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하시는 하나님

[스크랩] 선교를 해야 하는 이유

하늘강가 2017. 1. 25. 22:07

선교를 해야 하는 이유



 

 

서론

어느 신학생이 자기가 후원하는 한 선교사에게 선교비를 송금하기 위해서 은행에 갔다. 은행 직원이 선교사에게 보내는 송금인줄 알고 자기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나라도 아직 복음화 되지 않았는데 꼭 다른 나라까지 나가서 선교 할 필요가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국내의 농촌 전도에만 힘쓰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럴듯한 말 같이 들린다. 어떤 교회에서는 선교에 대해서 교회가 여유가 있을 때 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교회가 자립하고 나서 재정을 쓰고 남는 것이 있다면 그때 선교하겠다고 하는 목사도 있다.

이런 선교를 반대하는 많은 의견들을 극복하며 어떻게 확신을 가지고 선교할 수 있는가? 이를 위해 선교를 꼭 해야만 하는가 하는 분명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 분명한 근거가 있을 때에 선교를 확신 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근거가 확실치 않다면 우리가 생명을 바쳐 많은 것을 희생해 가면서 선교에 동참할 필요는 없다. 한 생애를 바칠 만큼 분명한 근거를 찾을 때 우리는 선교의 많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선교와 선교사

1. 선교란 무엇인가?

1.1 말의 개념

선교를 칭하는 미션(Mission)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사용한 말로 파견, 사명, 위임의 뜻을 가졌다(주1). 이것은 정치적으로 정부가 외교관을 보낼 때 사용하는 단어로써 정치적인 업무 수행을 위하여 특수한 임무를 주어 보내는 것을 뜻한다. 종교적으로는 사명과 위임을 주어 보낸다는 뜻이다. 선교사는 교회가 복음의 확장을 위해 사명을 위임받아 보냄을 받은 자이다

1.2 광의의 개념

교회가 세상에 보냄을 받아서 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빛과 소금의 역할로 전도와 사회봉사를 총칭해서 사용하는 개념이다.

1.3 협의의 개념

문화적, 지역적 장벽을 넘어서 복음이 필요한 지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직접 또는 간접으로 전하여 교회를 세우고 양육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교의 목표는 영혼 구원을 통한 교회 개척과 재생산하는 교회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1.4 그 밖의 선교의 개념들(주2)

선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선교는 영원한 구속을 주는 것이다.

선교는 악한 마귀를 내쫓는 것이다.

선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이다.

선교는 선포이다(주의 이름,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은혜의 순간).

선교는 제자 삼는 것이다.

선교는 활동이다.

선교는 복합적 성장이다.

선교는 해방이다.

선교는 축하이다.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말한다.

2. 선교사란 누구인가?

선교사란 다른 문화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복음 전파와 관련된 전도 활동에 종사하고 그 일의 완성을 위해 교회에 의해 파송을 받은 자이다(주3). 위의 정의를 좀 더 자세히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2.1 선교사는 다른 문화권에 가는 것이다.

2.2 선교사가 하는 선교의 내용은 복음 전도다.

2.3 복음 전도와 관련된 전도활동을 하는 자다.

2.4 복음의 완성을 위해 일하는 자다.

2.5 교회에 의해서 파송을 받은 자다.

선교와 선교사의 중심은 하나님이다. 사람이 선교를 말하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여 사람의 행위로 나타난다. 다만 사람의 반응이 선교에 대해서 부정적이기도 하고 반대로 긍정적이기도 하다. 선교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도 다양하다. 분명한 것은 그 하나님의 행위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다.

선교의 동기(주4)

선교를 왜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동기가 어디 있는가를 알 필요가 있다. 불순한 동기와 순수한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1. 불순한 동기

1.1 제국주의의 앞잡이로써의 동기가 있다.

선교의 동기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기 위한 정부의 앞잡이가 될 수 있다. 과거에 로마 가톨릭이 이런 일을 했고 개신교 선교사들도 의도는 그렇지 않았지만 결국은 그런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1.2 문화적 동기가 있다.

