서로 도움을 주거나 도움 받는 것이 효과적이다. 사회적인 생활에 익숙해지면, 밝은 생활을 회복할 수가 있다. 상담자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교회생활을 통해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도록 상담해주는 것이 치료의 방법이다.
(4) 성공하지 못한데서 오는 실패감
사회적 관계에서 실패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이런 경우 다른 사람의 시선과 의식을 피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그런데 실패가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어주고 실패가 오히려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사실을 심어주어야 한다.
(5) 열등감
항상 위축감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강한 명예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이중 삼중의 갈등을 겪는다.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으려는 심리가 자신의 행동을 돋보이게 하거나 공격적으로 변하게 만들며, 다른 사람을 지배함으로 부족한 자신의 능력을 보충해보려는 행동으로 나타나며, 섬기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무조건의 자신감을 심어줄 때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성령께서 함께 해주심으로 능력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바울이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을 성경을 통해서 배우도록 하면 도움이 된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2-13)
항상 위축감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강한 명예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이중 삼중의 갈등을 겪는다.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으려는 심리가 자신의 행동을 돋보이게 하거나 공격적으로 변하게 만들며, 다른 사람을 지배함으로 부족한 자신의 능력을 보충해보려는 행동으로 나타나며, 섬기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무조건의 자신감을 심어줄 때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성령께서 함께 해주심으로 능력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바울이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을 성경을 통해서 배우도록 하면 도움이 된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2-13)
(6) 무서운 경험
적응되지 못한 경험 때문에 멍이 들 정도로 세게 얻어맞아서 피가 맺히게 된 근육처럼 마음에 멍이 들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두려워하고 아파하여 정신건강에 상처를 입는다.
미쳐 적응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그 해답도 역시 하나님의 사랑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면 혼자서도 탈출할 수 있다.
적응되지 못한 경험 때문에 멍이 들 정도로 세게 얻어맞아서 피가 맺히게 된 근육처럼 마음에 멍이 들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두려워하고 아파하여 정신건강에 상처를 입는다.
미쳐 적응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그 해답도 역시 하나님의 사랑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면 혼자서도 탈출할 수 있다.
(7) 공포
공포감은 의욕을 상실케 만든다. 이것도 무서운 경험과 같이 정신건강에 해를 끼친다. 두려움과 공포는 사탄이 주는 것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심령 속에서부터 느끼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여름철이 되면 TV에서 공포영화를 많이 상영하는데 이러한 영화를 반복적으로 계속 본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적 공포감이 원인이 되어서 질병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소름이 끼치는 공포영화를 즐기는 것은 정신적이나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공포감은 의욕을 상실케 만든다. 이것도 무서운 경험과 같이 정신건강에 해를 끼친다. 두려움과 공포는 사탄이 주는 것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심령 속에서부터 느끼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여름철이 되면 TV에서 공포영화를 많이 상영하는데 이러한 영화를 반복적으로 계속 본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적 공포감이 원인이 되어서 질병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소름이 끼치는 공포영화를 즐기는 것은 정신적이나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8) 상처 입은 하나님과의 관계
이것은 종교적인 문제로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문제가 포함된 경우이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생활을 할 때에 살아있는 양심의 호소에 찔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찔림은 마치 목구멍에 가시가 걸렸을 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십자가 구속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는 신앙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는 원인은 다른 사람과 잘못된 관계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다. 용서를 통해 용서를 받아야 된다.
3) 경험을 통한 적응
사람은 출생하면서부터 새로운 경험을 되풀이하면서 성장하게 마련이다.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적응력도 많아지는 것이다. 조건반사 이론(A theory of conditioned reflex)이나 시행착오 이론(A theory of trial and error)을 막론하고 교육 이론들이 {경험}을 중심에 놓는 까닭도 경험을 통해서 배우기 때문이다.
경험이 적기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된 자리에서 문제를 일으킬 경우가 많은 것이다. 부적응(不適應) 문제는 훈련되지 못한 미숙한 행동과 더불어서 자신의 소질과 취미와 능력과 환경과 여건 등이 맞지 않으므로 유발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행동에 조화를 이루고 익숙할 정도로 경험할 때에 적응력도 증진되는 것이다. 경험과 경력이 많은 사람이 원만한 사회적응(social adjustment)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풍부한 경험은 익숙한 적응력을 갖게 할뿐만 아니라 문제의 발생을 예방하는 능력을 갖게 해줌으로 성숙한 인격을 나타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적응훈련을 체계화한 것이 바로 교육이며, 교육을 통해 인격적 성장을 이루며, 아름답고 건전한 사회를 이룩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갑자기 병에 걸렸을 때에 할머니들이 처방을 가르쳐 주는 것이 의사의 처방보다도 더 효과적일 때가 많은 것이다. 그것은 학술적인 이론이나 의학적 처방이 아니라 바로 경험에 의한 것이다. 경험은 인생으로 하여금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4) 가정생활의 중요성과 교육문제
이것은 종교적인 문제로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문제가 포함된 경우이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생활을 할 때에 살아있는 양심의 호소에 찔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찔림은 마치 목구멍에 가시가 걸렸을 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십자가 구속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는 신앙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는 원인은 다른 사람과 잘못된 관계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다. 용서를 통해 용서를 받아야 된다.
3) 경험을 통한 적응
사람은 출생하면서부터 새로운 경험을 되풀이하면서 성장하게 마련이다.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적응력도 많아지는 것이다. 조건반사 이론(A theory of conditioned reflex)이나 시행착오 이론(A theory of trial and error)을 막론하고 교육 이론들이 {경험}을 중심에 놓는 까닭도 경험을 통해서 배우기 때문이다.
경험이 적기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된 자리에서 문제를 일으킬 경우가 많은 것이다. 부적응(不適應) 문제는 훈련되지 못한 미숙한 행동과 더불어서 자신의 소질과 취미와 능력과 환경과 여건 등이 맞지 않으므로 유발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행동에 조화를 이루고 익숙할 정도로 경험할 때에 적응력도 증진되는 것이다. 경험과 경력이 많은 사람이 원만한 사회적응(social adjustment)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풍부한 경험은 익숙한 적응력을 갖게 할뿐만 아니라 문제의 발생을 예방하는 능력을 갖게 해줌으로 성숙한 인격을 나타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적응훈련을 체계화한 것이 바로 교육이며, 교육을 통해 인격적 성장을 이루며, 아름답고 건전한 사회를 이룩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갑자기 병에 걸렸을 때에 할머니들이 처방을 가르쳐 주는 것이 의사의 처방보다도 더 효과적일 때가 많은 것이다. 그것은 학술적인 이론이나 의학적 처방이 아니라 바로 경험에 의한 것이다. 경험은 인생으로 하여금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4) 가정생활의 중요성과 교육문제
(1) 가정의 중요성과 그 역할
교육 환경을 세 가지로 구별하여서 가정과 학교와 사회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정은 모든 교육의 기초가 되는 환경이다. 가정은 인간에게 있어서 기본교육의 장이다. 가정에서 건전한 체력과 건전한 정신 교육이 이루어지며, 이해력이나 도덕적인 교육도 가정에서부터 교육되어져야 한다.
학교교육은 필요한 학문을 보충하는 교육이란 측면에 비추어 볼 때에 가정교육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건물에 비유해본다면 가정교육은 건물에서 기초공사가 된다. 사랑의 터전 위에서만 어린아이들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가정이란 사랑이 있는 곳이며, 그래서 가정을 [보금자리]라고 하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사람들을 대할 때에 두려움을 갖기 때문에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은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과 고상한 인격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가정에서는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을 심어주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믿음}이란 신뢰를 뜻하며 하나님을 신뢰할 때에 모든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되며, 부모에 대한 신뢰감이 있을 때에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청소년들이 범하는 온갖 범죄는 대개의 경우 선생님에 대한 신뢰감을 잃어버린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교육을 통한 대인관계를 바르게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육에 있어서 부모의 인격이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대개의 경우 아이들이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는 이유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그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부모들의 경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아이들이 돈으로 성적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선생님을 성적판매업자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그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인격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자녀가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에도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한다면 옳고 그른 것에 대해 올바른 판단력이 생기며, 장성하면 사회에서 모범적 삶이 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정직하고 아름답게 가질 수가 있다.
교육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를 어떻게 갖도록 교육해야 되느냐는 것이 문제로 남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를 바르게 갖도록 하는 교육의 풍토가 가정에서부터 조성될 수 있도록 해야 된다. 좋은 밭에서 좋은 나무가 자라고 좋은 열매가 맺히게 하는 교육이 가능한 것이다.
교육 환경을 세 가지로 구별하여서 가정과 학교와 사회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정은 모든 교육의 기초가 되는 환경이다. 가정은 인간에게 있어서 기본교육의 장이다. 가정에서 건전한 체력과 건전한 정신 교육이 이루어지며, 이해력이나 도덕적인 교육도 가정에서부터 교육되어져야 한다.
학교교육은 필요한 학문을 보충하는 교육이란 측면에 비추어 볼 때에 가정교육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건물에 비유해본다면 가정교육은 건물에서 기초공사가 된다. 사랑의 터전 위에서만 어린아이들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가정이란 사랑이 있는 곳이며, 그래서 가정을 [보금자리]라고 하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사람들을 대할 때에 두려움을 갖기 때문에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은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과 고상한 인격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가정에서는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을 심어주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믿음}이란 신뢰를 뜻하며 하나님을 신뢰할 때에 모든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되며, 부모에 대한 신뢰감이 있을 때에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청소년들이 범하는 온갖 범죄는 대개의 경우 선생님에 대한 신뢰감을 잃어버린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교육을 통한 대인관계를 바르게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육에 있어서 부모의 인격이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대개의 경우 아이들이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는 이유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그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부모들의 경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아이들이 돈으로 성적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선생님을 성적판매업자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그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인격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자녀가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에도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한다면 옳고 그른 것에 대해 올바른 판단력이 생기며, 장성하면 사회에서 모범적 삶이 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정직하고 아름답게 가질 수가 있다.
교육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를 어떻게 갖도록 교육해야 되느냐는 것이 문제로 남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를 바르게 갖도록 하는 교육의 풍토가 가정에서부터 조성될 수 있도록 해야 된다. 좋은 밭에서 좋은 나무가 자라고 좋은 열매가 맺히게 하는 교육이 가능한 것이다.
(2) 회개와 용서에 대한 교육
목회 상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회개와 용서}를 가르치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회개를 할 수가 있다. 회개는 하나님에게 용서받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용서를 받지 못한 사람은 항상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완전한 삶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와 용서를 통해서 다시 창조적인 삶으로 환원될 수 있기 때문에 회개는 교육에서 빼놓을 수가 없는 요소이다. 회개는 그리스도인이 가진 최대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이다.
회개한다는 사실은 그렇게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회개가 습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려서부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습관을 길러주었다면 잘못된 부분을 쉽게 고쳐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사랑과 인내심을 가지고 회개할 수 있도록 상담을 통해서 도와야 된다. 사랑과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하면 어떠한 죄인이라도 결국 회개하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용서받은 심령은 자유를 누리고 자유로운 심령만이 하나님을 향해 마음껏 양심의 날개를 펼치면서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 마음을 열어놓고 생활하는 동안에 아이들은 건전한 삶이 습관화되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이다.
상담치료의 결론은 내담자로 하여금 어떻게 해서라도 회개를 유도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영적인 치료의 근본은 바로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는 심령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문제점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목회 상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회개와 용서}를 가르치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회개를 할 수가 있다. 회개는 하나님에게 용서받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용서를 받지 못한 사람은 항상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완전한 삶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와 용서를 통해서 다시 창조적인 삶으로 환원될 수 있기 때문에 회개는 교육에서 빼놓을 수가 없는 요소이다. 회개는 그리스도인이 가진 최대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이다.
회개한다는 사실은 그렇게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회개가 습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려서부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습관을 길러주었다면 잘못된 부분을 쉽게 고쳐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사랑과 인내심을 가지고 회개할 수 있도록 상담을 통해서 도와야 된다. 사랑과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하면 어떠한 죄인이라도 결국 회개하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용서받은 심령은 자유를 누리고 자유로운 심령만이 하나님을 향해 마음껏 양심의 날개를 펼치면서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 마음을 열어놓고 생활하는 동안에 아이들은 건전한 삶이 습관화되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이다.
상담치료의 결론은 내담자로 하여금 어떻게 해서라도 회개를 유도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영적인 치료의 근본은 바로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는 심령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문제점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E. 성경적인 치료원리
지금까지는 발병의 원인을 대개 의학적으로 분석해 보았지만, 질병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삶의 찌꺼기들이 문제가 되어 삶으로부터 기쁨과 평화를 빼앗아버렸기 때문이다.
죄의 요소가 감사를 잃어버리고 사랑을 잃어버리게 만들며 또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육체에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어떠한 조건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잠18:14)
인간의 영역을 떠난 질병은 의학적인 치료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한 질병은 하나님의 영역에 속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만 치료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환자가 느껴야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성경적인 치료의 원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원칙과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서 상담하고 치료하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원칙을 잘 지켜야 한다.
죄의 요소가 감사를 잃어버리고 사랑을 잃어버리게 만들며 또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육체에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어떠한 조건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잠18:14)
인간의 영역을 떠난 질병은 의학적인 치료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한 질병은 하나님의 영역에 속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만 치료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환자가 느껴야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성경적인 치료의 원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원칙과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서 상담하고 치료하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원칙을 잘 지켜야 한다.
1.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4:12)
상담치료는 상한 심령을 대상으로 한다. 상한 심령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료해야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어서 역동적으로 영이나 혼을 분석해줄 뿐 아니라 관절과 골수에 미친 질병까지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수용하는 자에게 성경 자체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롬1:16).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성도들이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는 계시가 성경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생각이 개입되지 않은 치료가 가능한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3:16-17)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는 성도들이 온전케 되어지도록 치료하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기록자들에게 감동을 주셨다는 것은 기록하는 자의 사상과 의지대로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성령의 감동하시는 대로 성경이 기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15:26)
하나님께서 자신의 대리자로 삼으시기 위해 창조하신 인간에 대해서는 하나님만의 유일한 대책이 있는데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타나는 구원의 능력인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전인적(全人的)인 구원이다. 영적으로 구원을 이룰 뿐만 아니라 혼이나 육체적인 질병으로부터의 구원까지도 포함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찾아오셨으며 또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주시는 구원이기 때문에 그 말씀 안에 모든 치료가 있는 것이다.
