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신 주님은혜

잔느 귀용의 생애

하늘강가 2017. 6. 6. 18:54

잔느귀용의 생애와 영성  

생애


귀용 부인은 1648년4월18일, 프랑스의 루이 14세 때 부유한 귀족가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이름은 잔느 마리 보비에 드 라 모트이다. 귀용 부인을 핍박하는 데 끝까지 앞장 섰던 사람은 바로 그녀의 의붓 오빠인 라 모트 신부였다.

종교적 심성이 남달리 깊었던 잔느는 종교적 의식이나 고행으로는 참된 하나님의 실체에 이르지 못하자 더욱 심한 종교적 갈등을 겪었으며,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하나님을 갈구한다. 그런 가운데 수녀가 되고자 하는 바람도 부모님의 반대로 꺾이고,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남성과의 결혼도 친척 관계라는 이유로 반대에 부딪힌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파리의 화려한 사교계에 눈을 돌렸고, 뛰어난 미모를 지녔던 탓에 많은 남성들의 시선을 끈다.

잔느는 부모님의 강권으로 열여섯의 나이에 스물두 살이나 연상인 남성과 결혼을 한다. 그는 부유한 사업주이지만 병약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늘 병치레를 했고 시어머니와 하녀의 학대는 극심했다.

그 고통스런 생활 중에 귀용 부인은 하나님을 더욱 절실히 갈망하게 되고, 마침내 어느 프란치스코 수사를 통해서 바로 자신 안에 계신 하나님의 현존을 깨닫고 줄곧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살아간다. 어느 성인의 중보나 공식적인 기도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간구하는 기도를 귀용은 하나님으로부터 배워 나간다.

12년의 고통스런 결혼 생활 끝에 늘 병치레를 하던 남편이 죽고, 귀용 부인은 28세의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다. 이때 그녀는 십자가를 지고 철저히 주님을 따르는 생활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역을 맡기시기 위하여 그녀를 불러내시는 시기였다. 그녀는 제네바로 가라는 내적 음성을 듣는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의 삶은 박해와 오해, 비난과 수치, 투옥으로 점철된다.
수차례의 혹독한 감옥 생활에도 기적같이 살아서 출감한 귀용 부인은 그 후에도 영적 갈망 때문에 계속해서 찾아드는 사람드에게 옛 자아의 못박힘과 성화, 자아 부인과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생활, 성령 안에서의 기도와 그리스도의 내적 생명에 대해 가르쳤다.
주님을 그토록 사랑한 여인, 귀용은 바스티유에서 출옥한 지 십오년 후

1717년6월9일, 주님께서 맡기신 지상의 사역을 마치고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70세의 나이로 본향에 돌아갔다.



** 제 1 부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서 아무것도 취하지 않으시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 자신의 위대한 일을 건축하신다는 것을 충분히 믿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절망이나 놀라움에서 어느 정도는 보호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우기 위해 허무십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 거룩한 성전을 세우시기 위해 먼저 인간의 기술과 힘으로 이룩해 놓은 헛되고 거만한 모든 체계들을 완전히 파괴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참혹한 폐허 위에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새롭게 건축하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신비로운 비밀의 깊이를 깨달을 수 있다면, 어린 아이에게는 보이시고, 자기가 하나님의 상담자인 양 착각하는 육신에 속한 자들이나 감추어진 거룩한 지혜에 이미 도달하기라도 한 것처럼 가장하는 이 세상의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에게는 숨기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참된 지혜를 깨닫게 되는 것은 오직 모든 것에 대해서 죽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오직 그분 안에서만 존재할 때입니다. 교만으로 쌓은 것을 허무시고 파괴된 것을 세우시는 것은 그분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나는 하나님 음성 듣는 것을 무척 좋아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애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는 수두를 앓아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있었고, 사람들은 내 곁에 가까이 오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거의 아무도 보지 못한 채 혼자 지냈습니다. 그때 나는 방에서 성경책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고 암기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성경을 읽으며 지냈습니다.

수녀원에서의 생활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그 수녀원에 머물고 있던 큰 소녀들이 나를 무척 괴롭혔습니다. 나는 무시당하고 먹는 음식에도 문제가 있어서 무척 야위었습니다.

분노는 교만의 딸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어떠한 부분에서도 화를 내도록 자신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완전히 죽은 영혼에게서는 아무런 분노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나는 기도와 독서를 위해 하루 종일 침묵하기도 했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나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책과 쟌느 드 샹딸 부인의 생애 대해 읽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영적인 기도가 어떤 것인지 배웠습니다.
기도는 오랫동안 내게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나는 기도의 은사를 달라고 하나님께 꾸준히 그리고 전심으로 간구 했습니다.

기도는 사탄이 침입할 수 없는 요새입니다. 사탄은 그 요새 주위를 포위하고 공격하며, 소란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충실하고 굳게 위치를 지키는 한 사탄은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하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기도입니다. 영으로 하는 기도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어떤 연구의 결과나 상상력을 발휘하는 이성적인 노력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도울 수 없는 약하고 무력한 사람을 의지하거나 탓하지 말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며 그분 앞에 여러분의 고통을 쏟아 놓으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자비를 구하십시오. 무엇보다도 그분을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십시오.

기도를 중도에 멈추었을 때, 나는 그 샘에서 생수 마시는 것을 그친 셈이었습니다. 마치 나는 지나가는 사람마다 마구 짓밟고 도둑질할 수 있도록 울타리가 무너진 포도밭 같았습니다.

