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도운동, 위험요소분석(2)
[정이철 목사]
마이크 비클과 IHOP의 위험 요소 분석
2011/01/13 (목) 23:59 ㆍ미주 아멘넷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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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령을 방출(released)되는 힘(force)의 개념으로 이해한다
마이크 비클의 신학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중대한 위험성은 성령에 대한 지극히 불건전한 개념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는 성령이 임재하시고, 성령이 역사하시는 현상을 “Release”라는 단어로서 표현한다. 그의 사상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성령이 방출된다!”, “성령의 권능이 풀어지다!”이다.
마이크 비클이 하와이의 열방대학에서 했던 “선교와 기도운동의 통합”(The Convergency of the Missions and Prayer Movement)이라는 제목의 강의 내용을 볼 수가 있었다. 그 내용에서 이러한 점들을 많이 보았다. “하나님이 권능을 풀어(방출)놓으시기(releases His power) 위해 사용해 오셨던 가장 중대한 수단은 중보기도이다”. “중보기도는 ... 권능이 풀려(방출)나오는 수단(the means of releasing His power)이다”. “하나님의 권능을 풀어 놓으시는(the central means of releasing God's power)”. “창세기 1장에서 성령을 풀어 놓으셨던 방식처럼(as the way to release the Spirit's power in Genesis 1)”
나는 중보기도와 성령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대부분의 신사도운동가들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거의 이런 식으로 성령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집회에서 사람을 쓰러뜨리며 성령을 어떤 에너지나 “기”를 밀어 넣어주는 듯한 행동이 나타나는 장면들도 다 이런 개념과 상관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도 임직식을 대대적으로 하였던 타드 밴틀리가 플로리다에서 잠시간의 헛된 부흥을 일으킬 때에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그때 그가 일으키는 성령의 놀라운 역사(?)들이 “플로리다 대 방출”(Florida Outpouring)이라는 말로 표현되었었다. Google 검색창에서 “florida healing outpouring”이라는 말을 검색하여 보면 당시의 집회의 실황이 담긴 많은 영상들이 있다. 그런 영상들을 보면 성령의 역사를 “Outfouring” 이나 “Release”로 이해하고 표현하는 그들의 참담한 실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의 하나의 영상을 소개한다. 다음의 영상은 타드 밴틀리에게서 “outpouring”(또는 “released”) 되는 성령(?)이 다른 한국인 2세 채안(안재호)목사 부부에게 “전이”(impartation)되는 모습이다.
성령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가르치고, 실제로 그대로 실행하는 이런 작태들은 도저히 성경과 함께 갈 수가 없고, 성경이 말하는 예수의 영이 아니라 “다른 영”이라고 규정되어야만 한다. 존 스타트를 비롯한 많은 믿음의 대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오스왈드 챔버스의 성령에 대한 가르침이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기를 바란다. 그는 성령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만드는 영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되게 하는 영이고, 마술이나 보이는 기적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거룩한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영이고, 진리로 인도하는 영이고, 십자가를 드러내어 십자가에게로 돌아가게 하는 예수의 영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마음에 와 닿게 잘 가르쳤다.
그런데 마이크 비클과 신사도운동가들이 성령에 대해서 하는 말을 들으면 성령이 마치 어떤 무형의 “힘” 또는 동양의 “기”와 같은 것이라는 착각이 든다. 크리스천 뉴에이지 연구가 콘스탄스 컴비는 프리메이슨, 신지학자, 범신론자 등의 비전문도(밀교도)들에 의하면 “루시퍼”의 또 다른 뜻은 “힘의 신(force god)” 또는 “포스의 신”이라고 설명했다. 뉴에지 사상에서는 하나님이 “믿음의 힘(포스)”을 사용해서 말씀하신 것을 창조(구현)했다고 이해되며 크리스천들도 바로 이 창조적 “힘(포스)”에 접속할 수 있다고 뉴에지 사상은 가르친다고 한다. 이러한 뉴 에지지 사상을 참고하면서 마이크 비클의 성령에 대한 말을 다시 생각해 보니 드디어 이해가 되는 듯 하다. 마이크 비클을 설경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뉴 에이지 사상의 가르침으로 성령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음의 내용은 마이크 비클이 2004년에 쓴 논설인 “기도의 용광로: 다윗 장막의 영으로 하는 하루 24시간”이라는 글에 들어있는 내용의 일부이다. 여기서도 성령에 대해서 성경의 관점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내용들이 나온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뉴 에지 사상의 관점을 가지고 보면 이해가 된다. 참으로 딱하고 한심한 노릇이다.