상담치료는 상한 심령을 대상으로 한다. 상한 심령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료해야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어서 역동적으로 영이나 혼을 분석해줄 뿐 아니라 관절과 골수에 미친 질병까지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수용하는 자에게 성경 자체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롬1:16).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성도들이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는 계시가 성경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생각이 개입되지 않은 치료가 가능한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3:16-17)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는 성도들이 온전케 되어지도록 치료하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기록자들에게 감동을 주셨다는 것은 기록하는 자의 사상과 의지대로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성령의 감동하시는 대로 성경이 기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15:26)
하나님께서 자신의 대리자로 삼으시기 위해 창조하신 인간에 대해서는 하나님만의 유일한 대책이 있는데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타나는 구원의 능력인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전인적(全人的)인 구원이다. 영적으로 구원을 이룰 뿐만 아니라 혼이나 육체적인 질병으로부터의 구원까지도 포함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찾아오셨으며 또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주시는 구원이기 때문에 그 말씀 안에 모든 치료가 있는 것이다.
2. 성령을 의지하는 치료
상담의 주체가 되시는 성령을 의지해야 된다는 사실은 상담을 통한 치료가 영적인 치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각이나 인간의 지혜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에는 인간적인 선입감을 갖기 쉽다. 그러나 성령을 의지하면, 성령께서 그 문제를 해결하셔야만 되기 때문에 인간적인 노력이란 사랑하는 마음만을 필요로 한다.
내담자를 상대할 때 주의할 것은 그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아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성령께서는 죄인이나 의인을 똑같은 영혼으로 보시기 때문에 심령의 치료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만약 죄인이 되어버린 인간을 하나님께서 그의 죄만 보신다면 어떻게 독생자를 십자가의 죽음에 내주면서 구속하실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보시기보다 오히려 미숙한 인격을 변화시켜서 완전한 인격체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을 의지한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과 견해로서 내담자를 상대할 수 있도록 성령의 주관에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잘 아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속사정까지도 아시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이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지가 약하고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자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통해서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위로와 은혜를 주셔서 용기를 가지고 바르게 살 수 있도록 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의지할 때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하나님이 죄인을 구속하시는 마무리 단계는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에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데 있어서도 다음의 몇 가지 원칙을 적용할 때에 좋은 치료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내담자를 상대할 때 주의할 것은 그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아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성령께서는 죄인이나 의인을 똑같은 영혼으로 보시기 때문에 심령의 치료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만약 죄인이 되어버린 인간을 하나님께서 그의 죄만 보신다면 어떻게 독생자를 십자가의 죽음에 내주면서 구속하실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보시기보다 오히려 미숙한 인격을 변화시켜서 완전한 인격체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을 의지한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과 견해로서 내담자를 상대할 수 있도록 성령의 주관에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잘 아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속사정까지도 아시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이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지가 약하고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자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통해서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위로와 은혜를 주셔서 용기를 가지고 바르게 살 수 있도록 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의지할 때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하나님이 죄인을 구속하시는 마무리 단계는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에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데 있어서도 다음의 몇 가지 원칙을 적용할 때에 좋은 치료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1)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도록 해야 된다.
우리는 {사랑의 치료}를 위해서 부름을 받은 존재이다. 만약 그 부름의 목적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직무를 유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직무유기(職務遺棄) 죄}란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자에게 주어지는 책벌(責罰)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이제 사랑으로 치유하는 방법을 찾아내어 심령에 사랑을 전달하는 치료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치료를 맡아야 할 사람이 병든 사람의 치료는 외면한 채, 다른 일에만 치중하면서 자신의 직무를 팽개쳐두고 있다면 직무유기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구를 상대로 상담을 해야 되느냐? 는 사실이다. 상담에는 상담자(Counseller)와 내담자(Client)가 꼭 있어야 된다. 그러므로 상담의 대상자를 알 때에 상담을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목회상담의 대상자}가 누구인지를 우리에게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4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5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6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겔34:4-6)
상담의 대상자는 연약한 자와 병든 자, 상한 자, 불안과 두려움을 가진 자, 분노와 미워하는 자, 무엇에 쫓기는 자,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자들이다. 목회상담은 심령에 상처 입은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1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3:1-5)
말세의 현상들이 일어날 때, 고통의 두려움과 공포로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환각에 빠트리면서 재물을 헌납하게 하는 이단자들이 나타난다. 말세의 특징이란, 모든 사람이 자기중심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나 형제도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을 목적으로 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경쟁자로 여기면서 불안심리가 더해지는 것이다.
{보라 나의 종들은 마음이 즐거우므로 노래할 것이로되 너희는 마음이 슬프므로 울며 심령이 상하므로 통곡할 것이며} (사65:14)
내담자(client)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불안한 상태에서 탈출하게 해주거나 치료해주는 좋은 지름길이 된다. 사탄은 사랑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사랑으로 치료할 때 귀신들린 사람이나 정신분열증을 가진 환자들도 쉽게 치료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이 되어버린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는 어느 누구라도 그 은혜에 감격하게 되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치료를 받게 된다.
따라서 치유방법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목회상담의 치료는 시작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이나 또 즐기는 것들 중에서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당시의 모습으로 환원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에 바른 치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전염병이 돌고 사람들이 죽어갈 때에 그들을 뒤치다꺼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병의 전염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상스럽게도 질병에 전염되어 죽게 되고, 병든 사람을 치료해서 병이 낫을 수 있도록 사랑으로 열심히 도움을 주는 사람은 건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심령의 사랑}이 모든 질병을 이길 수 있는 면역성을 생산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질병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의 심령이 강해지는 것이다.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 정도로 심령이 강해지면 어떠한 병균도 침투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병균이 침투할 경우에도 {면역성을 가진 사랑의 능력}으로 그 병균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는 사람의 심령은 즐거워지게 마련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구속의 은총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과 선택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므로 그 심령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열린 마음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즐거움을 찬송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심령은 모든 환난과 고통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의 치료}를 위해서 부름을 받은 존재이다. 만약 그 부름의 목적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직무를 유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직무유기(職務遺棄) 죄}란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자에게 주어지는 책벌(責罰)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이제 사랑으로 치유하는 방법을 찾아내어 심령에 사랑을 전달하는 치료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치료를 맡아야 할 사람이 병든 사람의 치료는 외면한 채, 다른 일에만 치중하면서 자신의 직무를 팽개쳐두고 있다면 직무유기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구를 상대로 상담을 해야 되느냐? 는 사실이다. 상담에는 상담자(Counseller)와 내담자(Client)가 꼭 있어야 된다. 그러므로 상담의 대상자를 알 때에 상담을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목회상담의 대상자}가 누구인지를 우리에게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4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5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6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겔34:4-6)
상담의 대상자는 연약한 자와 병든 자, 상한 자, 불안과 두려움을 가진 자, 분노와 미워하는 자, 무엇에 쫓기는 자,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자들이다. 목회상담은 심령에 상처 입은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1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3:1-5)
말세의 현상들이 일어날 때, 고통의 두려움과 공포로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환각에 빠트리면서 재물을 헌납하게 하는 이단자들이 나타난다. 말세의 특징이란, 모든 사람이 자기중심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나 형제도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을 목적으로 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경쟁자로 여기면서 불안심리가 더해지는 것이다.
{보라 나의 종들은 마음이 즐거우므로 노래할 것이로되 너희는 마음이 슬프므로 울며 심령이 상하므로 통곡할 것이며} (사65:14)
내담자(client)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불안한 상태에서 탈출하게 해주거나 치료해주는 좋은 지름길이 된다. 사탄은 사랑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사랑으로 치료할 때 귀신들린 사람이나 정신분열증을 가진 환자들도 쉽게 치료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이 되어버린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는 어느 누구라도 그 은혜에 감격하게 되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치료를 받게 된다.
따라서 치유방법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목회상담의 치료는 시작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이나 또 즐기는 것들 중에서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당시의 모습으로 환원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에 바른 치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전염병이 돌고 사람들이 죽어갈 때에 그들을 뒤치다꺼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병의 전염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상스럽게도 질병에 전염되어 죽게 되고, 병든 사람을 치료해서 병이 낫을 수 있도록 사랑으로 열심히 도움을 주는 사람은 건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심령의 사랑}이 모든 질병을 이길 수 있는 면역성을 생산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질병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의 심령이 강해지는 것이다.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 정도로 심령이 강해지면 어떠한 병균도 침투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병균이 침투할 경우에도 {면역성을 가진 사랑의 능력}으로 그 병균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는 사람의 심령은 즐거워지게 마련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구속의 은총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과 선택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므로 그 심령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열린 마음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즐거움을 찬송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심령은 모든 환난과 고통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2) 감사하는 삶이 되도록 해야 된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43:21)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서 찬송과 영광 받으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찬송은 기쁜 마음이나 감사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를 잃은 사람에게 감사를 회복시켜주고 사랑을 회복시켜주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으며 찬송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사랑과 감사를 회복시켜 준다는 사실이 구속(救贖)을 의미한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회복된다는 사실은 하나님을 느끼면서 살게 된다는 뜻이다. 성도의 심령에서 하나님을 느낄 때에만 저절로 찬송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령이 건강하다는 것은 자신의 심령에서 하나님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하나님 없는 삶이 될 때에 불안과 근심, 걱정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기쁨을 가지면 평화로운 삶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때로는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가난과 질병을 겪는다고 해도 그 심령 속에서 하나님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떠한 문제라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칙에 따르면 건강해질 수 있으며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아기가 가장 기분이 좋을 때는 엄마의 젖을 먹고 있을 때이다. 사랑을 받고 있을 때에 인간은 행복한 것이다. 따라서 사랑을 받고 있으면 항상 기분이 즐겁고 유쾌한 상태가 된다. 사랑을 받으면서 기분이 좋아진 상태가 되면 어떠한 두려움도 갖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쾌한 감정을 소유할 때, 그 어떠한 질병도 물리칠 수 있는 능력, 즉 면역성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기쁜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즐거운 마음과 평화로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잠17:22)
성경은 마음과 심령을 구별해주고 있다. 그래서 {마음: (히), (헬)}과 {심령: (히), (헬)} 사이의 차이와 관계를 인식할 수 있다. 심령이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를 인식하는 것이다. 심령은 또한 마음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다. 마음과 심령이 다른 것처럼 감정도 역시 마음은 아니다.
마음과 정신은 {혼: (히), (헬)}에 속했기 때문에 오히려 육적(肉的)인 일의 영향력을 받는 것이다. 감정을 심령이라고 할 수 없지만 흔히 마음과 감정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표현하는데 그것은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서 감정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감정(emotion)이란, 라틴어 commotio 또는 concitatio(강렬하게 움직이다: violent movement)에서 유래하였고 {심령의 동요}를 의미한다. 따라서 감정이 안정된 상태에서만 평화로워질 수가 있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것이 강한 심령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매우 비슷한 상태이다. 심령은 영( -spirit- )이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지만 감정(emotion)이란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심령이나 감정이 마음의 상태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만은 공통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대의 의학적인 용어로 표현하기보다는 성경의 표현을 따라 {심령의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상담 치료학}의 주제를 삼도록 해야 될 것이다.
심령이 상하는 원인은 대개 자신보다도 우월한 위치에 있는 자로부터 어떠한 억압을 받을 때 생긴다(겔34:4-6). 또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을 하게 될 때 스트레스(stress)를 받게 된다. 시험과 같은 문제를 통해 스트레스(stress)를 받고 그 잘못을 추궁 받을 때에 심령이 상하게 되는 것이다.
불안이나 초조감, 미움이나 시기심, 분노 등이 감정이 병들게 되는 원인이다. 현대 의학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떻게 하면 {병의 증세}를 없앨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증세만 없애는 것은 치료한 다음에 재발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지닌 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근본적으로 질병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올바른 치료 방법이다.
목회 상담은 인간이 가진 모든 문제를 질병으로 보기 때문에 질병의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바로는 심령이 상할 때 질병이 온다는 것이다. 질병은 육체적인 질병과 정신적인 질병을 포함한다.
이처럼 질병으로 인해서 생활의 질서가 무너지게 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잘못되어진다. 다른 사람과의 나쁜 관계는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가 되면 그 심령이 항상 강해지기 때문이다.
{심령이 상하면 누가 치료하겠느냐} (잠18:14)
{심령의 치료}는 사람의 치료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뜻하는 말씀이다. 강한 심령은 어떠한 질병도 능히 이길 수 있지만, 심령이 병드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통해서만 치료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해서는 자기 죄를 철저하게 회개해야 된다. 회개한 후에 저절로 감사하는 삶으로 변해지는 것이다.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강한 심령이 될 때에 어떠한 질병도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43:21)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서 찬송과 영광 받으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찬송은 기쁜 마음이나 감사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를 잃은 사람에게 감사를 회복시켜주고 사랑을 회복시켜주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으며 찬송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사랑과 감사를 회복시켜 준다는 사실이 구속(救贖)을 의미한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회복된다는 사실은 하나님을 느끼면서 살게 된다는 뜻이다. 성도의 심령에서 하나님을 느낄 때에만 저절로 찬송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령이 건강하다는 것은 자신의 심령에서 하나님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하나님 없는 삶이 될 때에 불안과 근심, 걱정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기쁨을 가지면 평화로운 삶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때로는 환난을 당하기도 하고 가난과 질병을 겪는다고 해도 그 심령 속에서 하나님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떠한 문제라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칙에 따르면 건강해질 수 있으며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아기가 가장 기분이 좋을 때는 엄마의 젖을 먹고 있을 때이다. 사랑을 받고 있을 때에 인간은 행복한 것이다. 따라서 사랑을 받고 있으면 항상 기분이 즐겁고 유쾌한 상태가 된다. 사랑을 받으면서 기분이 좋아진 상태가 되면 어떠한 두려움도 갖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쾌한 감정을 소유할 때, 그 어떠한 질병도 물리칠 수 있는 능력, 즉 면역성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기쁜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즐거운 마음과 평화로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잠17:22)
성경은 마음과 심령을 구별해주고 있다. 그래서 {마음: (히), (헬)}과 {심령: (히), (헬)} 사이의 차이와 관계를 인식할 수 있다. 심령이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를 인식하는 것이다. 심령은 또한 마음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다. 마음과 심령이 다른 것처럼 감정도 역시 마음은 아니다.