세계 문명에 공헌하기 위하여 선교를 하는 것이다. 선교사가 순수한 복음을 전하기보다는 자국 문화를 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가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복음의 씨를 가지고 가서 그곳 문화의 토양에 복음을 심는 것이 선교이다.

1.3 상업적 동기가 있다.

직장이나 돈을 벌기 위하여 가는 사람이 있다. 리빙스턴은 그의 원래 의도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국의 상업을 위한 길을 연 경우가 되었다. 지금도 많은 선교사들이 복음과 상관없이 사업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복음을 빙자한 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복음과 사업의 목표와 우선성이 어디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1.4 식민 교회적 동기가 있다.

자기 교회 이름으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가는 사람들이다. 토착 교회를 세우는 것이 선교의 목표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교회를 세우려고 한다. 선교지의 시골 교회에 한국 글씨로 된 교회 간판을 볼 수 있는데, 한글 간판과 현지 교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한국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것은 불순한 동기이다.

1.5 개인적 욕심 혹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선교한다.

자신의 명예나 자녀교육 혹은 언어 습득을 위한 매개체로 선교를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에서는 자녀 교육의 어려움으로 선교지에 나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선교부는 이런 사람을 분류하기 위한 작업을 아주 엄격하게 하고 있다. 한국 선교사들도 영어를 습득하기 위해서 선교사로 나가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일자리가 없어서 선교나 해 볼까 라는 마음으로 선교사가 되는 경우도 찾아 볼 수 있다. 신학교 졸업생들은 많아지고 한국 교회는 한정된 상황에서 자리가 없으니 선교나 하자라는 식으로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서 특별한 일자리가 없고 또한 전공도 불문명한데 선교하겠다고 나서는 젊은이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선교가 아니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여쭈어 보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다’라고 말한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이 전문인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한다. 물론 그분들이 선교의 소명을 받아 그 귀중한 자리에 동참하는 것은 귀한 일이다. 그러나 만의 하나라도 한국에서는 할 것이 없어서 선교를 한다면 크나큰 문제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선교에도 좀 발을 들여놓고 그 가능성을 한번쯤 타진해 보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말해서 한국 사회에서 할 일이 없으면서 소명을 받았다는 핑계(?)로 선교 주위를 맴도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선교에 동참하면서 우리에게 이런 불순한 동기가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이런 동기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오히려 선교를 포기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현명한 결정을 하는 것이다.

2. 순수한 동기

2.1 지상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고전1:17. 고전9:16. 갈2:7, 롬1:14).

주어진 명령에는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 명령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는 순종하는 자이다. 선교는 주님이 주신 지상 대 명령이다. 만약 주님의 지상 명령이 필수 불가결한 것이 아니라면 선교에 동참하지 않아도 된다.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에 동참해야 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지상 명령이기 때문에 그렇다.

2.2 선교는 하나님의 속성이기에 하는 것이다(사랑과 긍휼과 자비; 엡2:1-10, 욘, 살전2:8).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믿는 신앙의 중심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에 천국과 이 세상의 모든 선한 것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사랑 없이는 우리가 존재할 수 없다. 사랑이 넘치면 그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진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깨달았다면 그 사랑이 넘쳐 나갈 것이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치라”고 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정말 넘쳐 난다면 그 사랑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 사랑을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심판과 지옥의 필연성을 보여준다. 우리가 만약 선교하지 않으면 지옥은 계속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지금도 산다. 그 긍휼이 없이는 하루도 살수 없다. 그 긍휼을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을 매일 구할 것이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을 이해하고 나타내도록 선교에 동참할 것이다.

2.3 주님의 영광을 선포하기 위해서다(살후3:1, 빌2:11, 롬11:36).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선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인간에게 자신을 찬양하기를 원하신다. 선교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회개하는 것이요, 의롭게 사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진다. 주님의 영광은 선교를 통해서 이 세상에 반드시 드러나야 한다.

2.4 주님의 재림과 관계해서 하나님의 왕국이 이루어져야 한다(종말론적인 동기).