4) 음성과 예언이 여전히 그를 드라이브 한다
마이크 비클의 사역과 신학과 영성에 관하여 연구하면서 발견한 위험스러운 것 하나를 또 이야기하겠다. 그것은 현재에도 여전히 “음성”을 듣고 있고, 그것이 그의 신앙과 IHOP 전체의 사역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 몇 차례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항상 말하는 성경의 위치와 중요성과 연관된 중요한 사실이다. 지금은 성경이 없던 선지자들의 시대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모든 말씀이 들어있는 성경이 있는 시대이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직통으로 음성을 듣고, 그것을 그의 사역에 반영하고 있다.
아이합의 홈 페이지의 자료실에 가면 “Convergence of Mission and Prayer: IHOP-KC's Role to Serve Others”(기도와 선교운동의 통합: 세상을 섬기기 위한 캔자스시티 IHOP의 역할)이라는 마이크 비클의 강의안이 있다. 이 강의의 첫 시작을 보면 그가 83년 5월에 세계 열방을 향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적인 약속을 받았고, 그리고 2010년 5월에 들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이 시행(release)될 준비가 갖추어졌다고 한다. 이 강의의 중심 내용은 하나님께서 2010년부터 기도운동과 선교운동과 교회개척의 운동을 하나로 통합하고 계신다는 것인데, 처음부터 그가 받은 예언으로 시작한다. 시대가 지나면서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이 이렇게 달라진다는 이런 말을 들으면, 특히 예언이 어떻고 ... 하는 이야기를 보면 더 읽기도 싫다. 그러나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야 하겠기에 대략 흩어보았다.
자신과 IHOP의 선지자들에게 임한 예언과 음성이 중요한 point가 되어있었다. 2004년에 IHOP쪽의 지도자들에게 YWAM(예수전도단)과 관계를 강화하라는 예언이 임했고, 또한 마이크 비클과 로랜 커닝햄에게도 동시에 같은 예언이 임했다고 한다. 1984년에는 마이크 비클이 “내가 저에게 보여 줄 계시가 있다! 밥 존스(선지자)에게 전화하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동시에 밥 존스에게 “그것은 성령의 포도주(the wine of the Spirit)와 함께 10년 이내에 시작될 것이다!”라는 음성을 주셨다고 한다.
마이크 비클과 밥 존스가 받은 예언의 “포도주”(wine)라는 말은 “성령”을 의미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마이크 비클이 “예수님의 첫 사역이 요한복음 2장의 가나의 혼인잔치 포도주와 함께 시작되었고, 신약교회의 공적인 사역도 사도행전 2장 포도주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시대의 기도운동도 포도주와 함께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빈야드 집회들에서는 "술취함" 현상이 그 대표적인 특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마이크 비클은 더욱 주목되는 말을 한다. 자신이 1982년에 카이로에서 들었던 음성, “한 세대 안에 기독교에 대한 표현과 이해를 바꾸겠다!”와 1983년에 들었던 음성, “다윗의 장막의 영으로 24시간 기도하라!”와 1984년에 자신과 밥 존스가 들었던 음성, “그것은 10년 이내에 시작될 것이다!”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된 예언이었다고 한다. 그 세 가지의 예언들이 1994년 토론토에서 크게 일어나 전 세계로 영향을 미친 존 아놋의 토론토 축복(토론토 웃음운동)으로 성취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마이크 비클의 중요한 사역의 전략과 방향에는 항상 예언과 음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지금 현재에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성경과 성경에서 나온 바른 교리와 지배하는 목양이 아니라 들리는 음성과 주위 선지자들이 주는 예언이 그의 목양과 모든 사역을 지배하고 관통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구절들은 적절하게 도용당하고 있다. 이것이 마이크 비클이 사역의 정신이고 철학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고 신사도운동 전반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러므로 마이크 비클이 신사도운동과 상관이 없다는 말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3. IHOP의 중요사역과 신사도운동
이제 IHOP의 중요한 사역들과 신사도운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겠다. 마이크 비클은 가급적 IHOP의 중요한 사역들과 용어들 속에서 신사도운동과 관련된 느낌을 지우기 위해서 애쓰는 것 같다. 그래서 일견하면 IHOP은 신사도운동과 무관한 것 같고 그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1) 사도적 리더쉽
사도라는 말은 신사도운동의 가장 핵심이 되는 용어이다. IHOP과 관련된 논란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이 “사도”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새로이 등장한 사도의 계시에 근거하여 현재의 기독교의 구조를 개혁하려는 운동이 신사도운동인데, IHOP에서도 그런 사도직 소명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한인교회의 목회자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그 일은 엄청난 충격과 파란을 일으키면서 2010년의 여름을 더욱 무덥게 하였다.