마음과 정신은 {혼: (히), (헬)}에 속했기 때문에 오히려 육적(肉的)인 일의 영향력을 받는 것이다. 감정을 심령이라고 할 수 없지만 흔히 마음과 감정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표현하는데 그것은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서 감정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감정(emotion)이란, 라틴어 commotio 또는 concitatio(강렬하게 움직이다: violent movement)에서 유래하였고 {심령의 동요}를 의미한다. 따라서 감정이 안정된 상태에서만 평화로워질 수가 있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것이 강한 심령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매우 비슷한 상태이다. 심령은 영( -spirit- )이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지만 감정(emotion)이란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심령이나 감정이 마음의 상태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만은 공통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대의 의학적인 용어로 표현하기보다는 성경의 표현을 따라 {심령의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상담 치료학}의 주제를 삼도록 해야 될 것이다.
심령이 상하는 원인은 대개 자신보다도 우월한 위치에 있는 자로부터 어떠한 억압을 받을 때 생긴다(겔34:4-6). 또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을 하게 될 때 스트레스(stress)를 받게 된다. 시험과 같은 문제를 통해 스트레스(stress)를 받고 그 잘못을 추궁 받을 때에 심령이 상하게 되는 것이다.
불안이나 초조감, 미움이나 시기심, 분노 등이 감정이 병들게 되는 원인이다. 현대 의학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떻게 하면 {병의 증세}를 없앨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증세만 없애는 것은 치료한 다음에 재발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지닌 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근본적으로 질병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올바른 치료 방법이다.
목회 상담은 인간이 가진 모든 문제를 질병으로 보기 때문에 질병의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바로는 심령이 상할 때 질병이 온다는 것이다. 질병은 육체적인 질병과 정신적인 질병을 포함한다.
이처럼 질병으로 인해서 생활의 질서가 무너지게 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잘못되어진다. 다른 사람과의 나쁜 관계는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가 되면 그 심령이 항상 강해지기 때문이다.
{심령이 상하면 누가 치료하겠느냐} (잠18:14)
{심령의 치료}는 사람의 치료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뜻하는 말씀이다. 강한 심령은 어떠한 질병도 능히 이길 수 있지만, 심령이 병드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통해서만 치료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해서는 자기 죄를 철저하게 회개해야 된다. 회개한 후에 저절로 감사하는 삶으로 변해지는 것이다.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강한 심령이 될 때에 어떠한 질병도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3) 사랑하는 삶이 되도록 해야 된다.
사람과 하나님과의 사이에는 영적인 관계가 있다. 영적 관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범죄 때문에 좋은 관계가 깨어진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다.
그러나 여기서 책임의 소재만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치유책을 찾으면서도 회복을 향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에게서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 치유책을 연구하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질병도 {사랑}에 의해서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독생자를 보내서 구원의 길을 제공해주셨다. 이보다도 더 큰사랑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어떠한 질병도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自明)한 이치(理致)이다.
{상담치유(Counselling Therapy)}는 스스로 치료에 응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환자(Client)들이 스스로 치료에 협조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상담자(Counselor)의 친절한 지도와 인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약에 사랑( )의 정확한 개념을 내담자에게 이해시키고 환자 자신도 과거에 한없는 사랑을 받았으며, 현재에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서 자신감을 찾도록 도움을 주면 심리적으로 방황하던 사람도 안정을 찾게 된다. 정서적 안정은 그 미래까지도 보장되는 좋은 치료가 이루어지게 한다.
사람과 하나님과의 사이에는 영적인 관계가 있다. 영적 관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범죄 때문에 좋은 관계가 깨어진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다.
그러나 여기서 책임의 소재만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치유책을 찾으면서도 회복을 향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에게서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 치유책을 연구하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질병도 {사랑}에 의해서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독생자를 보내서 구원의 길을 제공해주셨다. 이보다도 더 큰사랑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어떠한 질병도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自明)한 이치(理致)이다.
{상담치유(Counselling Therapy)}는 스스로 치료에 응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환자(Client)들이 스스로 치료에 협조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상담자(Counselor)의 친절한 지도와 인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약에 사랑( )의 정확한 개념을 내담자에게 이해시키고 환자 자신도 과거에 한없는 사랑을 받았으며, 현재에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서 자신감을 찾도록 도움을 주면 심리적으로 방황하던 사람도 안정을 찾게 된다. 정서적 안정은 그 미래까지도 보장되는 좋은 치료가 이루어지게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담자 자신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지도록 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현재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될 때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며, 감사를 통해서 기쁨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에만 {사랑과 희락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데, 성령의 열매가 맺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당시의 상태로 회복되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영- -spirit- )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창6:3)
하나님의 영이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하시지 않겠다는 선언이 바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다. 영적으로 병든 상태가 됨으로서 인간은 모든 면에서 병들게 된 것이다.
사랑은 여유 있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다는 사실은 사랑을 받았던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다. 사람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완전한 인격을 갖추게 되며 건강한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사람은 창조 당시 사랑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받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동안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평화롭고 즐거워지게 된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류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본래의 자아를 찾고 회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상담의 목적이다.
치유란 병든 것을 치료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죄에 오염되면서 병들고 상처를 입게 되었다. 신앙상담이란 단순한 방향제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분명히 그 사상을 치료하며 삶을 치료하고 또 병든 육체를 치료해주어야 한다.
4)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 되도록 해야 된다.
상담이란 인간적인 지혜로 내담자를 위해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위로를 바라는 심정으로 내담자와 함께 아파하고 고통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는 것이 될 때에 영육(靈肉) 간에 모든 질병이 저절로 치료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문제를 맡긴다는 사실은 자신이 가진 문제를 자신이 계속해서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시도록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넘겨드리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자신은 그 문제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떠한 문제로부터의 해방이 바로 구속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악에 얽매인 죄인들을 구속해서 의인이 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로부터도 해방되어지도록 구속하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문제를 맡기는 삶은 다시 그 문제에 얽매인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심령으로 산다는 것이다. 아무런 문제도 갖지 않은 사람이 바로 건강한 사람이다.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에만 {사랑과 희락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데, 성령의 열매가 맺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당시의 상태로 회복되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영- -spirit- )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창6:3)
하나님의 영이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하시지 않겠다는 선언이 바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다. 영적으로 병든 상태가 됨으로서 인간은 모든 면에서 병들게 된 것이다.
사랑은 여유 있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다는 사실은 사랑을 받았던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다. 사람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완전한 인격을 갖추게 되며 건강한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사람은 창조 당시 사랑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받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동안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평화롭고 즐거워지게 된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류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본래의 자아를 찾고 회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상담의 목적이다.
치유란 병든 것을 치료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죄에 오염되면서 병들고 상처를 입게 되었다. 신앙상담이란 단순한 방향제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분명히 그 사상을 치료하며 삶을 치료하고 또 병든 육체를 치료해주어야 한다.
4)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 되도록 해야 된다.
상담이란 인간적인 지혜로 내담자를 위해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위로를 바라는 심정으로 내담자와 함께 아파하고 고통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는 것이 될 때에 영육(靈肉) 간에 모든 질병이 저절로 치료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문제를 맡긴다는 사실은 자신이 가진 문제를 자신이 계속해서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시도록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넘겨드리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자신은 그 문제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떠한 문제로부터의 해방이 바로 구속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악에 얽매인 죄인들을 구속해서 의인이 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로부터도 해방되어지도록 구속하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문제를 맡기는 삶은 다시 그 문제에 얽매인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심령으로 산다는 것이다. 아무런 문제도 갖지 않은 사람이 바로 건강한 사람이다.
F. 성경적 상담의 과정
1. 진행과정의 중요성
코메니우스(Comenius, 1592-1670)가 사람은 완전한 인격적인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문화적 성장과정을 통해서 인간이 되어간다는 사상으로 개인의 성장과정을 중요시했다.
또한 교육에 있어서 20세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죤 듀이(John Dewey, 1844-1952)는 교육을 정의하여 {교육은 성장의 과정}이라고 갈파했다. 성장은 경험에서 이루어지며 교육은 경험을 계속적으로 재건설하면서 전개되기 때문에 {개조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교육은 장래 생활에 대한 설계가 아니라 현재에 있어서 실제생활의 과정 그 자체이다. 이러한 면에서 어린아이는 장래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 행동하는 것이며, 또 매일 매일의 경험이 되풀이되는 동안에 교육은 성취되는 것이다.
목회상담은 하나의 과정이다(Pastoral counselling is a process). 즉 과거나 미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현재의 의미와 가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어떤 자극이나 조건에 의한 반응을 보이는 찰라}일 뿐만 아니라 교육학적인 측면에서는 {학습의 기회(opportunities for learning)}이며, 또한 {가르칠 수 있는 기회(teachable moment)}인 것이다.
도덕적으로는 {책임적인 행동(responsible action)}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이며,
역사적으로는 {어떤 사건이 이루어지는 현상}이며,
종교적으로는 {삶의 엄숙한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 얽매어 현재의 값진 것을 외면하고 주저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 것인가? 예수께서는 과거에 매달린 채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목표를 향한 결단을 촉구하셨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눅9:62)
결단은 이상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그것을 가꾸는 동안 어느새 가을이 오며, 또한 지내다보니 결실이 되는 것처럼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에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는 원리와도 같은 것이다.
또한 교육에 있어서 20세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죤 듀이(John Dewey, 1844-1952)는 교육을 정의하여 {교육은 성장의 과정}이라고 갈파했다. 성장은 경험에서 이루어지며 교육은 경험을 계속적으로 재건설하면서 전개되기 때문에 {개조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교육은 장래 생활에 대한 설계가 아니라 현재에 있어서 실제생활의 과정 그 자체이다. 이러한 면에서 어린아이는 장래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 행동하는 것이며, 또 매일 매일의 경험이 되풀이되는 동안에 교육은 성취되는 것이다.
목회상담은 하나의 과정이다(Pastoral counselling is a process). 즉 과거나 미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현재의 의미와 가치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어떤 자극이나 조건에 의한 반응을 보이는 찰라}일 뿐만 아니라 교육학적인 측면에서는 {학습의 기회(opportunities for learning)}이며, 또한 {가르칠 수 있는 기회(teachable moment)}인 것이다.
도덕적으로는 {책임적인 행동(responsible action)}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이며,
역사적으로는 {어떤 사건이 이루어지는 현상}이며,
종교적으로는 {삶의 엄숙한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 얽매어 현재의 값진 것을 외면하고 주저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 것인가? 예수께서는 과거에 매달린 채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목표를 향한 결단을 촉구하셨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눅9:62)
결단은 이상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그것을 가꾸는 동안 어느새 가을이 오며, 또한 지내다보니 결실이 되는 것처럼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에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는 원리와도 같은 것이다.
1) 내담자를 맞아들이는 과정
내담자가 상담자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상담이 진행되기까지의 서막 부분은 사실상 목회상담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단계이다. 처음 인상이 어떠냐는 것이 목회상담에 있어서 중요한 까닭은 불안한 내담자에게 안도감을 주느냐? 아니면 못 주느냐? 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치 관공서에서 {어떻게 왔습니까?} 하고 묻는 듯한 태도는 내담자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내담자에게 {왜 왔느냐}고 묻기보다 {찾아주셔서 반갑습니다}, {참 잘 오셨습니다}라는 인사로 내담자를 맞아들이고 정서적으로 안정시킨 다음에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다. 내담자를 따뜻하게 맞이하면서 친절하게 대할 때에 내담자는 불안감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상담이 진행되기까지의 서막 부분은 사실상 목회상담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단계이다. 처음 인상이 어떠냐는 것이 목회상담에 있어서 중요한 까닭은 불안한 내담자에게 안도감을 주느냐? 아니면 못 주느냐? 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치 관공서에서 {어떻게 왔습니까?} 하고 묻는 듯한 태도는 내담자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내담자에게 {왜 왔느냐}고 묻기보다 {찾아주셔서 반갑습니다}, {참 잘 오셨습니다}라는 인사로 내담자를 맞아들이고 정서적으로 안정시킨 다음에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다. 내담자를 따뜻하게 맞이하면서 친절하게 대할 때에 내담자는 불안감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말을 듣는 태도
상담의 원리는 {대화의 원리}이기 때문에 대화를 잘하는 것은 참 중요하다. 대화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기 때문에 충분하게 의사전달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내담자가 마음을 열어놓을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은 상담자의 태도에 의해서 결정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열어놓을 때까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야만 된다. 서두르거나 조급하게 상담자가 말하기보다는 내담자의 말에 충분히 귀를 기울여서 내담자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상담자의 성실히 들어주는 태도야말로 내담자에게 그 자신을 보여주는 반사경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듣는 일 자체보다도 듣는 태도가 내담자에게 좋은 모습으로 비쳐져야 하는 것이다. 목회자가 상담에 실패하는 대개의 경우는 대화를 잘못 해서가 아니라 {듣기}를 잘못하기 때문이다.
(1) 적극적인 태도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2) 왜 이야기를 듣는지, 미리 그 이유를 알아두어야 한다.
(3) 상대방의 말을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말을 하는 동안 숨겨져 있던 말들이 나오게 되고 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영적인 갈등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주의력을 집중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5) 내담자의 얼굴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상담하는 동안 시선을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불안감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이 항상 감돌고 있어야 한다.