“ 나라이 임하옵시며”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서 선교한다. 나의 왕국이나 개교회의 왕국이 아닌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서 우리는 선교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 왕국, 내 교회, 내 교단의 왕국을 위해서 살기도 하고 선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서 산다. 하나님의 왕국을 위한다는 것은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왕국을 위해 살았지만, 하나님께는 구약시대 때부터 전 세계가 하나님의 왕국이었다. 하나님은 전 세계에 대한 관심을 태초부터 가지셨다. 오늘날도 우리가 속한 교회 왕국을 위해서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재림 하실 때를 기다리면서 하나님 왕국의 형성과 완성을 위해서 선교하는 것이다.

2.5 인간의 상태 때문에 선교한다.

구원받지 못한 인간은 죄악으로 인해 영혼이 죽어갈 뿐만 아니라 그의 삶도 비참한 가운데 있다. 목적도 없이 살뿐 아니라 살아 있다 하더라도 죽어 있는 상태로 산다. 우리는 죄악의 결과로 일어나는 인간의 비참한 상황과 세상을 볼 때 선교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신앙이 있다면 어찌 매일 이들의 상태를 보면서 선교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6 개인 소명 때문에 선교에 동참한다.

하나님은 선교를 위해서 지금도 각 개인을 부르고 계신다. 각자를 부르고 계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서 선교해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민감한 사람들은 지금 그 부르심에 응답할 것이다. 개인 소명은 선교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2.7 시간의 긴박성 때문에 선교한다.

선교는 시간이 한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긴박성 때문에 하는 것이다. 긴박성이란 우리 각 개인이 언제까지 생명이 지속될지 모른다는 의미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우리의 생명이기에 머뭇거리지 말고 신속하게 선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생명이 내일 끝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오늘 안하면 내일 우리의 생명을 취하실지도 모르는 긴박성을 가지고 선교해야 한다.

현재 우리가 속한 교회도 언제까지 존재할 것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한국 교회는 교인 감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IMF가 일어난 후 한국 교회는 선교에 주춤하고 있다. 교회는 세속화 되어가고 있으며, 세속화의 물결은 핍박의 물결보다 더 심하게 일어난다. 서구교회가 그런 경험이 있기에 한국교회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 세속화 되는 교회는 선교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교회가 언제까지 선교할 수 있을까? 만약 선교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선교의 촛대를 다른 곳으로 옮기실 수도 있다.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선교의 주자를 바꿀 수도 있다. 선교를 언제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느긋한 마음으로 있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긴박성은 종말론적인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른다는 긴박성 때문에 긴박한 가운데 선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상황을 보면서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음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주님이 재림하시기 이전의 모든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다. 주님은 도적같이 갑자기 오신다고 했다. 교회와 개인이 선교를 게을리 한 상태에서 주님을 맞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순수한 동기로 선교에 참여해야 한다.

선교를 왜 해야 하는가?

많은 교회가 선교에 대해서 그 당위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선교를 거부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선교를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선교를 한다고 해도 자선 사업으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한다. 혹은 교회 성장을 위해 필요해서 선교하는 경우도 있다.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성경에서 선교에 대해서 어떻게 주장하는가를 살펴본다.

1. 선교를 거부하는 입장

거부하는 사람들은 다음의 논리로 선교를 거부하고 있다.

1.1 우리가 사는 지역도 아직 복음화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나라까지 가서 선교 한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

1.2 너무 많은 돈을 낭비한다. 우리가 잘 살아야 하는데 해외에 너무 많은 송금을 한다. 선교사 한 사람을 파송하기 위해서 많은 돈이 들어가는 돈은 낭비다.

1.3 거의 모든 지역에 교회가 이미 존재하기에 굳이 선교사를 파송할 필요가 없다.

1.4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땅 끝까지 가라고 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즉 우리나라부터 시작해야지 세계까지 나갈 시기는 아니다.

2. 일반적인 선교의 당위성

이런 거부하는 입장을 토대로 선교의 당위성을 정리한다.

2.1 하나님의 관점을 생각해야 한다.

선교를 거부하는 입장들은 하나님 편에서보다는 사람 편에서 생각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온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하나님은 특정한 민족이나 특정한 지역을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시지 않으셨다.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고 모든 민족을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다.