그런데 이후에 이 문제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과연 그 예언의 진정한 내용이 “사도”였느나 “사도적”이었느냐 ... 논쟁이 더 치열해졌다. 왜냐하면 마이크 비클이 IHOP은 명사로서의 “사도”가 아닌 형용사로서의 “사도적”인 리더쉽을 육성한다고 하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한인 신문에 실었고, 그 목사님의 퇴진을 반대하는 분들이 그 기사를 100% 활용하면서 “사도”가 아니라 “사도적”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일이 전혀 아니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마이크 비클이 당시에 한 한인 신문에 내 보낸 인터뷰 기사의 내용이다.
“‘사도적’이라는 단어를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 사용한다. 사도 교회 또는 신약 교회의 교리, 삶의 방식을 닮고자 하는 리더십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부지런하고, 헌신적이고, 핍박을 견디고자 하며, 전도와 세계 선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며, 산상수훈의 삶의 방식을 따르고자 하는 리더십을 말한다. 이것이 나의 사도적 리더십에 대한 견해다. 나는 그리스도 지체의 모든 리더들이 예수를 향한 진심어린 헌신, 따라서 사도적 리더십에 속해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IHOP에서 자주 기도하고, 그곳의 선지자들에게서 직통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을 직접 받으신 분은 분명히 사도로 부름을 받았고, 그것이 개인에게만 대단한 일이 아니라 교회도 들림을 받아서 함께 크게 쓰임을 받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교회에도 엄청난 일이라고 설교를 하셨다. 그래서 그 큰 소란이 일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게 만든 IHOP의 마이크 비클은 “사도라고 한 적이 없다. 우리는 사도적인 리더를 키우는 일을 한다! ... 라면서 그 일이 IHOP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이, 마치 그런 예언을 잘못 오해해서 받은 그 한 사람의 문제인 것처럼 비겁하게 발을 빼버렸다.
그리고 이후에 IHOP은 약간의 반전효과를 누리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사람들 사이에 “사도가 아니라 사도적인 사역을 추구하고 사도적인 리더쉽을 육성하고자 한다면 이단은 아니지 않은가?”라는 의구심과 동정론이 어느 정도 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히 말장난이었다. 왜냐하면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초대교회를 역사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오늘날의 모든 교회들이 사도적이다. 사도들의 본을 보인 믿음을 그대로 배우고 따르는 이 시대의 성도들이 다 사도적인 성도들이다. 사도들의 가르침과 정신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 성경을 믿음의 교과서로 채택하여 시행하는 모든 훈련과 선교와 배움이 다 사도적이다.