(6) 말을 듣는 동안에 생각할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잘 들어주는 태도는 내담자로 하여금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치료의 첫 단계이다. 뿐만 아니라 상담자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된다.
상담의 원리는 {대화의 원리}이기 때문에 대화를 잘하는 것은 참 중요하다. 대화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기 때문에 충분하게 의사전달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내담자가 마음을 열어놓을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은 상담자의 태도에 의해서 결정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열어놓을 때까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야만 된다. 서두르거나 조급하게 상담자가 말하기보다는 내담자의 말에 충분히 귀를 기울여서 내담자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상담자의 성실히 들어주는 태도야말로 내담자에게 그 자신을 보여주는 반사경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듣는 일 자체보다도 듣는 태도가 내담자에게 좋은 모습으로 비쳐져야 하는 것이다. 목회자가 상담에 실패하는 대개의 경우는 대화를 잘못 해서가 아니라 {듣기}를 잘못하기 때문이다.
(1) 적극적인 태도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2) 왜 이야기를 듣는지, 미리 그 이유를 알아두어야 한다.
(3) 상대방의 말을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말을 하는 동안 숨겨져 있던 말들이 나오게 되고 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영적인 갈등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주의력을 집중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5) 내담자의 얼굴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상담하는 동안 시선을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불안감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이 항상 감돌고 있어야 한다.
(6) 말을 듣는 동안에 생각할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잘 들어주는 태도는 내담자로 하여금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치료의 첫 단계이다. 뿐만 아니라 상담자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된다.
3) 감정적인 접근
내담자의 마음속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상한 감정과 불평과 불만의 요소들이 양성화(陽性化)되어 밖으로 발산될 때에, 그것은 새로운 자아실현(自我實現)의 촉진제가 된다. 반면에 그것이 음성화(陰性化)되어 잠재의식 속으로 스며들고 억눌려질 때 가장 위험한 파괴의 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감정적으로 내담자에게 접근하여 내면화된 감정의 상처를 밖으로 양성화시켜서 발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된다. 사람은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1) 감정이란 무엇인가?
감정(Emotion)이란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급격한 흥분상태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어떤 외적 자극이나 개체의 내적 조건에 의해서 일어난 변화를 계기로 동요되고 흥분될 때에 경험하는 심리적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감정의 어원은 {뒤흔든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emovere}에서 유래한 것으로 동작하는 것을 뜻한다. 모션(motion)은 동작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감정(emotion)이란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를 뜻한다. 감정에 메말라버린 세대를 향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들어보자
{16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않았다 함과 같으니라} (마11:16-17)
어떤 경험이든지 감정의 지지 없이는 역동적이며 또 생명력을 나타낼 수가 없다. 종교는 생명의 깊은 욕구와 최고의 가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정적 긴박성이 깃들여져 있다. 따라서 종교적 관심이 줄어들면 감정적인 내용이 메말라져서 그 종교는 형식주의나 무미건조한 종교가 되어버린다. 오늘날 합리주의적인 종교는 메말라버린 감정 때문에 형식화되어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된다.
{예수께서 죄인들과 식사를 하시는 것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옥합을 깨트려서 주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모습도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인가?}
감정이 메말라버린 사람은 그 장면에서 율법이나 이익을 따졌던 것이다. 상담자는 감동적인 장면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할뿐만 아니라 감동적 장면을 연출 할 수 있어야 한다. 지성적인 접근을 억제하고 감정적으로 접근해서 내담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으며, 삶에 대한 용기와 소망을 주어 재출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내담자의 마음속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상한 감정과 불평과 불만의 요소들이 양성화(陽性化)되어 밖으로 발산될 때에, 그것은 새로운 자아실현(自我實現)의 촉진제가 된다. 반면에 그것이 음성화(陰性化)되어 잠재의식 속으로 스며들고 억눌려질 때 가장 위험한 파괴의 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감정적으로 내담자에게 접근하여 내면화된 감정의 상처를 밖으로 양성화시켜서 발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된다. 사람은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1) 감정이란 무엇인가?
감정(Emotion)이란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급격한 흥분상태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어떤 외적 자극이나 개체의 내적 조건에 의해서 일어난 변화를 계기로 동요되고 흥분될 때에 경험하는 심리적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감정의 어원은 {뒤흔든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emovere}에서 유래한 것으로 동작하는 것을 뜻한다. 모션(motion)은 동작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감정(emotion)이란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를 뜻한다. 감정에 메말라버린 세대를 향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들어보자
{16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않았다 함과 같으니라} (마11:16-17)
어떤 경험이든지 감정의 지지 없이는 역동적이며 또 생명력을 나타낼 수가 없다. 종교는 생명의 깊은 욕구와 최고의 가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감정적 긴박성이 깃들여져 있다. 따라서 종교적 관심이 줄어들면 감정적인 내용이 메말라져서 그 종교는 형식주의나 무미건조한 종교가 되어버린다. 오늘날 합리주의적인 종교는 메말라버린 감정 때문에 형식화되어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된다.
{예수께서 죄인들과 식사를 하시는 것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옥합을 깨트려서 주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모습도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인가?}
감정이 메말라버린 사람은 그 장면에서 율법이나 이익을 따졌던 것이다. 상담자는 감동적인 장면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할뿐만 아니라 감동적 장면을 연출 할 수 있어야 한다. 지성적인 접근을 억제하고 감정적으로 접근해서 내담자에게 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으며, 삶에 대한 용기와 소망을 주어 재출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2) 감정적 접근을 위한 기술
① 내용과 느낌 : 내담자의 지적 내용에 집착하면 상담은 실패로 끝나기가 쉽다. 그러나 내담자의 감정에 유의하고 그 감정에 대한 응답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② 태도와 감정 : 언어에 표현되든지 은폐되든지 감정은 사람의 태도에 확연히 나타나게 마련이다. 표현된 감정은 더욱 분명히 나타나고 은폐된 감정은 은폐하려는 태도에서 새어나온, 감추어지지 않은 감정으로 어색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③ 모순된 감정 : 정서적으로 불안정 상태에 있는 사람은 모순된 감정, 앞뒤가 맞지 않는 감정을 표현하게 마련이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이 모순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는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서 상담해야 된다.
④ 부정적 감정 : 변화무쌍한 사람의 감정은 아예 부정적인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내담자는 지성적 변명으로 합리화의 탈을 쓰고 거짓으로 자신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가장해보려는 태도를 노출시키는 때가 많다. 그러나 친절한 상담자의 태도 때문에 내담자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⑤ 반항적 감정 : 이러한 감정은 자기만족의 결여, 욕구불만에서 오는 감정과 이해하거나 받아들여주지 않는데서 오는 감정과 소외감에서 야기되는 감정 등으로 기성세대를 향해 나타난다.
⑥ 변덕스러운 감정 : 이것은 심한 감정의 동요로 이랬다 저랬다 하거나 우물쭈물하는 우유부단한 상태이다. 침착하지 못하고 경솔한 태도를 취하며, 책임이행은 아니하고 오히려 수군거리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⑦ 불안한 죄책감 : 죄책감을 가진 사람에게 성급한 판단을 피해야 한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잘못된 불안스러운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용납하며, 죄인을 불러서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인도해줌으로써 구속(redeem)이나 치유(therapy)의 효력이 나타날 수 있는 원활한 관계를 조성해야 한다.
⑧ 감추어져 있는 감정 : 상담자는 무엇인가 숨겨져 있는 문제를 쉽게 토해내지 않고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내담자를 대할 때, 내담자가 표현하지 않은 감정에 접근하여 섣불리 건드리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상담자는 묵묵히 내담자가 표현하는 감정에 바짝 따라가면서 내담자의 자율적인 면에 정서적인 변화를 모색하여 감추어진 감정이 표현되도록 하고 가려진 베일을 벗겨내는 작업을 해야 된다.
① 내용과 느낌 : 내담자의 지적 내용에 집착하면 상담은 실패로 끝나기가 쉽다. 그러나 내담자의 감정에 유의하고 그 감정에 대한 응답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② 태도와 감정 : 언어에 표현되든지 은폐되든지 감정은 사람의 태도에 확연히 나타나게 마련이다. 표현된 감정은 더욱 분명히 나타나고 은폐된 감정은 은폐하려는 태도에서 새어나온, 감추어지지 않은 감정으로 어색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③ 모순된 감정 : 정서적으로 불안정 상태에 있는 사람은 모순된 감정, 앞뒤가 맞지 않는 감정을 표현하게 마련이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이 모순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는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서 상담해야 된다.
④ 부정적 감정 : 변화무쌍한 사람의 감정은 아예 부정적인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내담자는 지성적 변명으로 합리화의 탈을 쓰고 거짓으로 자신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가장해보려는 태도를 노출시키는 때가 많다. 그러나 친절한 상담자의 태도 때문에 내담자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⑤ 반항적 감정 : 이러한 감정은 자기만족의 결여, 욕구불만에서 오는 감정과 이해하거나 받아들여주지 않는데서 오는 감정과 소외감에서 야기되는 감정 등으로 기성세대를 향해 나타난다.
⑥ 변덕스러운 감정 : 이것은 심한 감정의 동요로 이랬다 저랬다 하거나 우물쭈물하는 우유부단한 상태이다. 침착하지 못하고 경솔한 태도를 취하며, 책임이행은 아니하고 오히려 수군거리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⑦ 불안한 죄책감 : 죄책감을 가진 사람에게 성급한 판단을 피해야 한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잘못된 불안스러운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용납하며, 죄인을 불러서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인도해줌으로써 구속(redeem)이나 치유(therapy)의 효력이 나타날 수 있는 원활한 관계를 조성해야 한다.
⑧ 감추어져 있는 감정 : 상담자는 무엇인가 숨겨져 있는 문제를 쉽게 토해내지 않고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내담자를 대할 때, 내담자가 표현하지 않은 감정에 접근하여 섣불리 건드리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상담자는 묵묵히 내담자가 표현하는 감정에 바짝 따라가면서 내담자의 자율적인 면에 정서적인 변화를 모색하여 감추어진 감정이 표현되도록 하고 가려진 베일을 벗겨내는 작업을 해야 된다.
4) 깊은 이해력
이해력(understanding)은 신기한 힘도 아니고 즉각적인 지혜도 아니며 사람의 내면적인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투시력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해력이란 무엇인가?
이해력이란 상대의 입장과 형편을 완전히 파악하고 내담자의 생각을 분명히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담자가 말하고 싶은 심중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칫 필요 이상의 동정심(sympathy)으로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공감(empathy: 감정이입-感情移入)을 해주는 편이 더욱 좋다. 상담자는 예수께서 사람들의 고난과 고통을 몸소 체험하셨던 것처럼 내담자의 내적인 세계에 동참하므로 그를 충분히 알아주는 태도를 취해야 된다.
공감(empathy)이란 단어는 희랍어의 (in:안에)과 (feeling:느끼는 것)의 합성어이다. 이것은 상담자가 내담자의 위치와 입장에 서서 내담자가 처한 국면에 함께 동행한다는 사실을 감정적 면에서뿐만 아니라 육감적으로 지각하는 것을 뜻한다.
이해력(understanding)은 신기한 힘도 아니고 즉각적인 지혜도 아니며 사람의 내면적인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투시력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해력이란 무엇인가?
이해력이란 상대의 입장과 형편을 완전히 파악하고 내담자의 생각을 분명히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담자가 말하고 싶은 심중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칫 필요 이상의 동정심(sympathy)으로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공감(empathy: 감정이입-感情移入)을 해주는 편이 더욱 좋다. 상담자는 예수께서 사람들의 고난과 고통을 몸소 체험하셨던 것처럼 내담자의 내적인 세계에 동참하므로 그를 충분히 알아주는 태도를 취해야 된다.
공감(empathy)이란 단어는 희랍어의 (in:안에)과 (feeling:느끼는 것)의 합성어이다. 이것은 상담자가 내담자의 위치와 입장에 서서 내담자가 처한 국면에 함께 동행한다는 사실을 감정적 면에서뿐만 아니라 육감적으로 지각하는 것을 뜻한다.
(1) 이해의 한계
상담에 있어서의 이해(理解)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의 발달과정을 이해하는 일이 앞서야 한다.
특히 개인적인 발달의 양상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 다음은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자는 발달의 흐름(stream of development)에 서서 이해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현 시점에 서서 횡적으로 상황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이들을 개연성(蓋然性)으로 보아 어떠한 방향을 취할 것이냐 하는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하여 지도자(교육자)로서의 예측을 통해서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래에의 예측은 오늘날 같이 급변하는 제반 사회적 조건으로 보아서 무척 어려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교회의 교육적 제반 활동이 허를 찌르거나 공전하는 행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래의 인간의 삶이 어떤 형태를 지향할 것인지를 이해하고 예측하여야 된다.
상담에 있어서의 이해(理解)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의 발달과정을 이해하는 일이 앞서야 한다.
특히 개인적인 발달의 양상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 다음은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자는 발달의 흐름(stream of development)에 서서 이해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현 시점에 서서 횡적으로 상황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이들을 개연성(蓋然性)으로 보아 어떠한 방향을 취할 것이냐 하는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하여 지도자(교육자)로서의 예측을 통해서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래에의 예측은 오늘날 같이 급변하는 제반 사회적 조건으로 보아서 무척 어려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교회의 교육적 제반 활동이 허를 찌르거나 공전하는 행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래의 인간의 삶이 어떤 형태를 지향할 것인지를 이해하고 예측하여야 된다.
(2) 이해력의 효과
공감은 상대편이 하는 말에 대해서 흥을 돋구어주는 효과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감정적인 접근도 이해하거나 공감해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상담이라는 기능적인 관계에서가 아니라, 그 한계점을 넘어서 인간적인 애정이 넘친 공감으로 치우쳐서 상담자가 내담자의 요구하는 애정에 빠져버리면 안 된다. 부드러운 태도이면서도 깊은 이해와 꾸밈없는 공감의 참으로 값진 태도를 유지하며 정성껏 상담에 임해야 한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12:15)
이해는 공감과 함께 덮어놓고 죄책감에 사로잡힌 내담자를 관용하는 태도를 취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은 그 개념과 차원이 전연 다르다. 이해한다는 것을 반드시 용서해 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해한다는 말은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understand).