나는 하나님 안에서 발견했던 것을 사람들에게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나를 하나님은 그대로 내버려두셨습니다. 내가 먼저 그분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내가 끔찍한 구렁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그냥 놔두셨던 주님의 뜻은 내가 기도 안에서 다시 그분께 가까이 갈 필요성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마음이 주님께 다시 돌아섰을 때 주님은 저보다 더 빠르게 저를 맞으러 나오셨습니다. 게으름은 하나님 은혜의 불꽃을 내 안에서 거의 꺼져 가게 했고, 기도 없는 무덤덤한 상태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물론 겉에서 보기에는 경건하게 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생활에 있어서 예전보다도 더욱 위장된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허영심이 마음에 자리잡았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많은 시간을 거울 앞에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커다란 쾌감을 느꼈기에 똑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옹호했습니다. 나는 과장된 내용, 특히 로맨틱한 소설을 읽기 좋아했습니다. 욕망을 채월 줄 그 무엇이 있을까 하는 바람 때문에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싶어했고, 그런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커졌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그 풍성한 자비로 종종 저를 찾아오셔서 제 마음을 두드리셨습니다. 저는 가끔 너무도 쓰라린 슬픔에 젖어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주님의 은밀한 임재를 기뻐하던 때와는 너무도 다른 저 자신의 상태를 보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내 눈물은 소용없었고 슬픔은 헛되었습니다. 혼자서는 이런 비참한 상태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고 나를 건져 줄 수 있는 자비로운 능력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내게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기도를 다시 하기 위해서 노력할수록 더 깊이 가라앉을 뿐이었고, 이런 헛된 시도를 할 때마다 나는 더 큰 무력함을 느끼며 괴로워했습니다. 나는 빠져 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 속에 있었습니다.

사탄은 기도하는 사람들에 대해 매우 무자비합니다. 기도야말로 자기 먹이를 빼앗는 무기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고행은 하게 내버려둡니다. 고행을 즐기는 사람이나 실행하는 사람들을 전혀 박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 기도 생활을 실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즉시 십자가를 짊어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형태의 핍박과 경멸은 바로 이런 생활을 위해 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매일 소리내어 드리는 기도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고, 종종 교회에 가서 울며 기도했고 나의 회심을 보장해 달라고 성모님께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나는 아름다움을 과시하면서 나 자신을 드러내고 자존심을 세워 나갔습니다. 이런 와중에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녀가 되고 싶었던 내가 왜 결혼을 했을까? 어떤 운명이기에 이러한 벼락을 맞은 걸까?’
결혼식 후, 남편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 곳이 바로 나의 초상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댁에서는 누구도 내 말을 듣지 않았고 오히려 반박하면서 내 결점만 들추어내려 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를 야단쳤습니다. 시어머니는 매사에 나를 반대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었습니다. 나를 괴롭힐 심산으로 내게 굴욕적인 일을 시켰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을 위해서 이 사람들을 내게 허락하셨습니다.

시어머니는 내 앞에서 친정 집을 비난하고 부모님에 대해 모욕적인 말을 자주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내가 누군가에 의해 바꿔치기 된 아기였을 것이라면서 내게 악령이 들렸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은 내가 방으로 올 자유도 없이 하루 종일 시어머니 방에 머물러 있게 하였습니다.

내 고통을 더 한층 심하게 하려는 듯, 시어머니는 자기의 완전한 심복이었던 하녀를 내게 붙여 놓았습니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감시를 피할 길이 없었던 나는 이 모든 것을 인내로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나 종종 성급하게 말이 튀어나왔고 그 말은 곧 내게 주어지는 쓰라린 십자가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내가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하인들로 하여금 내가 나가서 무엇을 했는지 낱낱이 말하게 했습니다.

이런 무거운 십자가가 나를 하나님께 향하도록 해주었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의 죄를 통회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 동안 살아오면서 행했던 모든 것을 정직하게 고백하며 참회를 통해서 내 삶을 바꾸려고 시도했습니다. 취미를 들였던 로맨틱한 소설 읽기도 그만두었습니다. 나는 결혼 전만 해도 종종 복음서를 읽으며 그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기뻐했었는데 지나친 소설 읽기가 그것을 방해했습니다. 소설에 대한 흥미를 줄이고 다른 책을 읽으려면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나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하나님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점차 그분의 사랑이 내 마음에 되살아나고 다른 것을 다 몰아내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내 안에는 아직도 견딜 수 없는 허영심과 자기 만족감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내게 가장 슬프고도 끈질긴 죄로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스스로에 대해서 탄식하며 시간을 보냈고, 슬픔은 날마다 더 심해졌습니다. 종종 내게 복종해야 할 집안의 하녀들마저도 나를 부당하게 대했는데,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충격적인 강풍이 나의 생기 발랄함을 강타했기 때문에 나는 털 깎인 양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나는 도와 달라고 주님께 애원했고 그분은 나의 피난처가 되셨습니다. 저는 차라리 단순하고 무식한 벙어리가 되게 해달라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그런 혹독한 감금 상태에서 그들 곁을 감히 떠나지 못하고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나는 끊임없이 다가오는 고난 속에서 모든 분노를 꾹꾹 누르려 애썼습니다.

내 결혼 생활은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노예 생활과 다름없었습니다. 나는 열심히 인내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내 본성은 돌발적으로 튀어나와 침묵하고자 했던 결심을 무너뜨리곤 했습니다.
나는 고통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시어머니는 내가 이 집에 오기 전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는데, 내가 들어오자 집안이 불운해졌다며 나를 비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인내로 무장하게 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했고 그분을 슬프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당시에 나는 하루에 두 번 기도하는 것을 의무적으로 실행했습니다.

망명한 어떤 아가씨가 친정 아버지 집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진실로 경건하고 내면적으로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녀가 경험하고 있는 기도의 단순성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모범적인 삶은 말보다도 더 많은 것을 내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표정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커다란 기쁨의 흔적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인위적인 생각으로 도달하려고 애쓰는 것은 별효과가 없었습니다. 나는 내 노력으로 얻으려 했지만, 사실 그러한 기도는 그 모든 노력을 멈추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끊임없이 묵상하고 생각하고, 그분께 소리 내어 기도하고 기뻐하고자 애썼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으로도 진실하게 하나님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오직 단순성 안에서만 경험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성 프란치스코회에 있는 경건한 사람을 친정집으로 보내셨습니다. 그 사제는 한동안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가 왜 침묵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기도할 때 느끼는 어려움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저하지 않고 먼저 꺼냈습니다.