2.2 거부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맞는다면 지금까지 선교했던 선교사님들은 모두가 잘못되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리빙스턴, 윌리암 케리, 허드슨 테일러, 아도니람 드슨, 그리고 우리나라에 복음을 들고 온 언더우드 같은 선교사들의 선교 행위가 잘못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류를 위해 오신 최초의 선교사인 예수님도 이 세상에 잘못 오신 것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했던 그 선교사들은 자기 나라가 완전히 복음화 되지 않았음에도 복음을 들고 왔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복음을 듣고 영생 가운데 살 수 있겠는가?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영생이 없었을 것이다.

2.3 일정 지역부터 차례대로 복음화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우리나라의 전 지역이 복음화 될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한 나라가 완전히 복음화 된 예는 거의 없다. 자기 가정 식구들을 복음화 시키지 못한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전도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지금 있는 곳에서부터 먼저 선교를 시작해야 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2.4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가령 한 사람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일 좋은 것을 발명해서 그것을 온 세계에 판다면 그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아무도 그 사람을 탓할 사람은 없다. 오히려 훌륭하다고 존경해야 한다. 술이나 담배 같은 사람에게 해로운 것도 전 세계로 팔려고 나가는 것을 볼 때 복음을 들고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상품은 복음이다. 가장 좋은 상품인 복음을 수출하지 않는다는 것은 복음의 가치를 다 알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코카콜라를 광고하는 사람들은 세계에서 이미 코카콜라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상품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선전하고 있다. 이 회사의 논리는 죽어가는 사람보다는 태어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고 새로 태어나는 사람들을 위해서 계속해서 광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선교도 새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기에 계속 되어져야 한다.

2.5 선교를 했던 사람들이 선교를 거부했던 사람들처럼 생각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한다면 선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선교를 거부했다면 우리는 당연히 지옥으로 갔을 것이다. 복음을 먼저 가진 사람들이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복음을 가지고 영생을 누리며 산다.

2.6 사도행전 1장 8절의 예루살렘부터 땅 끝까지라는 말은 예루살렘부터 시작해서 땅 끝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으로 동시에 가야 한다고 원문(헬라어)은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은 자신의 가족이나 민족이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나라에 가서 선교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2.7 ‘외화 낭비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볼 때 정부는 가난한 나라를 위해서 구제금과 구제품을 공짜로 보낸다. 우리 정부는 지진, 해일, 태풍으로 어려움을 당한 나라에 복구를 지원할 사람들을 보낸다. 이라크 전쟁에는 군대까지 파병하였다. 과거 우리나라는 러시아에 수십억 달러를 빌려주고 되돌려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하물며 복음을 위해 하는 선교 비용을 외화 낭비라고 할 수 있겠는가!

2.8 다른 사람을 돕는 구제는 부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한다. 구제 단체에서는 전 구제금 총액의 80%가 30대 미만의 경제 자립도가 낮은 사람들이 기부한다고 통계를 제시한다. 하물며 교회가 선교하는 것은 자립해서 하는 것만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어렵고 미 자립한 교회들이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가 많다. 반대로 자립한 교회도 선교 하지 않는 교회가 있다. 자립해서 선교하겠다는 것은 이런 현실에 비추어 볼 때 하나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 교회가 자립할 것인가? 완전히 자립된 교회는 많지 않다. 교회의 재정과 상황은 항상 유동적이고 안정적이지 못하며 충분하지 않다. 선교는 우선순위의 문제이지 자립도와는 별 관계없다. 성경에서는 가난한 교회가 가난한 또 다른 교회를 도왔다는 기록이 있다. 자립하지 못해서 선교하지 못하고 다음에 하겠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 하다. 자립하지 못했다는 것이 선교를 중단해야 할 이유는 아니다.

2.9 세상의 상황을 보면 아직도 복음화 되지 않은 나라가 많을 뿐 아니라 복음은 들어갔지만 아직도 교회가 미 자립한 어린 교회가 세상에는 존재한다. 이 세상이 지금 선교사를 부르고 있고 교회에 대하여 선교를 요청하고 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의 젖을 먹고 어머니의 보살핌 가운데 자라나야 한다. 누군가 돌보아 주지 않는 어린 아이는 스스로 자랄 수가 없다. 현재 세계는 아직도 토착 교회가 없는 곳이 많이 있다. 토착 교회가 존재하며, 기독교 인구가 많은 나라라고 할지라도 누군가 도와주어야 할 만큼 약하고 어린 교회가 대부분이다. 그런 곳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교의 성경적 근거

이 세상이 아닌 성경은 선교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성경은 선교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경이 말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뜻이요, 그분이 원하시는 일이다.