문제의 핵심은 성급하게 용서를 받는 데만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문제점을 찾게 하고 스스로 문제의 해결점을 풀어나가도록 이끄는데 있는 것이다.
공감은 상대편이 하는 말에 대해서 흥을 돋구어주는 효과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감정적인 접근도 이해하거나 공감해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상담이라는 기능적인 관계에서가 아니라, 그 한계점을 넘어서 인간적인 애정이 넘친 공감으로 치우쳐서 상담자가 내담자의 요구하는 애정에 빠져버리면 안 된다. 부드러운 태도이면서도 깊은 이해와 꾸밈없는 공감의 참으로 값진 태도를 유지하며 정성껏 상담에 임해야 한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12:15)
이해는 공감과 함께 덮어놓고 죄책감에 사로잡힌 내담자를 관용하는 태도를 취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은 그 개념과 차원이 전연 다르다. 이해한다는 것을 반드시 용서해 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해한다는 말은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understand).
문제의 핵심은 성급하게 용서를 받는 데만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문제점을 찾게 하고 스스로 문제의 해결점을 풀어나가도록 이끄는데 있는 것이다.
5) 자율성을 살려주는 상담
상담자는 내담자가 상담을 요청해 올 때부터 문제의 내용을 그 자율적인 행동, 곧 책임 있는 행동(responsible action)으로 인정하고 자율성을 살려주어야 한다. 자율성을 살려주는 것은 곧 의존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자율적 존재로 창조되었으나 자율성을 포기하고 뱀에게 맡겨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에서 어긋나는 죄를 범하게 되었던 것이다. 교의신학(敎義神學)에는 자율성을 자유의지(自由意志)라고 표현한다.
신앙의 중요한 핵심은 스스로 십자가 앞에 나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굴복하는 것이다. 자율성이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상담 자체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된다.
신앙의 자리에 나오는 것은 성령의 감화하심에 순종하여 그 스스로의 노력과 깨달음 속에서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아니면 도무지 살 수 없다는 체험을 갖는 것이다. 자율성을 포기한 채, 타의에 이끌려 다니는 삶은 비참한 결과만을 얻게 된다.
자율성을 살려준다는 말은 모든 결정을 스스로 선택을 하거나 결정하면서 후회 없이 자신감을 가지고 살도록 해주는 것이다. 심령에 얽매임이 없는 자유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2. 완전히 승화되도록 하는 상담
상담자는 내담자가 상담을 요청해 올 때부터 문제의 내용을 그 자율적인 행동, 곧 책임 있는 행동(responsible action)으로 인정하고 자율성을 살려주어야 한다. 자율성을 살려주는 것은 곧 의존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자율적 존재로 창조되었으나 자율성을 포기하고 뱀에게 맡겨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에서 어긋나는 죄를 범하게 되었던 것이다. 교의신학(敎義神學)에는 자율성을 자유의지(自由意志)라고 표현한다.
신앙의 중요한 핵심은 스스로 십자가 앞에 나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굴복하는 것이다. 자율성이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상담 자체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된다.
신앙의 자리에 나오는 것은 성령의 감화하심에 순종하여 그 스스로의 노력과 깨달음 속에서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아니면 도무지 살 수 없다는 체험을 갖는 것이다. 자율성을 포기한 채, 타의에 이끌려 다니는 삶은 비참한 결과만을 얻게 된다.
자율성을 살려준다는 말은 모든 결정을 스스로 선택을 하거나 결정하면서 후회 없이 자신감을 가지고 살도록 해주는 것이다. 심령에 얽매임이 없는 자유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2. 완전히 승화되도록 하는 상담
상담치료의 과정에서 내담자로 하여금 자기 속마음을 마음껏 표현하게 만들어야 한다. 억눌린 감정이나 반항심, 부정적 태도와 문제점을 아무 두려움 없이 토해낼 수 있다면 자유로운 상태에서 마음껏 표현하게 된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든 찌꺼기들을 발산케 해준다면 발산 후의 허전함 속에서 자신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통찰력이란 성령께서 심령의 구석구석을 살피시는 것처럼 자신의 내부를 비추어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13:10-11)
통찰력(洞察力)이란 흥분된 상태에서는 나올 수 없다. 자신을 돌아볼 줄 안다는 사실은 지혜로운 사람의 태도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중요한 것이다. 신앙의 차원에서도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일을 함께 돌아보는 것이 성숙한 교회의 책임이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2:4)
자기 혼자만의 충성이나 열성이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심령을 병들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아통찰(自我洞察)이나 자아이해(自我理解)로 인도해주는 것이야말로 상담자의 책임이며, 또한 지혜로운 자의 모습이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20)
목회상담의 목표는 완전한 인격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며, 또한 교육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내와 사랑으로써 자아를 상실한 사람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해야 될지 가르쳐서 결단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설교가 성도들로 하여금 자아통찰을 하도록 만드는 기능을 갖지 못할 때에 바로 병든 설교가 되는 것이다. 개인상담은 개인을 상대로 하는 설교이면서도 이해심을 가지고 내담자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갖춘 태도여야 한다. 그럴 때에만 훌륭한 치료의 효과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완전한 인격을 갖추어주셨다는 뜻이다. 생각하는 차원이나 행동하는 차원이 모두 완전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완전히 승화되도록 한다는 것은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킨다는 뜻이다.
목회상담의 목표가 완전한 인간으로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상담을 통해 인간의 사고방식을 치료하고 행동방식을 치료하는 것이어야 한다. 완전히 승화되도록 상담한다는 것은 본래 가야만 하는 길로 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든 찌꺼기들을 발산케 해준다면 발산 후의 허전함 속에서 자신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통찰력이란 성령께서 심령의 구석구석을 살피시는 것처럼 자신의 내부를 비추어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13:10-11)
통찰력(洞察力)이란 흥분된 상태에서는 나올 수 없다. 자신을 돌아볼 줄 안다는 사실은 지혜로운 사람의 태도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중요한 것이다. 신앙의 차원에서도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일을 함께 돌아보는 것이 성숙한 교회의 책임이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2:4)
자기 혼자만의 충성이나 열성이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심령을 병들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아통찰(自我洞察)이나 자아이해(自我理解)로 인도해주는 것이야말로 상담자의 책임이며, 또한 지혜로운 자의 모습이라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20)
목회상담의 목표는 완전한 인격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며, 또한 교육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내와 사랑으로써 자아를 상실한 사람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을 해야 될지 가르쳐서 결단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설교가 성도들로 하여금 자아통찰을 하도록 만드는 기능을 갖지 못할 때에 바로 병든 설교가 되는 것이다. 개인상담은 개인을 상대로 하는 설교이면서도 이해심을 가지고 내담자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갖춘 태도여야 한다. 그럴 때에만 훌륭한 치료의 효과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완전한 인격을 갖추어주셨다는 뜻이다. 생각하는 차원이나 행동하는 차원이 모두 완전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완전히 승화되도록 한다는 것은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킨다는 뜻이다.
목회상담의 목표가 완전한 인간으로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상담을 통해 인간의 사고방식을 치료하고 행동방식을 치료하는 것이어야 한다. 완전히 승화되도록 상담한다는 것은 본래 가야만 하는 길로 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V. 결 론
목회상담치료(Counseling Therapy)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료를 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담자에게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의 의미를 이해시켜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일방적인 설교형태가 되어진다면 상담자 혼자서만 앞으로 나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상담은 대화이기 때문에 상담자와 내담자가 마음으로 동행해야만 된다.
목회상담에 있어서 가장 큰 약점은 대개 상담자(Counsellor)가 혼자서만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이다. 환자나 내담자(Client)가 동행하지 않으면 그 어떠한 치료도 불가능한 것이다. 복음을 전할 때에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듯, 사랑하는 마음과 인내심을 가지고 상담하지 않으면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서 상담을 실패하게 된다.
상담자의 겸손하며 온유한 태도는 내담자로 하여금 신뢰감을 조성해준다. 따라서 상담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웃으며 상담하는 비결}을 터득해야 좋은 상담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상담자는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성령 충만해진 사람만이 좋은 상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救贖的)인 사랑에 대해서 이해시키면 어느 누구라도 그 사랑 앞에서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항상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소외(疎外)된 사람이거나 심령에 상처를 입은 사람의 감정은 자신을 항상 외톨이로 생각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救贖)적인 사랑을 되풀이 강조하면서 상담자 자신도 그리스도의 인내심과 사랑의 심정으로 변화되어서 상담할 때에 치료의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상담자는 제시된 문제가 상담자의 경험이나 통찰력을 넘어선 문제일 때에는 상담자 자신보다 더 유능하고 경험이 풍부한 다른 상담자에게 넘겨줄 줄도 알아야 한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바꾸시려고 감동과 감화를 주신다.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하시던 상담사역을 대신 맡으시기 위해서 새롭게 보내어진 다른 보혜사(保惠師)이시다.
상담은 성령의 중생(重生)케 하시는 사역과 성화(聖化)시키는 사역의 조화를 통해서 새로운 인격으로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따라서 성령의 역사(役事)를 떠나서는 어떠한 상담도 성공할 수가 없다. 상담의 목적은 인격적 변화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보혜사( )는 상담자. 변호사 또는 위로자를 뜻한다. 성령께서는 상한 심령에 대한 안타까움을 갖기 때문에 상담자가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할 능력이 바로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 충만해야 한다는 것을 {신유의 은사를 받아야 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성령 충만을 받은 후에 진실한 사랑을 가지면 신유의 은사는 저절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목회상담에 있어서 가장 큰 약점은 대개 상담자(Counsellor)가 혼자서만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이다. 환자나 내담자(Client)가 동행하지 않으면 그 어떠한 치료도 불가능한 것이다. 복음을 전할 때에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듯, 사랑하는 마음과 인내심을 가지고 상담하지 않으면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서 상담을 실패하게 된다.
상담자의 겸손하며 온유한 태도는 내담자로 하여금 신뢰감을 조성해준다. 따라서 상담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웃으며 상담하는 비결}을 터득해야 좋은 상담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상담자는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성령 충만해진 사람만이 좋은 상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救贖的)인 사랑에 대해서 이해시키면 어느 누구라도 그 사랑 앞에서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항상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소외(疎外)된 사람이거나 심령에 상처를 입은 사람의 감정은 자신을 항상 외톨이로 생각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救贖)적인 사랑을 되풀이 강조하면서 상담자 자신도 그리스도의 인내심과 사랑의 심정으로 변화되어서 상담할 때에 치료의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상담자는 제시된 문제가 상담자의 경험이나 통찰력을 넘어선 문제일 때에는 상담자 자신보다 더 유능하고 경험이 풍부한 다른 상담자에게 넘겨줄 줄도 알아야 한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바꾸시려고 감동과 감화를 주신다.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하시던 상담사역을 대신 맡으시기 위해서 새롭게 보내어진 다른 보혜사(保惠師)이시다.
상담은 성령의 중생(重生)케 하시는 사역과 성화(聖化)시키는 사역의 조화를 통해서 새로운 인격으로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따라서 성령의 역사(役事)를 떠나서는 어떠한 상담도 성공할 수가 없다. 상담의 목적은 인격적 변화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보혜사( )는 상담자. 변호사 또는 위로자를 뜻한다. 성령께서는 상한 심령에 대한 안타까움을 갖기 때문에 상담자가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할 능력이 바로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 충만해야 한다는 것을 {신유의 은사를 받아야 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성령 충만을 받은 후에 진실한 사랑을 가지면 신유의 은사는 저절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A. 성경적인 신앙상담의 실제(Case study)
상담은 삶 자체를 치료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신앙적으로 잘못된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으로서 병든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자신의 감정에 상처를 입을 수 있으며, 죄책감을 갖게 될 때에는 그것이 영적인 문제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본래의 자기 모습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의 길을 제시하는 지침서이기 때문에 성경적 상담은 가장 완전한 치료상담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제시하는 문제는 모든 시대를 초월해서 인간이 직면할 사건이며, 성경적인 해결방법은 인생에게 있어서 불변의 진리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해결의 한 실례를 제시한다.
아더 랭크라는 영국의 실업가는 사업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항상 불안했다. 많은 염려 가운데 살던 그는 염려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 생각하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매주 수요일을 염려의 날로 정하고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걱정거리가 생긴 날짜와 내용을 적어 상자에 넣어 두었다.
그런데 어느 수요일 날, 그는 상자의 메모를 살펴보다가 문득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상자에 넣을 당시만 하여도 커다란 문젯거리였던 그것이 훗날 다시 읽을 즈음에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이 상자를 계속 활용하면서 그가 깨달은 것은, 사람이 살면서 크게 고민하며 염려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성경은 염려의 무가치성에 대해서 이보다 훨씬 더 명쾌하게 말하고 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6:27)
생각하는 것과 염려는 다른 것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해결 방안을 찾되, 전전긍긍하며 염려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염려는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서 생겨나므로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도 염려가 밀려올 때는 이렇게 기도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 염려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자꾸 염려하게 됩니다. 저의 염려의 목록들을 조목조목 아뢰오니 맡아 해결해 주옵소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도하고 자기 문제를 주님께 내어 맡기면, 주님께서 그 염려들을 명쾌한 응답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다. 이제 당신이 가진 문제들도 아더 랭크가 했던 것처럼 염려되는 문제의 목록들을 기록해두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 열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문제해결의 열쇠를 제공한다. 성경이 제시해주는 해답은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완전한 해결방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성경 말씀에 의해서 내담자를 도와주도록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다음은 휴즈(Selwyn Hughes)의 상담지침에 수록된 성경말씀과 인터넷 선교회의 묵상의 글들을 인용하였다. 이 말씀이 성경적 문제해결의 열쇠를 제공할 것이다.