“부인, 그것은 부인께서 안에 있는 것을 밖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 안에서 찾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의 말은 어둠을 격파하듯 내 마음 깊숙이 박혔습니다. 그 충격은 감미롭게 느껴졌습니다. 그의 말은 내가 지난 수년 동안 찾았던 것이 무엇인지 떠오르게 했고 내 마음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해주었습니다.

“주님, 주님은 거기 제 마음속에 계셨고, 오직 제가 단순한 마음으로 주님의 임재를 깨닫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마치 행복이 제 노력에 달려 있기라도 한 것처럼 삶을 다 짊어진 채 저는 얼마나 주님을 찾으려고 동분서주했는지요!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에 있지 않고■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주님은 저의 왕이시고 제 마음은 주님의 왕국이며, 주님은 거기서 주권자로서 통치하시고 주님의 거룩하신 뜻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내 영혼 안에 계신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어떤 개념이나 생각의 적용에 의한 것이 아니고 가장 달콤한 것에 실제로 사로잡힌 것이었습니다.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나는 아가서에 있는 이 말씀을 체험했습니다. 내 영혼 안에서 향기름 내음을 느꼈고 그것은 건강에 좋은 발삼향같이 단번에 내 모든 상처를 치유했습니다. 저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나는 너무 갑자기 변해 다른 사람들은 물론 나 자신조차도 이를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이제 문제가 되었던 결점이나 거리낌을 더 이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들은 마치 거대한 불 속에 타 버리듯 사라졌습니다.

나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할 때면 몇 시간이 마치 몇 분처럼 지나갔습니다. 열정이 나를 머추게 하지 않았습니다. 온갖 상상력이나 생각이 배제된 상태에서 오직 기쁨에 사로잡혀 기도했습니다. 그것은 머리로 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결한 상태에서 어떤 말이나 행동도 없이 내 영혼은 집중했습니다. 이제 내 마음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었습니다. 어떤 이기적인 동기나 사랑의 이유 없이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사라졌습니다.

환상은 영혼이 열등한 능력에 속한 것으로서 주님과 참된 연합을 이루게 하지 못합니다. 영혼은 환상에 마음을 두거나 의지해서는 안되며 그것들에 의해 방해받아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받는 은총과 은사를 주신 분이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지 은총과 은사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미래에 이루어질 사건에 대한 계시는 매우 위험스럽습니다. 사탄은 인간에게 잘못된 사상, 헛된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합니다. 미래에 대한 사건에 마음을 두게 함으로써 자아를 죽이는 것을 방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자신을 포기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막습니다.

완전한 기쁨은 오직 꾸밈없는 단순한 믿음에 의해서만 생겨납니다. 하나님의 은사에 마음을 두거나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사에 집착한다면 자기를 충분히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은사에 마음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려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제 시선을 고정시키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러한 영혼은 하나님께 더욱 빨리 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엄청난 고난을 만날 것입니다. 특히 그들이 하나님 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충실히 포기할 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결하고 무조건적인 사랑, 오직 하나님의 관심을 위해서만 전진하려는 강렬한 마음을 제 안에 심어 놓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고난도 기꺼이 받고자 하는 강렬한 갈망을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어쩔 수 없이 짊어졌던 십자가는 이제 저의 기쁨이 되었고 제 기쁨의 특별한 대상이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좋아했던 것은 거절하고, 싫어하고 혐오하던 것들을 취했습니다. 매우 까다로웠던 식성도 원만해져서 거의 아무것이나 다 먹게 되었습니다.

나는 다만 주권자께서 전적으로 통치하시도록 나 자신을 맡겼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연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 자체가 부적합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강하게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외의 다른 것은 거의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신부님의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께 강하게 사로잡혀서 눈도 뜰 수 없었고 설교를 제대로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내적이 영 안으로 너무도 깊이 침잠했기 때문에 나는 거의 소리 내어 기도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저는 주님을 위해 고통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제게는 주님을 위해 고통당하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런 즐거움이 없습니다.”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채 주님께 나를 맡겼습니다.

나는 친구들과의 모든 만남을 끊었습니다. 오락, 댄스 파티, 불필요한 나들이, 그 밖에 즐기기 위한 모든 것들과 작별했습니다. 심지어 이년 동안 머리 손질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이 모든 것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이제 유일한 기쁨은 시간을 내어 오직 저의 유일한 사랑, 하나님과만 단둘이 있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즐거움은 제게 고통이었습니다. 저는 주님의 임재를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임재는 하나님에 대해서 명상하는 사고의 힘이나 두뇌 작용인 상상력을 통해서가 아니고 의지 안에서 계속 주입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의지에 제 의지의 하나 됨,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는 너무도 달콤하고 강력합니다. 저는 아주 사소한 잘못에 대해서까지도 엄격하고 냉엄하게 역사하시는 주님의 감미로운 능력에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엄격하게 지켜 나간다 해도 금욕은 내적 욕망을 정복하지 못합니다. 내적인 힘을 파괴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일반적으로 어떤 욕망이나 쓴뿌리에서 오는 쓰라린 감정이 없어질 때가지 내적 감각이 즐거워하는 것을 온전히 거부하고 끝까지 인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해야 할 것은 오직 자아에 대해 전적으로 죽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아주 깊은 마음속의 기도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육체적 욕구의 죽음은 굴욕을 받아들이면서 잠잠히 침잠해야만 완전하게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잠잠히 머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육체적 욕구를 정복하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입니다.
“사랑이 십자가를 쉽게 감당하도록 만듭니다.”

헛된 노력으로 지친 가련한 영혼들이여! 여러분의 마음 안에서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모든 문제는 곧 해결될 것입니다. 십자가가 커지는 만큼 여러분의 기쁨도 커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을 너무도 밝게 비추고 아주 은밀한 샘처럼 스며들었기에 가장 작은 흠까지도 다 드러났습니다. 말을 하려다가도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즉시 마음에 지적되면 입을 다물고 침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침묵하는 즉시 내 결함은 덮어졌습니다.