그런데 성도들이 이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이 갑자기 “사도적”이라는 말을 전면에 내 세웠음으로 좀 혼동하고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 우리들은 사도적이지 못하고 사도적인 것을 욕심내지도 못하는데, 저들은 대범하게 사도적인 것을 추구하고 누리고 있으니 IHOP의 신앙이 우리 교회의 신앙보다 더 고차원적이고 앞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혀 그럴 일이 아니다. IHOP이 정말 사도적인 사역을 추구하고 사도적인 인물을 키우는데 헌신되어 있다면, 그곳에서 감동을 받고 그곳에 자주 드나드는 목회자와 성도로 인하여 우리 보통의 일반 사도적 교회들이 피해를 당하고 소란과 분쟁을 경험할 일이 없다. 그런 현상은 불건전한 집회에 참석하여 감동받고 온 사람들에 의해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일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IHOP에 갔다가 온 사람들 중 일부는 너무 좋았다고 하면서 숨이 가쁘도록 말을 잇는다. 그런 일은 이상한 곳에 가서 은혜(?)를 맛본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흔한 현상이다. IHOP 때문에 일반 사도적 교회들에게 피해가 광범위하게 일어난다는 것은 IHOP이 어떤 불건전한 것을 행하면서 그것을 “사도적”인 것으로 둔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IHOP 때문에 경험하는 광범위한 소란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내가 매우 고심하면서 쓴 글이 아멘넷에 연재되어 있는 “IHOP의 신사도운동: 사도적 리더쉽”이라는 글이다. “사도적”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고심하면서 쓴 글이니 그 내용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① 사도적이란 말의 핵심을 놓쳤다
간략하게 다시 요약하면, 마이크 비클은 사도적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초대교회의 사도들의 삶과 사역에서 찾지 않는다. 그리고 다만 사도들이 그 핵심을 추구하면서 보여준 삶과 사역의 주변적인 요소들을 사도적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사도들은 부지런했고, 헌신적이었고, 핍박을 견디었고, 전도와 세계 선교에 인생과 사역의 초점을 맞추었고,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하신 말씀대로 살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사도들이 무엇을 하면서, 무엇을 위해서 그런 삶을 살았느냐? 이것이 더 본질이다.
사도들은 오직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했다. 그리고 그 복음의 선포로 인하여 탄생하는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그러므로 사도적이라는 말은 곧 “피 묻은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다. 또한 “오직 사도들이 전한 복음으로 목양하여 교회를 그리스도와 일치시켜 하나의 몸으로 세우는 것”이 사도적이라는 말의 참 뜻이다.
성령의 이적이 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은사가 나타나고, 기적이 일어나고... 실제로 그랬다. 그러나 그것은 사도적인 사역의 본질이 아니었다. 사도들의 사상과 가르침과 사역의 진실성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확증하시는 증거였다. 사도들의 사역을 촉진시키기 위해 성령께서 돕는 사역이었다. 그러나 오늘 날 신사도운동가들은 무의미한 기적, 방언, 환상 등이 사도적인 사역의 증거라고 한다. 금이빨을 만들고, 방언이 터지고, 금가루가 휘날리고, 구르고, 뛰고, 히죽거리고 ... 이런 것이 사도적인 목회의 증거이겠는가?
사도적인 사역이란 2000년 전에 세상 떠난 사도들이 마치 지금 나타나서 다시 목회를 하는 것 같은 효과가 나타나도록 사도적인 그 정신과 원리를 그대로 이어서 사역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성령의 능력의 도움을 받아 생생하게 살아서 선포되고 바르게 적용되는 것이 사도적인 사역의 가장 핵심이어야 한다.
IHOP에서 이러한 일을 잘 하면서 사도적인 사역을 하고 사도적인 리더를 육성하고 있다고 하면 아무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성경을 중시하고 바르게 가르쳐왔다면 아무도 IHOP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간 IHOP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수 많은 성경구절들이 IHOP의 사역들과 마이크 비클의 글에서 난무하지만, 제대로 바르게 자리를 잡은 경우는 별로 없다.