1. 불신자들의 문제
성경은 본래의 자기 모습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의 길을 제시하는 지침서이기 때문에 성경적 상담은 가장 완전한 치료상담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제시하는 문제는 모든 시대를 초월해서 인간이 직면할 사건이며, 성경적인 해결방법은 인생에게 있어서 불변의 진리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해결의 한 실례를 제시한다.
아더 랭크라는 영국의 실업가는 사업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항상 불안했다. 많은 염려 가운데 살던 그는 염려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 생각하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매주 수요일을 염려의 날로 정하고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걱정거리가 생긴 날짜와 내용을 적어 상자에 넣어 두었다.
그런데 어느 수요일 날, 그는 상자의 메모를 살펴보다가 문득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상자에 넣을 당시만 하여도 커다란 문젯거리였던 그것이 훗날 다시 읽을 즈음에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이 상자를 계속 활용하면서 그가 깨달은 것은, 사람이 살면서 크게 고민하며 염려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성경은 염려의 무가치성에 대해서 이보다 훨씬 더 명쾌하게 말하고 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6:27)
생각하는 것과 염려는 다른 것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해결 방안을 찾되, 전전긍긍하며 염려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염려는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서 생겨나므로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도 염려가 밀려올 때는 이렇게 기도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 염려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자꾸 염려하게 됩니다. 저의 염려의 목록들을 조목조목 아뢰오니 맡아 해결해 주옵소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도하고 자기 문제를 주님께 내어 맡기면, 주님께서 그 염려들을 명쾌한 응답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다. 이제 당신이 가진 문제들도 아더 랭크가 했던 것처럼 염려되는 문제의 목록들을 기록해두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다음에 열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문제해결의 열쇠를 제공한다. 성경이 제시해주는 해답은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완전한 해결방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성경 말씀에 의해서 내담자를 도와주도록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다음은 휴즈(Selwyn Hughes)의 상담지침에 수록된 성경말씀과 인터넷 선교회의 묵상의 글들을 인용하였다. 이 말씀이 성경적 문제해결의 열쇠를 제공할 것이다.
1. 불신자들의 문제
1) 죄의식을 많이 느끼는 사람
자신의 죄가 많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용서받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라는 사실과 하나님은 죄인의 죄를 벌하시기보다 용서하시는 것을 기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된다. 하나님을 만나도 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용기를 북돋아주기 때문이다.
전갈의 독은 해독제가 될 수 있다. 죄는 나쁜 것이지만 자백과 회개를 통해 정결해질 수 있다. 죄에 대해서 애통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죄를 자백할 때에, 솔직하고 진지하게 모든 것을 말하라. 그러면 당신의 양심이 해방될 것이다. 그런 후에 주님의 인도하심에 귀를 기울이라. 구세주의 확실한 죄 사함의 음성을 마음으로 들을 것이다.
이른 아침의 잔잔한 햇살은 우리 얼굴의 잔주름을 드러낸다. 그렇듯이 성령은 우리의 양심을 깨워 우리의 죄를 분명하게 보도록 하신다. 그래도 여전히 당신 안에서 죄의 경향이 남아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그 성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지만 죄에 대한 애착을 포기할 수는 있다.
아주 작은 죄들이 당신의 영혼을 죽이지는 못하지만 그것들이 나쁜 습관을 형성하여 당신을 얽어매면 경건한 삶은 고통을 당한다. 한 번의 거짓말과 음란한 말 한마디나 자유롭게 옷을 입고 농담하며 노는 것, 그리고 춤추는 것이 땅을 뒤흔들만한 일은 아니다.
악의 없는 작은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험할 수 있다. 악은 그것을 향한 우리의 애착에 있다. 당신의 마음 밭에 잡초를 심지 말라. 당신의 정원은 그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정동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1:18)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3)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조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15)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자신의 죄가 많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용서받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라는 사실과 하나님은 죄인의 죄를 벌하시기보다 용서하시는 것을 기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된다. 하나님을 만나도 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용기를 북돋아주기 때문이다.
전갈의 독은 해독제가 될 수 있다. 죄는 나쁜 것이지만 자백과 회개를 통해 정결해질 수 있다. 죄에 대해서 애통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죄를 자백할 때에, 솔직하고 진지하게 모든 것을 말하라. 그러면 당신의 양심이 해방될 것이다. 그런 후에 주님의 인도하심에 귀를 기울이라. 구세주의 확실한 죄 사함의 음성을 마음으로 들을 것이다.
이른 아침의 잔잔한 햇살은 우리 얼굴의 잔주름을 드러낸다. 그렇듯이 성령은 우리의 양심을 깨워 우리의 죄를 분명하게 보도록 하신다. 그래도 여전히 당신 안에서 죄의 경향이 남아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그 성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지만 죄에 대한 애착을 포기할 수는 있다.
아주 작은 죄들이 당신의 영혼을 죽이지는 못하지만 그것들이 나쁜 습관을 형성하여 당신을 얽어매면 경건한 삶은 고통을 당한다. 한 번의 거짓말과 음란한 말 한마디나 자유롭게 옷을 입고 농담하며 노는 것, 그리고 춤추는 것이 땅을 뒤흔들만한 일은 아니다.
악의 없는 작은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험할 수 있다. 악은 그것을 향한 우리의 애착에 있다. 당신의 마음 밭에 잡초를 심지 말라. 당신의 정원은 그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정동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1:18)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3)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조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15)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2) 뒤로 미루기만 하는 사람
먼저 믿은 사람의 삶을 통해 신앙의 중요성을 일깨워야 한다. 입으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면서도 그 삶이 거룩하지 않으면 복음을 듣고서도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기를 꺼리게 되기 때문이다.
장애물과 기회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다. 모든 기회에는 어려움이 있으며 모든 어려움에는 기회가 있다. 어려운 환경이 닥쳤을 때, 뛰어난 태도를 지닌 사람은 최악의 상황을 최대한으로 이용한다.
역경은 훌륭한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는 번영의 기회이다. 연은 바람을 등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안고 난다. 비판이란 거센 바람이 불 때, 당신에게 그것이 연을 향해 부는 바람과 같이 되게 하라. 다시 말해, 연을 더 높이 띄우는 바람과 같게 하라. 그러면 망설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정동하).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벧전3:15)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보라 지금은 은혜를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6:2)
세상의 할 일을 모두 이룬 다음에 예수 믿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언제까지 건강하게 살며 자기 계획대로 살 수 있는지를 질문하면서 인생은 자신의 계획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눅12:20)
아직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기회를 잃지 않아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요12:35)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사55:6)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잠29:1)
먼저 믿은 사람의 삶을 통해 신앙의 중요성을 일깨워야 한다. 입으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면서도 그 삶이 거룩하지 않으면 복음을 듣고서도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기를 꺼리게 되기 때문이다.
장애물과 기회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다. 모든 기회에는 어려움이 있으며 모든 어려움에는 기회가 있다. 어려운 환경이 닥쳤을 때, 뛰어난 태도를 지닌 사람은 최악의 상황을 최대한으로 이용한다.
역경은 훌륭한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는 번영의 기회이다. 연은 바람을 등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안고 난다. 비판이란 거센 바람이 불 때, 당신에게 그것이 연을 향해 부는 바람과 같이 되게 하라. 다시 말해, 연을 더 높이 띄우는 바람과 같게 하라. 그러면 망설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정동하).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벧전3:15)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보라 지금은 은혜를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6:2)
세상의 할 일을 모두 이룬 다음에 예수 믿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언제까지 건강하게 살며 자기 계획대로 살 수 있는지를 질문하면서 인생은 자신의 계획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눅12:20)
아직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기회를 잃지 않아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요12:35)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사55:6)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잠29:1)
3) 흔들리는 신앙 때문에 염려하는 사람
신앙의 특징은 스스로의 의지대로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이 신앙의 요소이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벧전1:5)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유24)
어려움 속에서도 평화를 느끼며 악조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은 자신과 함께 동행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심령 속에 계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란 자신의 옛 사람이 죽는 것이어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후1:12)
{내 양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0:27-28)
신앙의 특징은 스스로의 의지대로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이 신앙의 요소이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벧전1:5)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유24)
어려움 속에서도 평화를 느끼며 악조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은 자신과 함께 동행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심령 속에 계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란 자신의 옛 사람이 죽는 것이어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후1:12)
{내 양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0:27-28)
4) 인간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자
인간 예수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를 영접하지 않는 자에게는 인간의 불의(不義)를 대신해서 아무런 죄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구속(救贖)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의인의 자격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기적이며 은혜인 것을 가르쳐야 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3:10)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갈3:10)
인간에게는 아무런 의로움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죽음에 내어주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는 의인의 자격을 주셨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의로움을 나누어 갖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다.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의로움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이라는 선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5)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믿으면서도 잘못을 회개하지 않는 자
하나님께서 오늘도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인간을 멸하기보다는 구원하기를 기뻐하셔서 참고 기다리신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 주어진 은총이며, 축복인 것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 느니라} (벧후3:9)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지 오기를 원하지 않는도다} (요5:40)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겔33:11)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13:3)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다면 자신의 죄를 모두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를 이루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알려서 회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회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된다. 회개는 부끄러움을 청산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언제까지 자신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남겨둘 것인가? 빠른 청산이 필요한 것이다.
6) 교인들의 위선 때문에 교회에 가지 않는다는 자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은 감추고 다른 사람의 잘못만을 탓하는 경향이 많다. 그런데 누구나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란 없다. 복음을 들은 후 깨닫고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의 변화된 인격과 그 과정을 보아야 한다. 고든 케디 목사는 그의 저서 {그의 이름은 야훼}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세상은 교회와 교인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세상은 교회가 전파하는 메시지를 크리스천들이 실천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은 크리스천들이 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과 겸비와 경건을 유지해줄 것을 바랍니다. 이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크리스천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것에 불과합니다.
성도 여러분, 당신들의 주위에 있는 불신자들은 당신들의 삶과 양심이 그들보다 훨씬 더 고결하고 민감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불신자들은 모순된 크리스천들을 끄집어내기를 좋아합니다. 한편 그러한 것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는 구실이 된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렇다. 크리스천들이 말로는 사랑하라고 하면서도 사랑하지 못했으며, 감사하라고 하면서도 감사하지 못했으며, 겸손하라 하면서도 겸손하지 못했으며, 정직하라고 말하면서도 정직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큰 문제는 어떠한 시도나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지고 갈보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이다. 구원이란 최종의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다. 우리를 구원하여 성장시키시는 절대적인 이유는 우리가 선한 일을 실천하는 자가 되게 하시려는 까닭이다.
{누구든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롬2: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것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서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7: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6:15)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4:32)
인간 예수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를 영접하지 않는 자에게는 인간의 불의(不義)를 대신해서 아무런 죄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구속(救贖)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의인의 자격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기적이며 은혜인 것을 가르쳐야 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3:10)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갈3:10)
인간에게는 아무런 의로움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죽음에 내어주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는 의인의 자격을 주셨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의로움을 나누어 갖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다.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에게 의로움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이라는 선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주시기 때문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5)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믿으면서도 잘못을 회개하지 않는 자
하나님께서 오늘도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인간을 멸하기보다는 구원하기를 기뻐하셔서 참고 기다리신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 주어진 은총이며, 축복인 것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 느니라} (벧후3:9)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지 오기를 원하지 않는도다} (요5:40)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겔33:11)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13:3)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다면 자신의 죄를 모두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를 이루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알려서 회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회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된다. 회개는 부끄러움을 청산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언제까지 자신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남겨둘 것인가? 빠른 청산이 필요한 것이다.
6) 교인들의 위선 때문에 교회에 가지 않는다는 자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은 감추고 다른 사람의 잘못만을 탓하는 경향이 많다. 그런데 누구나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이란 없다. 복음을 들은 후 깨닫고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의 변화된 인격과 그 과정을 보아야 한다. 고든 케디 목사는 그의 저서 {그의 이름은 야훼}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세상은 교회와 교인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세상은 교회가 전파하는 메시지를 크리스천들이 실천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은 크리스천들이 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과 겸비와 경건을 유지해줄 것을 바랍니다. 이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크리스천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것에 불과합니다.
성도 여러분, 당신들의 주위에 있는 불신자들은 당신들의 삶과 양심이 그들보다 훨씬 더 고결하고 민감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불신자들은 모순된 크리스천들을 끄집어내기를 좋아합니다. 한편 그러한 것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는 구실이 된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렇다. 크리스천들이 말로는 사랑하라고 하면서도 사랑하지 못했으며, 감사하라고 하면서도 감사하지 못했으며, 겸손하라 하면서도 겸손하지 못했으며, 정직하라고 말하면서도 정직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큰 문제는 어떠한 시도나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지고 갈보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이다. 구원이란 최종의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다. 우리를 구원하여 성장시키시는 절대적인 이유는 우리가 선한 일을 실천하는 자가 되게 하시려는 까닭이다.