내 의지를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에 그분을 향한 내 관심은 쉼 없이 지속되었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그분을 기다렸고 그분은 끊임없이 나를 살피시며 섭리대로 인도하셨기에 나는 다른 모든 것을잊었습니다. 내 자신도 잊었기에 자신을 관찰할 수가 없었습니다. 혹 내가 스스로를 관찰하려고 하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생각이 즉시 사라졌습니다.
나는 여러 생각들을 구별하지 못한 채 단 한 가지 목적에만 사로잡혀 형언할 수 없는 평안에 잠겼습니다. 나를 완전히 사로잡고 있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서 전혀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일수록 얼마나 더 엄격하게 징계하시는지요! 그 징계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정결케 하려는 영혼에 대해서는 아주 작은 결점일지라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그 느낌은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해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불을 보내십니다. 그 불은 엄청난 고통을 주며 죄가 깨끗해질 때까지 안에서 타오릅니다. 그것은 마치 어긋난 뼈가 제 자리에 맞춰질 때까지 겪는 고통과 같습니다. 그 고통은 너무나 커서, 죄로 인해 슬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심정이 들고, 그 고문을 견디느니 차라리 육체가 찢어지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위로를 얻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망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을 사용하려 하십니다. 때문에 고통을 사용할 줄 아는 것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고통을 없애거나 더하려고 하지 말고 그 고통이 다할 때까지 견뎌야 합니다. 애쓰지 말고 그냥 고통을 견디십시오. 위로의 수단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실패할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여전히 내게 냉랭하고 모욕적으로 대했으나 나는 그것을 묵묵히 견디었습니다. 아무런 대항을 하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나로 하여금 다른 모든 일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눈물을 참아야 했습니다. 시댁 식구를 위해 나를 낮추어 가며 천하고 궂은 일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그들의 호의를 사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화났을 때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어도 그들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심지어 앞에서 말씀 드렸던 그 하녀에게도 그렇게 했습니다.
나는 그 하녀 때문에 큰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녀는 내가 사과함으로 인해 더욱 오만해졌습니다.

나는 침묵을 지키며 주님 안으로 깊이 잠겼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마음속 깊이 침묵하며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는 혼자인 듯 느껴졌습니다. 필요한 경우 외에는 다른 사람들과 거의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바울이 한 말을 그대로 경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말씀의 능력은 너무도 강력하고 너무도 달콤하고 은밀해서 그것을 한꺼번에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위해 지불해야 했던 대가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선하신 단 한 분,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갈망이 너무도 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곤고한 피조물에게 자신을 기꺼이 내어 주시는 분입니다.

친구를 만나서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 안의 주님과 너무도 깊이 연합되어 다른 어떤 것에도 주의를 기울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주 가까이서 이야기해도 잘 듣지 못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그들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내 마음에 있는 단 한 가지 때문에 어떠한 일에도 마음을 두지 못했습니다. 혼자 있을 때 나는 자주 일손을 멈추곤 했습니다.

나는 온 마음이 주님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식사를 했어도 무엇을 먹었는지 몰랐습니다. 마음 깊숙한 곳까지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거의 아무것도 보거나 듣지를 못했습니다.

기도는 십자가를 짊어지게끔 했습니다. 이렇듯 기도는 십자가를 요구했고 십자가는 다시 기도로 보상되었습니다. 기도와 십자가는 내 마음과 생활 속에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선물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내 삶에 모신 순간부터 십자가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하지 못하도록 방해받았던 그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기도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카드 놀이를 하면서도 나를 살폈습니다. 내가 난로가로 몸을 돌리면 일하고 있는지 기도하고 있는지 더욱 유심히 살폈습니다. 내가 기도하고 있는 것을 어쩌다 발견하면 몇 시간 동안이나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하나님, 주님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저들이 전쟁을 벌이나 그럴수록 제 사랑은 더욱 커져 갑니다. 저들이 기도하는 것을 막는 동안 주님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침묵 속으로 저를 이끄셨습니다. 저들이 주님에게서 저를 떼어놓으려고 애쓰는 만큼 주님은 저를 가까이 이끄셨습니다. 그 사랑의 불꽃은 환하게 밝혀지고 그것은 무엇으로도 끌 수 없었습니다.”

나의 영혼 안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무런 동기와 이유 없이 그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내 마음을 사로잡으며 내가 가장 사랑했던 유일한 대상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참된 무지는 어떤 박사들의 학문보다도 더욱 배울 만한 것입니다.

지금 나는 하나님이 아닌 어떤 것에서도 만족이나 기쁨을 느끼지 못합니다. 내게 가장 큰 고통은 고통이 부족하여 고통을 목말라하며 갈망하는 상태라고 생각했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존중과 경외심은 내 안에서 점점 더 커졌습니다.

나는 아주 은밀한 소망이 하나 생겼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 뜻대로 나 자신을 전적으로 바치고자 하는 갈망이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든지, 제가 어찌 주님께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발 저를 그냥 놔두지 마옵소서!”

나는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반복해서 소리 내 기도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입술을 열고 말을 하는 순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나를 강하게 사로잡아 오히려 나는 깊은 침묵과 형언할 수 없는 평안 속에 잠겨 들었습니다. 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여전히 소용없었습니다. 이런 상태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점점 더 커지고 격력하게 흘러 넘칠수록 내 안에서는 소리 없는 기도가 계속되었습니다.

종종 주님께서는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아버지처럼 나를 다루셨고, 내가 무심결에 실수를 저질었을 때도 나를 안아 주셨습니다. 또한 나의 불경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것은 바로 내가 넘어졌을 때 주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그 달콤한 사랑이었습니다. 주님의 그 따뜻한 사랑이 다가올수록 나는 주님에게서 조금만 떨어져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잠깐 주님께 무심해도 주님은 곧 나를 받으실 준비가 되어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내게는 말씀하지 않으신다고 하지만 그분은 큰소리로 부르고 계십니다.
내 가슴에는 소리 없이 말하는 언어가 있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이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영혼 안에 있는 소리 없는 표현입니다.