1. 구약에 나타난 선교 사상

1.1 창조 : 선교는 창세기 1장부터 계시록 마지막 장까지의 주제다.

1.1.1 하나님은 우주적인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좁은 마음을 가진 하나님이 아니시다. 우리만의 하나님도 아니시다. 하나님은 전 우주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전 우주의 주인이시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선교를 통해서 온 세계에 나타나야 하고 모든 민족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선교해야 하는 이유를 천지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1.1.2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사도행전17장 26절에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라는 말씀이 있다. 온 인류는 한 혈통이라는 말씀이다. 우리나라만이 단일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전 세계가 아담을 통한 한 혈통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아담으로 인해 죄인 된 것같이 모든 사람이 아담을 통해서 하나의 지체이고 한 혈통이고 가족이다. 모든 민족이 동일하고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1.1.3 하나님은 모든 민족을 통치하신다.

우리의 왕은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왕이신 것을 인정한다면 온 세계가 다 하나님의 것이요, 온 세계는 우리가 선교해야 할 관심 대상이 되어야 한다. 시편 24편에 ‘세상의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모든 민족이 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 민족도 다 하나님을 믿어야만 하는 것이다.

1.2 타락

모두가 타락했다면 모두가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이 필요하다. 죄로 인해 인류가 우상 숭배를 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이 타락한 인간이 구속받기를 바라고 계신다. 하나님만이 인류의 주인이시고, 유일한 왕이시며, 구세주시다. 신명기4장39절에는 “너는 오늘날 상천하지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은 없는 줄 결심하여” 라는 말씀이 있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선교의 행위를 통해서 성취되어야 할 일이다.

1.3 이스라엘의 선택

하나님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이스라엘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전 세계 모든 인류를 부르시기 위한 한 방법이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는 통로가 되게 하셨다.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이 모든 인류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구약 성경의 선교 방법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모든 인류가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1.4 계약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다면 다른 민족들도 언젠가는 그 계약 속에 포함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는 특권이다. 그 특권에는 책임이 있다. 죽어가는 이방 민족에 대해 구원의 방주 역할을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계약에 대한 책임, 이것이 곧 선교다.

1.5 선지서

선지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해서만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한 구원이라고 반복해서 언급한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주 만 여호와 인줄을 알게 하소서”(사37:20).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온 세계가 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데 있다.

1.6 시편

시편 99절1절에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라고 했고, 시편47절 1절에는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찌어다”고 했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백이다.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편 기자는 이렇게 외친 것이다. ‘주의 구원과 도를 온 땅과 만민 중에 알리소서’ 라고 노래한다. 온 세계가 하나님의 팔이 닿는 곳이 되도록 이스라엘은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시야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열방의 구원이 일어날 것을 예언한 것이 구약이다. 열방은 영적으로 중생한 이스라엘에게 겸손히 돌아올 것이며, 주님의 산에서 경배하게 될 것이다. 이 구원 사건은 우주적인 것으로 모든 피조물이 참여해야 한다.

2. 신약에 나타난 선교 사상.

2.1 구약에는 메시야가 오시면 온 세상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사상으로 가득 차 있다. 예수님은 이런 메시야로 오셨다. “때가 차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고” 라고 말씀한다(막1:15).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고,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마10 23, 마16;28, 막9:1). 그 메시야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누가복음 2장 32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방에 비취는 빛이다”라고 하셨다(참고, 마5:13-14, 요3:16, 8:11, 마26:13, 마24:14).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은 자들은 이방의 빛이 되어야 한다.

2.2 하나님의 왕국과 선교

하나님의 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왕국은 복음을 통한 그리스도안에서만 이루어진다. 왕국을 위해서 중생이 필요하다. 중생을 위해 선교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왕국이 온 땅에 전파되는 것이 선교다.