{누구든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롬2: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것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서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7: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6:15)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4:32)
7) 예수를 믿으려고 했지만 실패한 사람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은 죄로부터 하나님을 향해서 돌아서는 것이다. 이 세상이 죄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회개가 가능하며, 과거의 모든 죄를 회개할 때에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것은 위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행2:38)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3:2)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3)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행17:30)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롬2:4)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은 죄로부터 하나님을 향해서 돌아서는 것이다. 이 세상이 죄로 물들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회개가 가능하며, 과거의 모든 죄를 회개할 때에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것은 위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행2:38)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3:2)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3)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행17:30)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롬2:4)
8) 인간적인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 사람
신앙생활이 고상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에 대한 인간적 욕망을 버릴 수 없어서 방황하는 사람은 멸망이 매우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멸망의 길을 벗어나서 생명의 길을 택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또한 믿음의 결단인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비결이 믿음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네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16:11)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8:32)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막8:36)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빌3:8)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84:11)
신앙생활이 고상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에 대한 인간적 욕망을 버릴 수 없어서 방황하는 사람은 멸망이 매우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멸망의 길을 벗어나서 생명의 길을 택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또한 믿음의 결단인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비결이 믿음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네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16:11)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8:32)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막8:36)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빌3:8)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84:11)
9) 성경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
이성적(理性的)인 사람은 자신의 지식 때문에 가장 귀한 진리를 수용하지 못할 경우가 있다. 영적인 일을 이해할 수 없을 때에 사람들은 그것을 신비(神秘)라고 표현한다. 신비(神秘)란, 하나님의 비밀을 의미한다. 오직 신앙으로서만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의 비밀을 성경은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성경을 철학적으로 읽으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허망한 생각으로 사람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겸손하게 말씀을 듣는 태도로 읽어야 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2:1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고후4:4)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7:17)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시25:14)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4:12)
이성적(理性的)인 사람은 자신의 지식 때문에 가장 귀한 진리를 수용하지 못할 경우가 있다. 영적인 일을 이해할 수 없을 때에 사람들은 그것을 신비(神秘)라고 표현한다. 신비(神秘)란, 하나님의 비밀을 의미한다. 오직 신앙으로서만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의 비밀을 성경은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성경을 철학적으로 읽으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허망한 생각으로 사람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겸손하게 말씀을 듣는 태도로 읽어야 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2:1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고후4:4)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7:17)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시25:14)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4:12)
10) 종교에 관심이 없다는 사람
종교를 인간적 수양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나 세상일에 몰두함으로서 관심을 갖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을 자신이 위임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종교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의로움을 입기 위한 것이다. 타락했던 아담은 스스로의 의로움을 입기 위해서 가죽옷을 입었지만,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새로 지어서 입혀주셨다. 기독교는 바로 하나님께서 의로움을 입혀주시는 종교이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6:23)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8:34)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8:24)
{누구든지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리라}(계20:15)
11) 용서받을 수 없는 죄 때문에 신앙을 갖지 못하는 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대신 속죄(贖罪)하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주셨다. 그 사실은 인간의 어떠한 죄든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은 모든 죄와 허물을 덮어줄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가 아무리 크더라도 용서하시려는 아버지의 사랑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할 때에 더 이상 두려워해야될 아무런 문제도 없게 되는 것이다.
여기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된다.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 아버지 앞에 나와 용서를 받는 것이 참된 용기이며, 지혜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요6:37)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롬10:9)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행10:43)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1:1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종교를 인간적 수양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나 세상일에 몰두함으로서 관심을 갖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을 자신이 위임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종교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의로움을 입기 위한 것이다. 타락했던 아담은 스스로의 의로움을 입기 위해서 가죽옷을 입었지만,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새로 지어서 입혀주셨다. 기독교는 바로 하나님께서 의로움을 입혀주시는 종교이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6:23)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8:34)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8:24)
{누구든지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리라}(계20:15)
11) 용서받을 수 없는 죄 때문에 신앙을 갖지 못하는 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대신 속죄(贖罪)하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주셨다. 그 사실은 인간의 어떠한 죄든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은 모든 죄와 허물을 덮어줄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가 아무리 크더라도 용서하시려는 아버지의 사랑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할 때에 더 이상 두려워해야될 아무런 문제도 없게 되는 것이다.
여기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된다.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 아버지 앞에 나와 용서를 받는 것이 참된 용기이며, 지혜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요6:37)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롬10:9)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행10:43)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1:1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12) 인간적으로 최선을 다해 의롭게 산다는 사람
아담의 범죄는 인류의 범죄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성경은 지적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로움을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입혀져야만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입는 방법은 그를 생명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입고 사는 것이 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갈3:1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22:37)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11: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6: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5:20)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20)
아담의 범죄는 인류의 범죄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성경은 지적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의로움을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입혀져야만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입는 방법은 그를 생명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입고 사는 것이 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갈3:1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22:37)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11: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6: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5:20)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20)
2. 신앙인의 문제
1) 나쁜 생각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나쁜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성령께서는 더러운 죄인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죄인으로 하여금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해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나쁜 생각을 갖지 않도록 성령께서만 도우실 수 있다. 따라서 나쁜 생각을 거룩한 생각으로 바꾸어주시도록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더러운 생각을 거룩한 생각으로 바꾸어주시는 것이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 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4:8)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3:2)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딛1:1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사26:3)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찌어다} (시4:4)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딤전4:16)
2) 사건이 생길 때에 당황하고 두려워하며 낙망하는 자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주셨으며, 사건에 직면해서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담대한 믿음을 주기 위해서 성령충만케 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풍랑을 만난 선원들이 키를 붙들고 있는 것처럼 자신이 붙잡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완전히 맡기는 기도는 맡긴 후에 다시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시61:2)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히12:3)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눅18:1)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 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사59:19)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나쁜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성령께서는 더러운 죄인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죄인으로 하여금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해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나쁜 생각을 갖지 않도록 성령께서만 도우실 수 있다. 따라서 나쁜 생각을 거룩한 생각으로 바꾸어주시도록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더러운 생각을 거룩한 생각으로 바꾸어주시는 것이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 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4:8)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3:2)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딛1:1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사26:3)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찌어다} (시4:4)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딤전4:16)
2) 사건이 생길 때에 당황하고 두려워하며 낙망하는 자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주셨으며, 사건에 직면해서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담대한 믿음을 주기 위해서 성령충만케 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풍랑을 만난 선원들이 키를 붙들고 있는 것처럼 자신이 붙잡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완전히 맡기는 기도는 맡긴 후에 다시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시61:2)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히12:3)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눅18:1)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 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사59:19)
3) 영적인 성장이 늦어서 믿음이 없는 자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묵상하며 기도하면 하나님이 성령의 지혜를 통해서 믿음을 성장하게 하시는 것이다. 믿음은 자신이 가진 믿음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믿음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믿음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목적을 가진 신분으로 변하게 된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2:15)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벧후1:5-7)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롬12:6)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 파선하였느니라} (딤전1:19)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묵상하며 기도하면 하나님이 성령의 지혜를 통해서 믿음을 성장하게 하시는 것이다. 믿음은 자신이 가진 믿음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믿음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믿음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목적을 가진 신분으로 변하게 된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2:15)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벧후1:5-7)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롬12:6)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 파선하였느니라} (딤전1:19)
4) 열등의식을 가진 자
작은 실패 때문에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천성적으로 의지가 약한 사람은 하나님의 선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고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믿고 그 은사를 활용해야 된다.
하나님은 무능한 자에게 힘과 용기를 주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직접 이루어주신다. 용기와 신념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당신이 승리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12:3)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며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롬12:6-8)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139:16)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16:7)
작은 실패 때문에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천성적으로 의지가 약한 사람은 하나님의 선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고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믿고 그 은사를 활용해야 된다.
하나님은 무능한 자에게 힘과 용기를 주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직접 이루어주신다. 용기와 신념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당신이 승리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12:3)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며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롬12:6-8)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139:16)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16:7)
5) 무엇에 억압되어 영적인 침체상태에 빠진 자
성도에게 닥치는 고난이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사실을 믿고 오히려 그 고난을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한다. 고난을 통과하면서 성도는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며, 더 큰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자기 앞에 가로놓인 험준한 길은 오히려 자신을 성장시키는 지름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런 훈련도 하지 않은 사람은 경기에서 결코 승리할 수가 없다. 시련을 운동선수에게 주어진 훈련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오히려 시련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위대한 인물들은 시련을 훌륭하게 통과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4:17)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42:5, 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찌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56:4)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성도에게 닥치는 고난이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사실을 믿고 오히려 그 고난을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한다. 고난을 통과하면서 성도는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며, 더 큰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자기 앞에 가로놓인 험준한 길은 오히려 자신을 성장시키는 지름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런 훈련도 하지 않은 사람은 경기에서 결코 승리할 수가 없다. 시련을 운동선수에게 주어진 훈련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오히려 시련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위대한 인물들은 시련을 훌륭하게 통과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4:17)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42:5, 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찌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56:4)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6) 실패로 인해 좌절감에 사로잡힌 자
실패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축되게 만든다. 그러나 실패가 없는 성공이란 가치가 없는 것이다. 실패는 더 큰 성공을 향한 지름길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는 즉각적으로 성공을 주시기보다는 오히려 실패를 경험하게 하신다. 실패로 인해서 좌절하기보다는 다시 일어나서 도전하는 것이 인생에게 주어진 과제이며 능력인 것이다. 실패했으나 좌절하지 않고 위대한 결심으로 새롭게 출발하여 성공을 거둔 예가 있다.
휴 애런슨 18세의 젊은 나이에 고향인 스웨덴을 떠나서 혼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나 누구 한 사람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마침내 가지고 있던 돈도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하루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무작정 서부로 가는 기차 화물칸에 올라탔으나 그만 열차 승무원에게 발각되어 실컷 얻어맞고 열차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매맞은 몸으로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도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다.
강물을 바라보면서 그의 심정은 차라리 저 강물에 몸을 던져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때 불현듯 그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성경 구절이 하나 있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그는 그 말씀을 가만히 묵상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생애에서 얼마나 힘있게 뛰어보았는가?}
그는 그 자리에서 두 주먹을 쥐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기가 지나온 모든 과거를 흘러가는 강물 위에 떠내려보내기로 했다. 그리고는 힘있게 뛰어보기로 결심했다. 30년 후, 휴 애런슨은 몬테나 주의 영광스러운 주지사로 선출되었다.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용기를 잃지 않아야 된다. 내일을 바라보면서 힘차게 달리며 바람이 불더라도,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낙심하지 말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쉬지 않고 전진하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1:7)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빌1:11-12)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23: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시33:1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나니……} (창50:20)
7) 동성애에 빠진 자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트리는 것이야말로 커다란 죄악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로 가정을 이루도록 하셨기 때문에 동성애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는 죄악이며,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한 원인과 노아의 홍수심판도 동성애자들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 이유도 가나안 원주민들의 동성애에 대한 징계였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롬1:27-28)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포기하실 만큼 커다란 죄악이다. 자신의 마음에서 죄책감이 느껴진다면 속히 떠나야 된다.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6:12-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16:24)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골3:5)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6:9-10)
실패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축되게 만든다. 그러나 실패가 없는 성공이란 가치가 없는 것이다. 실패는 더 큰 성공을 향한 지름길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는 즉각적으로 성공을 주시기보다는 오히려 실패를 경험하게 하신다. 실패로 인해서 좌절하기보다는 다시 일어나서 도전하는 것이 인생에게 주어진 과제이며 능력인 것이다. 실패했으나 좌절하지 않고 위대한 결심으로 새롭게 출발하여 성공을 거둔 예가 있다.
휴 애런슨 18세의 젊은 나이에 고향인 스웨덴을 떠나서 혼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나 누구 한 사람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마침내 가지고 있던 돈도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하루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무작정 서부로 가는 기차 화물칸에 올라탔으나 그만 열차 승무원에게 발각되어 실컷 얻어맞고 열차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매맞은 몸으로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도 처량해 보일 수가 없었다.
강물을 바라보면서 그의 심정은 차라리 저 강물에 몸을 던져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때 불현듯 그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성경 구절이 하나 있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그는 그 말씀을 가만히 묵상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생애에서 얼마나 힘있게 뛰어보았는가?}
그는 그 자리에서 두 주먹을 쥐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기가 지나온 모든 과거를 흘러가는 강물 위에 떠내려보내기로 했다. 그리고는 힘있게 뛰어보기로 결심했다. 30년 후, 휴 애런슨은 몬테나 주의 영광스러운 주지사로 선출되었다.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용기를 잃지 않아야 된다. 내일을 바라보면서 힘차게 달리며 바람이 불더라도,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낙심하지 말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쉬지 않고 전진하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벧전1:7)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빌1:11-12)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23: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시33:1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나니……} (창50:20)
7) 동성애에 빠진 자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깨트리는 것이야말로 커다란 죄악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로 가정을 이루도록 하셨기 때문에 동성애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는 죄악이며,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한 원인과 노아의 홍수심판도 동성애자들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 이유도 가나안 원주민들의 동성애에 대한 징계였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롬1:27-28)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포기하실 만큼 커다란 죄악이다. 자신의 마음에서 죄책감이 느껴진다면 속히 떠나야 된다.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6:12-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16:24)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골3:5)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6:9-10)
8) 이혼단계에 이른 자
결혼제도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이다. 따라서 이혼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지 말고 양보하고 사랑하면서 순종으로 가정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 결혼 초에 가졌던 행복에 대한 꿈을 회상해보고 그 행복을 위해서 자신이 실천하지 못했던 부분을 상대에게 사과하고 서로 행복을 위해서 달려가기 시작하면 처음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자아(自我)를 희생할 때에만 참된 가정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할 때에 오히려 모든 것을 잃게 마련이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5:22, 25)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2)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의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2:3-4)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골3:18-19)
결혼제도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이다. 따라서 이혼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지 말고 양보하고 사랑하면서 순종으로 가정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 결혼 초에 가졌던 행복에 대한 꿈을 회상해보고 그 행복을 위해서 자신이 실천하지 못했던 부분을 상대에게 사과하고 서로 행복을 위해서 달려가기 시작하면 처음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자아(自我)를 희생할 때에만 참된 가정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할 때에 오히려 모든 것을 잃게 마련이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5:22, 25)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2)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의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2:3-4)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골3:18-19)
9) 매사에 걱정이 많은 사람
걱정과 근심은 자기 자신을 칼로 베는 것이다. 자기 심령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점점 견고해지면,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기 때문에 근심이나 걱정에서 벗어나고 성공할 수 있다.
맡긴다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문제로 넘겨주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한번 기도한 후에 맡긴 문제는 두 번 다시 생각하거나 기도하지도 않아야 된다.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가 된다.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잠12:25)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잠14:30)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잠17:22)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
(마6:2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벧전5:7)
걱정과 근심은 자기 자신을 칼로 베는 것이다. 자기 심령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점점 견고해지면,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기 때문에 근심이나 걱정에서 벗어나고 성공할 수 있다.