그분은 말씀하시는 것을 멈추지 않으시는 것처럼 활동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맡겨진 영혼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해 본 사람은 지상 최대의 경배와 경외심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의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임재를 삼 개월이 넘도록 내게서 거둬 가셨고, 나는 하나님의 진노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게 최고의 순수함과 최고의 완전함을 요구하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정죄하신 것을 높이 평가했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미덕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여행하던 중 사고로 큰 위험에 빠졌습니다. 사람들은 공포에 몸을 떨었습니다. 나는 본성이 부패한 자이기는 했지만 하나님께 철저하게 굴복했으므로 아무런 탈출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너무나 무서워했으나 나는 하나님께서 잡아 주시므로 평온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오히려 생명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은근히 기쁘기까지 했습니다.

비참한 허영심은 여전히 컸지만 하나님께 대한 사랑 역시 컸기에, 과오를 범하고 난 후 나는 그분께 사랑받기보다는 차라리 매맞기를 원했습니다.
내 마음은 비탄과 사랑으로 가득 찼습니다. 내가 그분을 거스를 때마다 그분은 내게 그토록 무한한 은혜를 부어 주셨기에 나는 생살을 찔리는 것같이 아팠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죄를 지어 하나님을 거스르는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충분히 경험했으면서도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가 훨씬 더 큰 죄인입니다.

“주님, 주님의 은혜를 거역한, 이토록 비참한 피조물인 제게 어떻게 그런 사랑을 주실 수 있는지요! 저는 주님의 임재에서 가장 강하게 사랑을 느꼈습니다.”

나는 영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다만 무가치할 뿐입니다.
주님께 죄악과 나약함과 비천함 외에는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음에도 주님은 영원한 결혼 관계로서 나와 결합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기를 매순간 기다리면서 나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고 희생하는 마음으로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나를 완전히 맡겼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은혜로 붙드셨습니다. 그때 나는 고통을 잊을 만큼 커다란 평안을 누렸습니다.
나는 조금도 남김없이 자아를 하나님께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고 단련하시기 위해서 잠시 우리를 내버려두기도 하십니다. 성경 말씀에 있듯이 “죽음의 문까지 데려가셨다가 다시 건지시는 분은 하나님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육체의 고통 속에서도 내 영혼은 설명할 수 없는 만족감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나의 고통스러움이나 외모의 아름다움을 읽게 된 것에 대해서 누누에게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오히려 잃음으로써 얻은 내적 자유에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이 나의 커다란 죄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막내 아들이 천연두에 걸려 죽었지만 헌신의 마음이 나를 강하게 잡고 있었기에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때 내게 가장 큰 복이라 생각하는 죽음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굳건해졌고 수없이 많은 고통에 연단받았습니다. 나는 사랑으로 희생하신 그분께 끊임없이 드려지는 제물일 뿐이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고통받는 것 외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무런 저항 없이 주님의 거룩하신 처분에 저 자신을 완전히 항복시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 미모를 다시 회복하고 천연두로 얽은 자국을 메꾸게 하기 위해서 포마드를 보냈습니다. 나는 모든 처방을 옆으로 치워 두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공기는 얽은 자국의 상처를 더욱 심하게 만듭니다. 나는 교만으로 기세등등했던 곳에서 굴욕으로 승리하기 위하여 천연두의 흉터 자국이 더욱 심해져 발갛게 되었을 때 거리에 나가 나 자신을 노출시켰습니다. 남편은 내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누렸던 즐거움을 잃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만이 저를 변함없이 대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외적으로 제 십자가가 더 무거워짐에 비례해서 제게 마음의 은혜를 배나 더 크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나는 더욱 작아지고 싶었고 본래 아무거소 아니듯이 그렇게 되고 싶었습니다. 나는 갖가지 어려운 상황속에서 인내로 그 모든 것을 견디었습니다.
친정 아버지는 나를 지극히 사랑하고 나 역시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내가 겪는 고통을 아버지에게 말한 적은 없습니다.

남편은 내가 허락된 기도 시간(30분)을 조금이라도 넘기면 매우 화를 냈습니다. 때때로 나는 기도하지 못하는 것이 몹시 고통스럽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백은 그분들이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종종 기도할 시간을 얻기 위해 조급해 했고 그것이 남편을 불쾌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실수는 결혼 생활 초기에 더 자주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내 마음의 성전에서 기도했고 더 이상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한 모퉁이에 서서 하나님을 생각할 때면, 나는 어떠한 힘 때문에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눈도 뜨지 못하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도 모르는 채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고 두려운 것도 없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에 동요가 없었습니다.
내 마음은 중심에 있는 주님 외에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새벽 네시에 몰래 일어나 침대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느 때는 기도하다가 졸기도 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내 안에서 더욱 강력해져 갔습니다. 이 충만한 임재의 느낌은 너무도 강해서 나는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매우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모든 걱정과 고통을 잊었습니다.

그분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을 때는 그분의 임재가 결코 다시는 되돌아올 것 같지 않아 보였고, 그분이 물러가신 것은 내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되어 위로받을 길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한 상태가 겪어야 할 필수 과정이라는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나는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강하게 사랑했더라면 내게 모든 것이 쉬웠을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자아와 우리가 갖고 있는 관심, 명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그것을 완전히 등한시하게 하며 하나님 뜻만을 존중하게 만듭니다.

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정당화시키지 않고 침묵하였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과 나에 대한 모든 생각과 비난 등, 하나님과의 우정외에는 어떤 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나 자신을 변호할 때면 나는 언제나 실패했고, 내적이든 외적이든 오히려 새로운 고통만 더 초래할 뿐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어떤 방식으로든 저를 벌하시되 제게서 십자가를 거둬 가지는 마십시오”라고 울부짖었습니다.