사도들이 다시 IHOP에 가보면 혀를 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 하나만 보자! 24/7 중보예배라는 것이 무엇인가? “다윗의 장막의 영으로 24시간 기도하라!” ... 이런 말을 듣고 지금 그러고 있다. 성령이 임하여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법궤이고,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삶의 제사를 드릴 존귀한 제사장들인 우리 성도들을 나무 법궤에 계신 하나님을 섬긴 3000년 전의 제사장들의 사역을 배우게 하고 있다. 그 제사장들처럼 24시간 동안 돌아가면서 저런 행위를 하는 것을 성질 급한 베드로 사도가 보면 절대로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제일 마음이 온유하고 사랑이 많았던 요한 사도라고 해도 결코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IHOP은 이제 더 이상 사도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성명서를 낼 때에 서명하지 않을 진짜 사도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② 모든 교회들은 사도적 리더쉽 아래 있으라 한다
IHOP의 한국지부의 홈 페이지에의 IHOP을 소개하는 페이지에는 다음의 내용이 극히 강조되고 있다. “IHOP은 각 지역 교회들을 존중한다. IHOP은 지역 교회에 근거를 두고 있다. IHOP이 지역교회의 대체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모든 기도의 집과 선교 본부는 반드시 그 지역에 있는 교회들과 사도적 리더쉽과 연결이 되어야 한다”, “모든 기도의 집과 선교 본부는 반드시 그 지역에 있는 사도적 리더쉽 아래 있어야 한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다시 2000년 전의 초대교회로 거슬러 올라가려는 것일까? 그 당시에는 자체 건물을 소유하지 않고 성도의 가옥을 중심으로 모이는 작은 교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의 집에 있는 교회”(롬 16:5, 고전 16:19, 골 4:15)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그 교회들을 인도하는 사람은 주로 그 가정의 가장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에게 뚜렷하게 일치된 호칭은 당시에 없었지만, 그들은 오늘 날의 목사의 역할을 감당했던 특별한 성도들이었다. 그 지도자들과 교회들이 사도적 권위 아래에 있었었다. 사도들의 편지와 가르침이 그들의 목양의 원천이었다. 그들은 다양한 루트를 통하여 사도들로부터 교회를 목양할 수 있는 자원을 공급받고 있었다. 때로는 사도가 어떤 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모든 성도들을 한 곳에 모아 직접 말씀을 가르치기도 했다(행 20:9). 그 당시의 교회들과 교회들의 지도자들은 이렇게 사도적 리더쉽의 영향 아래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사도들이 성경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후에는 달라졌다. 디모데전서 3:1-13절과 디도서 1:5-9절에 근거하여 세워지는 장로(감독)와 집사가 각 지역 교회의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사도적 리더쉽에 종속되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사도들이 남긴 성경의 가르침과 권위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다만 교회간의 일치와 이단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오늘 날의 교단과 노회제도에 해당되는 조직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이러한 원리와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데, 갑자기 “사도”나 “사도적”인 사람이 다시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들의 권위와 영향력 아래에 교회들이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바로 신사도운동가들이다. “사도”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자들은 막가는 신사도 매파들이고, “사도적”이라고 약간 돌려서 말하는 자들은 부드러운 비둘파들이다. 마이크 비클은 비둘기파인 셈이다. 어쩌면 정체를 감추는 노련한 여우일 것이다. 이제 사도들의 우산은 없다. 오직 성경의 우산이 있을 뿐이다.
2) 선지자와 예언
IHOP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신사도 운동과 관련된 사안이 그곳의 선지자들과 그들의 예언이다. 신사도운동에서 가장 중심적인 일들은 사도와 연관되어 있고, 그 다음에는 선지자이다. IHOP은 사도에 관해서는 “사도적”이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비켜가겠다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러나 선지자에 대해서는 정직하고 담대하다. 선지자와 그들의 예언과는 함께 한 시간이 너무 길어서 부끄러움도, 문제도 느끼지를 못하기 때문인 모양이다. 80년대 초부터 마이크 비클의 교회에 선지자가 얼마나 많았으면 한 신문은 IHOP에 대한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In the late 1980s and early '90s, when his Kansas City Fellowship church was home to the Kansas City Prophets, a group of men whose claims of visions from God still stir controversy worldwide”(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KCF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꿈과 비젼을 받음으로 세계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게 한 선지자들의 집이었던 그 당시에).
IHOP이 사도적 리더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약간 후퇴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말하는 사도성의 핵심은 성경을 강조하지 않고 결국 사람을 말하고 있으니 신사도운동의 사도사상과 일치한다. 그것이 IHOP이 신사도운동을 한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리고 선지자의 예언도 마찬가지이다. 피터 와그너는 90년대에 사도보다 조금 일찍 출현한 선지자들의 예언운동이 중보기도 운동과 더불어 사도직을 출범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일으키신 운동이었다고 했다.
