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하신 하나님

[스크랩] 다윈의 회개

하늘강가 2014. 9. 5. 20:55

다윈의 회개

 

 

  
   
다윈은 무신론을 주장하기 위해 진화론을 주창한 것은 아니다.

다윈은 영국 캠브리지 대학 신학과를 졸업하고 성직자가 되려고 했다.

당시, 다윈과 같은 양가집 자녀는 의사나 군인, 목사가 되는 길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윈은 처음에는 의사를 지망했으나 도중에서 단념하고, 군인은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부친의 권고도 있어 신학과에 입학했다.

공부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신학에 대해서도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

다윈은 대학에서의 공부는 그럭저럭 했지만, 식물학 강의에는 열심히 귀를 귀울였다.

[신대륙 적도지대 여행기](훔볼트)를 읽고 아프리카 북서쪽 카나리아제도의 이야기에 열중하기도 했다.

다윈은 드디어 해군의 측량함 비글호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고 [종의 기원]을 쓰고 생물진화를 주창했다.

그는 최초의 생명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창조주에 대한 믿음 위에서 생물의 기원을 설명하려고 했다.

당시의 신학교에서는 창세기 1장의 기술은 그대로 믿어지고 있었다.

다윈은 진화라는 발상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조화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의 기원] 초판의 권말에 이렇게 기록했다.

'생명은 최초에 하나님에 의해 2,3 혹은 하나의 형태로 불어넣어졌다.'

초판은 즉각 전세계에 굉장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독일의 유물론자를 비롯해, 영국의 생리학자로 진화론추종자였던 토머스.헉슬리 등으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던 것이다.

성공에 취한 다윈은 재판부터는 '하나님'이라는 말을 삭제해버렸다.

그러던 중 다윈 자신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다윈의 생애를 기록한 소책자를 보면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다윈은 20년만에 남미 남단에 위치한 디에라델훼고를 방문했다.

20년전, 그가 거기에 와서 미개한 토인들을 보았을 때, 그는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그 토인들은 원숭이로부터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의 존재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년만에 다시 찾은 그들은 예전과 완전히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기독교 선교사들의 목숨 건 전도에 의해 그들은 고도의 문명인으로 변해, 예절바른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그때까지 다윈은 선교 활동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원주민들이 위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이 주창한 진화론이 훗날 부정되어도 좋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 방문 이래 다윈은 매년, 선교 활동을 지원하는 선교후원금을 보냈다.

Charles Robert Darwin(1805-1882)

이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데,

다윈이 임종을 맞이했을 때, 자기를 방문한 여류작가에게

자신은 무신론자였다고 고백한 후 이렇게 말했다.

"저것(진화론)은 젊은 시절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미숙한 이론입니다."

그리고 그는 성경의 가르침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해 알고 있으면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생애 최후의 몇분 간, 오랫동안 부정해왔던 성경 가운데서 그의 안식처를 찾았다.

다윈의 회심이 조금만 빨랐더라면 진화론의 영향도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진화론은 언젠가는 세상에 나타났을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다윈이 한 일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혹 그가 생의 종점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 사실로 인하여 주님을 찬양해야 할 것이다.

([레므란트]誌에서)

<다윈의 부인 엠마. 경건한 크리스쳔이었다.>

- 1998.12.31.

 

다윈이 임종을 맞이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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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win's Final Recantation (다윈의 마지막 회개)

Lady Hope, who visited Charles Darwin during his last days on earth, has the following to say regarding his views on evolution towards the end of his life:

It was on a glorious Autumn afternoon when I was asked to go and sit with Charles Darwin.

He was almost bedridden for some months before he died.

Propped up with pillows, his features seemed to be lit up with pleasure as I entered the room.

He waved his hand towards the window as he pointed out the beautiful sunset seen beyond, while in the other he held an open Bible which he was always studying.

What are you reading now? I asked.

Hebrews, he answered, still Hebrews.

The Royal Book, I call it.

Then he placed his fingers on certain passages and commented upon them.

I made some allusions to the strong opinions expressed by many unbelievers on the history of the creation and then their treatment of the earlier chapters of the book of Genesis.

He seemed distressed, his fingers twitched nervously and a look of agony came across his face as he said,

I was a young man with unformed ideas.

나는 젊었었고 내 생각은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습니다.

I threw out queries, suggestions, wondering all the time over everything.

나는 언제나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지고, 제안을 했습니다.

And to my astonishment the ideas took like wildfire.

그런데 놀랍게도 그 생각은 들불과 같이 퍼져나갔습니다.

People made a religion of them.

세상사람들은 내 아이디어를 가지고 (진화론이라고 하는) 하나의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Then he paused and after a few more sentences on the holiness of God and the grandeur of this Book, looking at the Bible which he was holding tenderly at the time, he said:

I have a summer house in the garden which holds about thirty people.

It is over there (pointing through the open window).

I want you very much to speak here.

I know you read the Bible in the villages.

Tomorrow afternoon I should like the servants on the place, some tenants and a few neighbors to gather there.

Will you speak to them?

What shall I speak about? I asked.

Christ Jesus, he replied in a clear emphatic voice, adding in a lower tone, and His salvation.

Is not that the best theme?

And then I want you to sing some hymns with them.

You lead on your small instrument, do you not?

The look of brightness on his face I shall never forget, for he added, If you take the meeting at 3 o'clock this window will be opened and you will know that I am joining with the singing.

Quoted from the Bombay Guardian, 25th March 1916, by Prof. H. Enoch in Evolution or Creation (Union of Evangelical Students of India, P.O. Box 486, Madras 7, India, 1966), pp. 165-167.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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