나는 가난한 이들처럼 옷을 입었습니다. 내 마음은 모든 감각적인 즐거움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십자가는 내게 너무도 달콤했기 때문에 사실 육체에 가해지는 모든 고통은 거센 불을 끄려고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만이 십자가를 통해 자아를 죽이실 수 있습니다. 일시적으로나마 편하게 천국을 누리는 복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저는 다른 것을 갈망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는 침묵의 길, 제 안에 있는 모든 천성적인 것이 깨어짐으로 주님과 연합하여 제 감각과 식욕과 의지, 그 모든 것이 자아에 대해서 죽고 완전히 주님 안에서 살게 해주십시오!”

나는 하나님과 더 깊이, 더 지속적으로 연합할 수 있었고 그 연합은 항상 단순하면서도 더욱 친근했습니다. 하나님의 의지와 하나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직 주님의 의지만 있을 뿐 내 의지란 따로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갈망도 욕구도 없고 오직 유일한 대상인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만을 바랄 뿐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두 개의 악기가 조화를 이루며 연주하듯 내 의지가 주님의 의지와 연합되는 것입니다.

남편과 함께 짧은 여행을 떠났다가 강에 빠져 죽을 상황에 처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면 물에 빠져 죽는 것도 상당히 만족스러웠을 것입니다. 자신을 의지하여 살려고 발버둥치느니 하나님을 신뢰하며 죽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의 모든 것을 잃어 가는 상태에서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시기 위해 수녀님의 도움까지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파괴된 것을 다시 세우길 기뻐하시고 세워진 것을 다시 파괴하길 즐겨하십니다.

우리는 자아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동생은 나를 극도로 무례하게 대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조금도 동요가 없었습니다. 내 평안은 너무도 깊었기에 아무것도 나를 흔들지 못했습니다.

이 즈음에 나는 완전히 모든 것을 잃은 상태로 거의 7년이란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치 느브갓네살 왕처럼 짐승들 사이에서 살도록 버려진 것 같았습니다. 공허하고 어둡고 무력한 상태는 내가 그 당시까지 겪었던 시련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내 기도가 아무리 메마르고 아무런 결실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효력이 있고 헛되지 않다는 것을 체험하던 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나 바라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고난에 대해서도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더욱더 순종하며 자신을 포기하고 그분께 우리를 내맡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도하시도록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자신의 뜻대로 인도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 부름받은 영혼들이 아주 작은 위로를 좇고 은사를 양분으로 삼아 그 위로 안에 머물러 만족을 느끼며 자신의 삶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고 여러분 자아의 죽음을 통해서만 그분을 소유하길 갈망합니다. 무엇인가 되기를 추구하지 말고 가장 심오한 무( )로 깊이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나는 가끔 모든 피조물이 힘을 모아 나를 대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의 죄와 새로운 죄의 무게에 짓눌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고, 나 자신이 지옥을 위해 계획된 희생물로 여겨졌습니다. 눈물이 내 음료수였고 슬픔이 내 음식이었습니다.

나는 이 상황들을 인내로 견디었습니다. 내가 그처럼 고통당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느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중요한 모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다 거둬 가셨고 하나님마저도 내게서 멀어지셨습니다.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고 그토록 깊은 슬픔의 상태에서 하나님마저 떠나시고 홀로 버려졌습니다.

나는 자주 앓아 누웠고 죽음의 위험에까지도 이르렀지만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비난들을 적어 편지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절망과 비탄 속에 있던 어느 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나는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했습니다. 내 연약함 안에서만 그분을 영광스럽게 해 드립니다.

나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 하나님의 은사까지도 내려놓는 내적인 영혼의 본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나는 오직 주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주님 아닌 다른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알기 원했습니다. 내 작은 골방이 유일한 안식처였습니다.

내가 겪은 비참함을 이루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나를 가장 심하게 괴롭힌 것 하나는 이상할 정도로 어리석은 내 상상으로 인해 전혀 안식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끔찍하게 느껴졌습니다. 최소한이라도 하나님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하길 원했습니다. 비록 나 자신이 부서진 희생물이라 할지라도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분을 섬기고 싶었습니다.

“제가 전에 즐겼던 모든 것은 다만 하나님의 은사인 평안이었지만 이제는 평안의 하나님을 받았고 소유했습니다.”
내 상상력은 안정되어 이제는 별문제가 없었습니다. 나의 청결한 생각과 순전한 마음에 나 자신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나 자신의 비참함과 무능력과 무성( )을 깨달을수록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계획에 맞게 나를 깨뜨리고 낮추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영 안에서 침묵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의 도움을 다 잃고서야 비로소 순전하게 하나님만의 것이 된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서 모든 것이 제거됨으로써 가능했습니다. 모든 은사와 도움을 잃었을 때 저는 그것을 주신분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로 살아가며 그것이 가장 은혜로운 것이고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련한 사람들이여! 만일 여러분이 기뻐하고 있는 귀한 은사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그리고 은사에 마음을 뺏겨 제자리에 멈춰 서서 참된 안식에 이르지 못한 채 하나님께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정말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만으로 충만함이란 결국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완전히 무관심해졌고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었기에 내 뜻은 전부 없어진 듯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주어진 길로 인도받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무런 존재가 아닐수록 오히려 그분의 계획에 더욱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엇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안내자이셨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임을 전보다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고통과 격노의 폭풍우 한가운데서도 완전한 평온을 느꼈고 냉혹한 포로 상태에서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자유를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기 전에 내 감옥 생활이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나를 묶어 놓은 쇠사슬을 사랑합니다.
인내는 내 것이 아니라 나의 생명이신 그분의 것입니다.
내가 전적으로 포기하며 내 모든 일을 맡겨야 할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 제 2 부


지속적인 기도와 겸손함으로 생활했습니다.
나는 잠든 상태에서조차 그분께 사로잡혀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만일 내 이야기 중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먼저 자신을 죽게 하십시오.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훨씬 쉬울 것입니다.