맡긴다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문제로 넘겨주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한번 기도한 후에 맡긴 문제는 두 번 다시 생각하거나 기도하지도 않아야 된다.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가 된다.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잠12:25)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잠14:30)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잠17:22)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
(마6:2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벧전5:7)
10)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
인간은 언제인가 헤어져야 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사실 자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죽음이란 모두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일찍 데려가심으로써 그에게 평안을 주시려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오히려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 (사57:1-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시55:22)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4:1)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사25:8)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그가 너의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사30:19)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15:55)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11)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자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은 축복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열어놓기 시작하면 좋은 친구를 보내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을 꽉 닫아두면 아무도 그 문으로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의 마음을 열어놓으면 그 누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잠16:7)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잠17:9)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딤후1:7)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벧전1:22)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5:23-2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3-14)
인간은 언제인가 헤어져야 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사실 자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죽음이란 모두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일찍 데려가심으로써 그에게 평안을 주시려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오히려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 (사57:1-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시55:22)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4:1)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사25:8)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그가 너의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사30:19)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15:55)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11)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자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은 축복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열어놓기 시작하면 좋은 친구를 보내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을 꽉 닫아두면 아무도 그 문으로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의 마음을 열어놓으면 그 누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잠16:7)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잠17:9)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딤후1:7)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벧전1:22)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5:23-2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3-14)
12) 기도가 잘 안 된다는 사람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이며, 영적인 호흡이다. 그런데도 기도가 잘 안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이 아직 자신에게 남아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사이에 만날 수 있는 청결한 심령상태가 될 수 있도록 원인을 찾아서 회개해야 된다.
테렉 프라임의 저서 Practical Prayer(실천적 기도)에 기록되어 있는 몇 가지 기도의 원리들을 제시한다.
1.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있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이어야 한다.
2.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죄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바른 인간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3.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위한 그 분의 공로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4. 우리는 믿음을 실행해야 한다. 기도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 그 이상으로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다.
5. 우리는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원인은 믿음과 행함은 같이 걸어가기 때문이다. 기도한 후 우리는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실 때, 그 분의 도구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
6.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해야 한다.
7. 우리는 성실하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마음의 간절함이 없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위선자의 기도를 들으실 시간이 없다. 그러나 진리 안에서 주님을 부르는 자에게 가까이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대하7:14)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 (딤전2:1)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6-18)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6: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4:6)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이며, 영적인 호흡이다. 그런데도 기도가 잘 안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이 아직 자신에게 남아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사이에 만날 수 있는 청결한 심령상태가 될 수 있도록 원인을 찾아서 회개해야 된다.
테렉 프라임의 저서 Practical Prayer(실천적 기도)에 기록되어 있는 몇 가지 기도의 원리들을 제시한다.
1.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있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이어야 한다.
2.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적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죄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바른 인간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3.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위한 그 분의 공로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4. 우리는 믿음을 실행해야 한다. 기도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 그 이상으로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다.
5. 우리는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원인은 믿음과 행함은 같이 걸어가기 때문이다. 기도한 후 우리는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실 때, 그 분의 도구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
6.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해야 한다.
7. 우리는 성실하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마음의 간절함이 없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위선자의 기도를 들으실 시간이 없다. 그러나 진리 안에서 주님을 부르는 자에게 가까이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대하7:14)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 (딤전2:1)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6-18)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6: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4:6)
13)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
구원이란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택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지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구원받았다는 믿음을 가져야 된다. 자신의 의로움으로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은 죄악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뜻이다.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롬5:11)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8:16)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요일3:14)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민23:19)
{너희는 다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8:15)
구원이란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택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지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구원받았다는 믿음을 가져야 된다. 자신의 의로움으로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은 죄악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뜻이다.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롬5:11)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8:16)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요일3:14)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민23:19)
{너희는 다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8:15)
14) 죄책감에 사로잡힌 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을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는 얼마든지 용서를 받을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형벌을 주시기보다 죄를 용서하고 구원받는 모습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진리는 과거를 묻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의 문제는 회개와 동시에 해결되었다는 것을 믿고 오히려 감사할 때에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1:7)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55: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1:7)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시86:5)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겔18:23)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2:4)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을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자는 얼마든지 용서를 받을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형벌을 주시기보다 죄를 용서하고 구원받는 모습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진리는 과거를 묻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의 문제는 회개와 동시에 해결되었다는 것을 믿고 오히려 감사할 때에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1:7)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55: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1:7)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시86:5)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겔18:23)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2:4)
15) 용서하기가 어렵다는 사람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도 용서를 해야만 된다. 용서를 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용서가 얼마나 귀중한지 깨닫게 되며, 비로소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진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잠19:11)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골3:13)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12:19)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4:32)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눅17:3)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살전5:15)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도 용서를 해야만 된다. 용서를 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용서가 얼마나 귀중한지 깨닫게 되며, 비로소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진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잠19:11)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골3:13)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12:19)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4:32)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눅17:3)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살전5:15)
16) 자살하고 싶다는 사람
고독이 밀려올 때나 또 일이 잘 안 풀릴 때에 사람들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하나님이 어떻게 매기셨는지를 안다면 자신의 불행이 절대로 자신만의 불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죄인의 생명을 맞바꾸심으로 성도를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구속에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행한다면 영적인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시34:6)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8-9)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10:13)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딤후2:13)
고독이 밀려올 때나 또 일이 잘 안 풀릴 때에 사람들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하나님이 어떻게 매기셨는지를 안다면 자신의 불행이 절대로 자신만의 불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죄인의 생명을 맞바꾸심으로 성도를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구속에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행한다면 영적인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시34:6)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8-9)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10:13)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딤후2:13)
17) 귀신들린 자의 치료
귀신에게 사로잡힌 자를 치료할 때에 주의해야 할 것은 영적 치료에서 물리적인 힘으로 환자를 제어(制御)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귀신들린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성령의 역사에 의존해야 된다. 그런데 귀신은 무엇을 가장 싫어하는가? 하는 문제를 알 수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알 수 있다.
귀신은 찬송을 싫어한다. 어떠한 찬송도 귀신에게는 치명적인 공격무기가 된다. 그러므로 찬송하는 살이 되면 귀신의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찬송으로 귀신이 쩔쩔 매도록 만들면 치료도 빨리 이루어진다.
귀신은 사랑을 가장 싫어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인류를 구속하셨다는 사실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통해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을 설명할 때에 귀신은 듣기를 싫어한다. 그러므로 사랑에 관한 성경의 말씀을 들려주기만 해도 며칠이 못되어서 귀신은 도망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요일5:8)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8:13-14)
또 귀신은 찬송을 싫어한다. 사울에게 악신이 붙어서 고통을 줄 때에 다윗이 악기를 연주하면 상쾌해지고 악신이 떠났었다. 그러므로 찬송을 들려주면 귀신은 떠나고 사람은 안정을 얻게 된다.
그 때에 부를 찬송은 꼭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군대식 찬송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오히려 고용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찬송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찬송을 부르면 더러운 귀신은 그 찬송이 싫어서도 환자에게서 떠나게 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찬송은 당시 적대자들 심령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래서 카톨릭 사람들은 루터의 설교보다도 루터의 찬송이 더 위대한 힘을 나타냈다고 말하게 되었다.
따라서 찬송의 위력을 절대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찬송을 부르는 동안은 어떠한 세력이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성도들을 끊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귀신에게 사로잡힌 자를 치료할 때에 주의해야 할 것은 영적 치료에서 물리적인 힘으로 환자를 제어(制御)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귀신들린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성령의 역사에 의존해야 된다. 그런데 귀신은 무엇을 가장 싫어하는가? 하는 문제를 알 수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알 수 있다.
귀신은 찬송을 싫어한다. 어떠한 찬송도 귀신에게는 치명적인 공격무기가 된다. 그러므로 찬송하는 살이 되면 귀신의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찬송으로 귀신이 쩔쩔 매도록 만들면 치료도 빨리 이루어진다.
귀신은 사랑을 가장 싫어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인류를 구속하셨다는 사실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통해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을 설명할 때에 귀신은 듣기를 싫어한다. 그러므로 사랑에 관한 성경의 말씀을 들려주기만 해도 며칠이 못되어서 귀신은 도망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요일5:8)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8:13-14)
또 귀신은 찬송을 싫어한다. 사울에게 악신이 붙어서 고통을 줄 때에 다윗이 악기를 연주하면 상쾌해지고 악신이 떠났었다. 그러므로 찬송을 들려주면 귀신은 떠나고 사람은 안정을 얻게 된다.
그 때에 부를 찬송은 꼭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군대식 찬송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오히려 고용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찬송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찬송을 부르면 더러운 귀신은 그 찬송이 싫어서도 환자에게서 떠나게 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찬송은 당시 적대자들 심령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래서 카톨릭 사람들은 루터의 설교보다도 루터의 찬송이 더 위대한 힘을 나타냈다고 말하게 되었다.
따라서 찬송의 위력을 절대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찬송을 부르는 동안은 어떠한 세력이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성도들을 끊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3. 지식인들의 변명에 대해서
1) 모든 종교를 똑같은 것으로 보는 자
인간은 자신의 의로움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23)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나님의 의로움을 입혀주심으로 인간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가능해졌으며, 결국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독생자를 주셔서 구원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기독교가 유일한 참 종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믿어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눅9:35)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1:17)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4:23)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1-3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인간은 자신의 의로움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23)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나님의 의로움을 입혀주심으로 인간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가능해졌으며, 결국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독생자를 주셔서 구원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기독교가 유일한 참 종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믿어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눅9:35)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요1:17)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4:23)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1-3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 하나님이신 지 의심하는 자
하나님은 영(靈)이시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으며 느낄 수도 없다.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으로 믿고 위로를 받으려 하지만, 그 우상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내려와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것은 죄가 없는 자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참 인간이시며 또한 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3:14)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요6:5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35)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1-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거하시매}라는 말은 장막을 치셨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성육신(成肉身) 사건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 사이에 천막을 치고 거처를 정하셨다는 뜻이다.
3) 기독교를 심리적인 종교라고 생각하는 자
기독교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자기수양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세상의 법칙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영적인 종교이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죄인이 되어버린 인간을 구속하심으로서 인간이 상실해버린 본래의 자격을 회복시켜 주신 은혜를 믿는 종교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마9:12-13)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눅7:47)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26-29)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
하나님은 영(靈)이시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으며 느낄 수도 없다.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으로 믿고 위로를 받으려 하지만, 그 우상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내려와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것은 죄가 없는 자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참 인간이시며 또한 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3:14)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요6:51)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35)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1-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거하시매}라는 말은 장막을 치셨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성육신(成肉身) 사건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 사이에 천막을 치고 거처를 정하셨다는 뜻이다.
3) 기독교를 심리적인 종교라고 생각하는 자
기독교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자기수양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세상의 법칙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영적인 종교이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죄인이 되어버린 인간을 구속하심으로서 인간이 상실해버린 본래의 자격을 회복시켜 주신 은혜를 믿는 종교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마9:12-13)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눅7:47)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26-29)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
4) 예수의 이름을 듣지 못한 이방인들은?
예수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은 약 2,000년밖에 안 된다. 그 전에 있던 지역적인 선지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선과 의로움을 가르치거나 행하였다. 그래서 자기의 양심이 율법이 되고 그 마음의 법에 의해서 올바르게 행동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나라와 민족이 복음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구속을 전하여 구원의 기준을 삼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고 핑계하지 못하도록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된 후에야 그리스도께서 다시 재림하시는 것이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롬2:14-15)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45:21)
{공평한 간칭과 명칭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추돌들도 다 그의 지으신 것이라} (잠16:11)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시25:8-9)
{너희는 눈을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사40:26)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19:1)
5) 성경은 오류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세상에 여러 종류의 진리가 있으나 언제인가 그 진리가 변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의 진리는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3:16-17)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1)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17: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렘1:12)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겔37:14)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시34:8)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눅24:32)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사40:8)
예수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은 약 2,000년밖에 안 된다. 그 전에 있던 지역적인 선지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선과 의로움을 가르치거나 행하였다. 그래서 자기의 양심이 율법이 되고 그 마음의 법에 의해서 올바르게 행동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나라와 민족이 복음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구속을 전하여 구원의 기준을 삼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고 핑계하지 못하도록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된 후에야 그리스도께서 다시 재림하시는 것이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롬2:14-15)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45:21)
{공평한 간칭과 명칭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추돌들도 다 그의 지으신 것이라} (잠16:11)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시25:8-9)
{너희는 눈을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사40:26)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19:1)
5) 성경은 오류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세상에 여러 종류의 진리가 있으나 언제인가 그 진리가 변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의 진리는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3:16-17)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1)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17: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렘1:12)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겔37:14)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시34:8)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눅24:32)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사40:8)
6)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심하는 자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성경이 증언한다. 성경은 영원히 변치 않는 불변의 진리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주는 믿을만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부활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겠다고 결심하였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노라}
(빌3:10-12)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시16:10)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16:6)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마20:19)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막16:14)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벧전3:18)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것을 성경이 증언한다. 성경은 영원히 변치 않는 불변의 진리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주는 믿을만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부활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겠다고 결심하였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노라}
(빌3:10-12)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시16:10)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16:6)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마20:19)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막16:14)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벧전3:18)
7) 기적을 믿지 못하는 자
세상에는 인간이 깨달을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 기적이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인간의 평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아니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할 때에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기적이 아니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전부 기적이기 때문에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14:1)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38:2-4)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1:19-20)
세상에는 인간이 깨달을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 기적이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인간의 평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아니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할 때에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기적이 아니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전부 기적이기 때문에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14:1)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38:2-4)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1:19-20)
8) 하나님은 왜 이렇게 많은 고통을 허락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시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죄에 대한 형벌로 주시는 것이며, 둘째는 더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는 자신이 선택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감사하면서 고통을 스스로 이길 수 있도록 해야 된다.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6:6)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28-2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55:8-9)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23:3-4)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욥2:25)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18:25)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시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죄에 대한 형벌로 주시는 것이며, 둘째는 더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는 자신이 선택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감사하면서 고통을 스스로 이길 수 있도록 해야 된다.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6:6)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28-2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55:8-9)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23:3-4)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욥2:25)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18:25)
(출처: 인터넷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