이는 선지자들의 예언 자체가 신사도운동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의미이다. 선지자라는 호칭 자체가 신사도운동의 증상이고, 그들의 예언이라는 것 자체가 신사도운동의 수단이다. 그러므로 IHOP이 선지자라는 용어를 다른 경우처럼 “선지자적”이라고 돌려 말하지도 않고 그대로 “선지자”라고 하는 자체가 이미 IHOP이 신사도운동 단체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성도들의 귀에 은밀히 들려지는 예언들은 신사도운동을 확산하는 바람이다.
① 지금 선지자는 없다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지자와 예언이 오늘 날의 기독교 안에서 존재할 이유가 없음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다. 그러면 신사도운동과 그 사상 위에 서 있는 IHOP의 선지자들과 그들의 예언의 허구와 거짓됨이 명백해 진다. 선지자와 예언을 지금도 주장하는 분들은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 등에 선지자라는 호칭(행 15:32, 21:10, 고전 12:28, 엡 4:11)이 있고, 예언도 권장(고전 14:1, 14:39)되었다는 것을 주장하신다. 성경에 나왔으니 지금도 그대로 인정하고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논의하는 것은 매우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미 이 점에 “신사도 운동의 사도와 선지자”, “IHOP의 신사도운동: 선지자들”이라는 글에서 충분히 다루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간략하게 다시 한 번 요약하여 보겠다.
선지자와 예언에 대해서 가장 많이 언급한 사도는 바울이다. 그래서 선지자와 예언이 오늘 날에도 여전하다는 이론을 주장하는 분들은 위에서 바울 사도가 말한 위의 성경구절들을 줄기차게 제시하면서 마치 대질심문하듯이 따지신다. 그런데 그 분들이 무시하는 사실이 한 가지가 있다. 사도시대 이후 신약 교회의 직분제도에서 선지자와 선지자의 예언의 자리를 종결시켜 버린 사람도 바로 바울사도라는 사실이다.
바울 사도는 신약 교회의 직분의 골격과 원리를 자신의 두 직계 후배 목회자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명시하였다. 디모데전서 3:1-13절과 디도서 1:5-9절이다. 여기에 선지자나 선지자의 예언이나 사도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없다. 바울이 언급한 “장로”와 “감독”은 같은 직분이었다. 에베소서 4:11절의 사도와 선지자의 직분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 의해서 사람에게 직접 주어진 것과는 달리 이들은 지역교회에서 훈련되어 목회자의 성도들에 의해서 선출되었다. 바울은 이들을 선출하는데 어떤 신앙적 기준이 적용되어야 할 것인지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장로와 감독 사이에는 어떠한 기능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증거는 사도행전 20:17-28절과 디도서 1:5-7절이다. 이 본문에서 장로와 감독이라는 단어가 교차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이 말한 감독이 오늘 감리교회나 성공회의 감독(Bishop)은 아니다. 바울이 성경을 기록 할 때에는 감독이라는 호칭이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다른 지역 교회들과 목회자들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진 상위 계급으로서의 감독은 A.D 110년 무렵에 시리아 안디옥에서 처음 등장했다. 감독(장로)과 집사, 이 두 가지 직분만으로 시작한 초대교회의 직분제도는 2세기부터 집사와 장로(감목), 그리고 다른 장로들과 감독들을 다스리는 특별한 감독(Bishop), 이렇게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이러한 제도가 정착되는 데에는 이후 많은 시간이 더 걸렸다. 이렇게 완성된 성경과 함께 신약 교회의 다스림과 직분의 체계가 발전되면서 에베소서 4:11절의 사도와 선지자는 종결되었고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교회의 조직과 질서의 체계를 이야기할 때에 반드시 디모데전서 3:1-13절과 디도서 1:5-9절에서 출발해야 한다. 절대로 다시 에베소서 4:11절로 돌아가서 사도, 선지자, 목사, 교사, 복음전하는 자의 시스탬을 원시 오중직의 형태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② 초대교회의 예언은 양육하는 말씀이었다
③ 요즘 선지자들의 예언이 심각한 문제들을 초래한다
④ 어니 그루웬 리포트에 나타난 캔자스시티 선지자들의 거짓된 예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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