완전히 죽어 버린 의지는 자연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모든 인간적인 성향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만으로 그분을 향하게 됩니다. 그분을 향하는 의지는 어떤 것에도 제한받지 않고 그 자체로 단순하고 평범하게 그리고 날마다 무한히 더 강해집니다.
하나님에게로 강하게 이끄시는 영혼의 분리는 자아가 죽을 때까지는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영혼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할 때까지 나를 가까이 끌어당기셨습니다.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6:22)
마치 평화의 강 속에 잠긴 것 같았습니다. 기도는 끝이 없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을 막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자고 있으나 나의 심장은 깨어 있도다!”
잠조차도 기도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가난과 상실과 무( )의 복됨이여! 이것들은 인간의 한정적인 테두리와 제한을 벗어나 광대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 안에서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자기애를 통해서는 아무것도 소유하려 하지 않았을 때 저는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가난하고 벌거벗기우고 모든 것을 빼앗기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싶은 내 깊은 소망이 성취될 기회인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을 선택한 것입니다.

어느 날 밤, 매우 공포스러운 괴물 같은 것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내 영혼은 평온하고 침착한 상태에서 안식하고 있었기에 사탄은 그 후 더 이상 그런 식으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자 사탄은 그것을 포기하고, 더 이상 그런 식으로는 직접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오랫동안 엎드린 채 주님의 매를 모두 받아 들이겠다고 전심으로 소원했습니다.
나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모든 일을 조용히 처리했습니다.
“하나님 뜻이라면, 그것에 만족하며 핍박당할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 외에는 아무것도 사랑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게 아무런 변명 없이 그 모든 것을 감수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채 평온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주님의 뜻을 발견할 때마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그분의 부르심에 항상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 영혼은 이런 격렬한 폭풍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완전히 맡길 수 있었고 매우 흡족했습니다. 만일 영혼이 자신에 대해 연약하고도 어리석은 연민을 갖지 않고 하나님의 정화 작업에 자신을 전적으로 굴복시키고 맡길 만큼 용기가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도 신속하게 정화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혼란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자기애에서 옵니다.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않아야만 용기를 잃지 않고 자기애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고통을 겪고 자아를 부인하는 영혼은 스스로 선택한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기보다는 아무리 바보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섭리와 질서에 위해 선택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길을 걸어가는 영혼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듯이 죽을 때까지 거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우리는 마땅히 잃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모든 것에 대한 죽음이야말로 무한한 복이었습니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시18:19). 그가 그 곳에 인도된 것은 바로 겸허와 낮아짐을 통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명령과 뜻을 따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위해서 정결함 속에 영혼들을 보호하시려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그들을 감추십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림으로써만 얻어집니다.
나는 아주 심하게 앓았습니다. 이 병은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행하기를 기뻐하셨던 커다란 신비로움을 감추시기 위한 것임이 증명되었습니다.
거의 육 개월 이상 지속되던 이 이상한 병세 중에 주님은 온전히 그분의 것이 된 영혼들에게는 현재의 언어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대화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나에게 조금씩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그분의 거룩하신 뜻에만 관심을 둔 채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시도록 그분께 맡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기도를 방해하기 위해 얼마나 엄청난 핍박을 선동할 것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도의 근원과 하나님께서 기도를 세우시기 위해 사용하실 수단의 근원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나는 이따금 죽음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지속된 격렬한 진통 때문에 기절까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심사숙고함이 실패하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런 변명이나 불평 없이 이 모든 것을 견디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은 내게 최고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어린아이처럼 말하고 행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인도하시도록 나 자신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내게는 다 똑같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단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파리에서 어떠한 십자가와 고통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받기 위해 떠났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어린아이처럼 나 자신을 맡겼습니다.

사도직이란 성령님의 순수함 속에서 다른 영혼들을 돕기 위해 자신을 가장 잔인한 핍박 가운데 노출시키는 것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유보 없이 전적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항복하고, 그분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전심으로 고난에 노출되기를 기꺼이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도시의 세탁소에서 일하던 가난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이 가난한 여인은 남편의 구타를 온유함과 인내로 참아 냈고, 자신의 노동으로 남편과 자녀들을 부양했습니다. 그녀는 놀라운 기도의 은사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 커다란 고통과 극도의 가난 가운데서도 늘 하나님의 임재와 마음의 평정을 지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또 그분은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막13:33,37)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기도 없이는 자신의 십자가와 가난을 감당할 수 없고, 기도하지 않고 살았을 때는 자신이 아주 사악했지만 기도한 이후에는 영혼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기도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구원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그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수도자들은 이 여인이 기도하는 것을 그만둘때까지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기도는 성직자들만 할 수 있는 것이니 기도를 그만두라고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은 그리스도께 달려 있고, 자신은 오직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만 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끔찍한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중심의 의지를 하나님께 복종시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 안에서 정화시키시고 은혜로 받아들이십니다.
일단 그 죄인이 복종하면 하나님은 그가 만졌던 더러움을 씻겨 내심으로써 그 영혼을 물들여 놓은 죄의 효과를 전부 다 제거하십니다. 죄의 근거가 제거되자마자 그 영혼은 은혜 가운데로 받아들여집니다.