2.3 예수님의 제자 선택과 훈련

예수님께서 제자를 선택하신 가장 크고도 유일한 이유는 온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였다.

2.4 십자가와 부활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다. 만약 우리가 선교를 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무시하는 것이 되고 그 십자가의 위대함을 축소하는 것이 된다. 부활은 마귀와 죄의 세력으로부터 승리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그 승리를 경험해야 한다. 이 승리는 우리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 온 세계가 경험해야 한다.

2.5 실재적인 성경구절들( 지상 명령)

마태복음28장18-20절. 마가복음16장14-20절. 누가복음24장44-53절. 요한복음 20장21-23절. 위 성경 구절들은 지상 명령의 구절들이요, 예수님의 유언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유언은 지상에서의 많은 말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구절이다. 우리는 다른 말씀도 지켜야 하지만 예수님의 유언은 선택의 여지없이 지켜야 할 말씀이다.

2.6 사도행전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셨다. 성령이 오심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게 되었다. 주님은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라”고 하셨다(행1:8). 그러나 성령이 강림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흩어져 땅 끝까지 가지 않았다. 사도행전 7장과 9장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초대교회를 흩으신 장면이 나온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핍박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강제로 흩어지게 하셨다. 복음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면 핍박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을 교훈해 주는 것이 사도행전의 선교다.

2.7 서신서

서신서는 선교지에서 쓰여 진 책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 너무나 가까이 놓여 있었다. 이미 선교 사역은 서신서와 바울이 같이 가고 있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고 하더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이다’(고전 9:16)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한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다’(고전9:16)라고 했다. 바울은 선교사였고, 그 선교사역으로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게 되었다.

결론

선교는 교회가 해야 하는 한 가지 선택 사항이 아니라 교회가 해야 할 가장 핵심적이고, 유일한 사명이다. 지상 명령과 몇몇 선교에 대한 구절들에만 선교가 국한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사상이 선교다. 성경적으로 살아가는 사람,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선교하지 않을 수 없다. 선교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비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졌다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성경이 선교에 모든 것을 지향하고 있으며, 선교는 성경의 중심 주제이기 때문이다(눅24:44-48). 혹자는 모든 신학은 선교적이어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선교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자연스러운 삶이어야 한다.

Case Study

C교회는 장년 출석이 3,000명쯤 되는 교회이다. 몇몇 선교사를 협력으로 돕기는 했지만 직접 선교사를 파송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선교의 비전이 있었던 부목사를 훈련해서 선교사로 파송했다. 첫 선교사를 파송하기 전에 담임 목사가 선교사와 함께 직접 선교지를 답사하는 열심을 보였고 교회에서 선교 후원금 전액을 감당하겠다고 했다. 얼마 동안은 선교사를 잘 후원하고 좋은 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교회에 일부 교인들과 담임 목사 간에 갈등의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이유는 교회 선교비가 투명하게 쓰여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인들은 이것을 항의하며 장기간 담임 목사와 싸우게 되었다. 그러던 중 선교사는 안식년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안식년 동안 교회는 두 교회로 갈라졌다. 갈라져간 교회와 선교사와는 특별한 관계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선교사는 전혀 이 문제에 대해서 관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 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교회는 선교 헌금을 줄이기로 했다. 선교 헌금을 이전 금액의 10%만을 하게 되었다. 선교사는 갑자기 줄어든 선교비로 인해 많은 경제적인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교회는 처음 약속과는 달리 선교사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고 선교사와 선교에 대해서 거의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토의를 위한 질문

1. C 교회가 선교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2. 교회가 선교비를 중단하게 될 때 선교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 있을까?

3. 우리 주위에 있는 교회가 선교를 잘 하다가 중도에서 그만 두는 교회가 있다면 이유는 무엇이며, 교회가 선교를 중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4. 우리는 무슨 이유 때문에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교회는 어떤 동기로 선교에 동참하고 있는가?

주1) 채은수. “선교학 총론” 기독지혜사. 1991. P.37

주2) 위의 책 P.P 42-48

주3) 이 태웅. GMTC 선교학 강의안. 2003.

주4) 위의 강의안 참고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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