주님께서는 그 의지에게 거역하는 것을 멈추고 선한 목적을 위해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라고 끊임없이 촉구하고 계십니다.
은혜는 그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의지가 거역을 멈추는 순간, 말할 수 없는 복으로 인도할 은혜가 바로 문가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어떤 수련소에는 많은 수련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연장자는 자신의 소명으로 인해서 매우 불안해 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걱정이 너무 많아서 책을 읽고 공부하고 기도하는 일상의 일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의 동료가 그를 내게(잔느 귀용)로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는 함께 이야기했고 주님께서 그가 불안해 하는 이유와 그 처방을 내게 알려 주셨습니다. 내가 그것을 그에게 전해 주자 그는 다시 기도할 수 있었고 심령의 기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놀랍게 변화되었고 주님께서는 그를 심히 사랑하셨습니다. 내가 그의 심령 속에 부어진 은혜에 대해 말하자 그 영혼은 메마른 땅이 촉촉한 빗물을 빨아들이듯 그 은혜를 마셨습니다. 그는 내 방을 떠나기 전에 고통에서 해방된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전에 그토록 꺼려지고 진저리가 났던 모든 의무들을 기쁘고 완전하게 수행해 나갔습니다. 이제는 공부도 기도도 일상적인 의무도 쉽게 해나갔습니다. 그러한 변화는 그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기 드문 것이었습니다.

그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현저하게 드러난 기도의 은사였습니다. 전에는 결코 소유해 본 적 없던 은사가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알고 그것을 위해 어떠한 고통이든지 대가로서 다 감수했습니다. 이 활기 찬 은사는 그의 행동 원리가 되어 일을 수행해 내기 위한 은혜가 되었고 은혜의 내적인 열매를 맺어 모든 선한 일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는 점차 다른 수련자들을 내게 데려왔고, 각자 기질에 따라 다르기는 했지만 그들 모두가 이 은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번성하는 수련소는 없을 것입니다. 책임자와 상관은 그 원인은 모르지만 수련원들의 큰 변화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 책임자와 상관은 수련원 모집원에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은 그의 미덕으로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내게 쓰도록 감동을 주신 작은 책의 가르침을 따라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큰 복을 거두었습니다.
“나는 정말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임재가 아주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사십 년 동안 수도 생활을 해왔지만, 사실 지금까지 기도할 줄 몰랐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책을 읽은 후에 알게 된 그런 하나님을 전에는 알지도 못했고 맛보지도 못했습니다.”(하나님을 체험하는 기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체험)

나는 어떠한 상태에서든지 계속 하나님께 의지했습니다. 내 영혼은 그분의 영이 내리시는 어떠한 지시에도 기꺼이 순종하려고 했습니다. 그분이 무엇을 요구하시든지 기꺼이 순종했으며,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적은 없었고, 나 자신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같이 이 가련한 무( )의 존재에게 무엇인가를 요구 하실 때, 그것이 아무리 가혹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나는 그분 뜻을 행하는 데 조금도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단 한 분의 절대적인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영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뜻이 아무리 엄격한 것일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제 영혼의 생명이시며 기쁨이십니다.”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내가 평안했던 것은 하나님께 나를 맡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생사를 전적으로 하나님 뜻에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십자가에 못박기 원하셨습니다.
전적으로 맡기며 아주 침착하게 모든 것을 견디었습니다.
나는 아무런 위로 없이 하나님께 나를 맡겼고, 그분 뜻이라면 아무리 가혹한 핍박과 고통일지라도 견딜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만 빚지되 어떠한 피조물에게도 기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잃는 것이 내게는 오히려 최선의 것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고통 속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종들을 위해서도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을 닮게 하시려고 고통을 사용 하십니다. 그러나 그 아들과 닮는다는 것은 너무도 희귀한 일입니다.
그 일은 자청해서 당하는 고통이나 엄격한 고행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실 때까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각이 아닌 그분의 생각에 따라 처신하며 자신 전체를 포기하여 하나님 뜻과 하나 되는 데서 겪는 고통 속에서만 이루어집니다.

원수들의 핍박과 중상 모략으로 인해 친구들은 나를 부끄럽게 여겼고 나는 친구들에게 외면당했습니다. 원수들은 나를 삼키기 위해 포효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서 침묵을 지켰고 주님께 나 자신을 맡겼습니다.

내 간수인 수녀는 내가 이교도, 광신자, 미치광이, 위선자라며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녀가 내게 어떤 고통을 겪게 했는지 하나님만이 다 아실 것입니다. 그녀가 언제나 내 말꼬투리를 물고 트집을 잡으려 했기 때문에 나는 말을 할 때마다 조심했고 신중했습니다.

나는 겪고 있는 고난에 흡족했고 기쁨을 느꼈습니다.
나는 나를 핍박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떠한 원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런 상태에 두셨습니다. 나는 그분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받을 만큼 포기되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종들에게 어떤 고난을 겪게 하고자 하실 때는 덕망 있는 사람들조차도 그 눈을 멀게 하셔서 그들을 사용하십니다. 사악한 사람들의 핍박이란 이렇게 덕망 있는 교회의 종들이 가하는 핍박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들은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여 아주 열정적으로 박해를 가합니다.

나는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통해서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고 행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신 이유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는 한겨울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으로 가는 도중 마차가 눈 속에 깊이 빠져서 네 시간이나 지체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눈 속에 그대로 파묻혀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체온 때문에 녹은 눈으로 몸이 얼어붙기는 했지만 나는 이때처럼 평안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기회는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졌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잘 판가름해 줍니다.

나는 파리의 한 장소에 남아서 5 - 6개월 동안 혼자서 책을 읽고 기도하고 일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는 여러 종류의 감옥에서 보낸 십 년 간의 생활과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긴 추방 생활 동안 내가 겪어야 했던 십자가와 중상 모략과 갖가지 고난과 이 오랜 박해에 대해서 더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저지른 너무나 끔찍한 사건들이 있지만 사랑은 나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덮어 두도록 합니다.

나는 그토록 길고도 쓰라린 낙담과, 억압적이고 고통스러운 병을 아무런 위안 없이 견디었습니다. 또한 여러 달 동안 내적으로 엄청난 고독 속에 있었기에 나는 이 말밖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저를 버리시나요!”

어쩌면 여러분은, 내가 지금까지 나의 십자가에 대해 그토록 자세하게 말하고서 이제 생애 중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십자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

바스티유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사태가 극에 달했을 때 나는 말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를 사람들과 천사들에게 새롭게 보여줄 구경거리로 삼기를 기뻐하신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그렇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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